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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4 고향반찬


“음식을 건강하고 맛있게 만드는 것은 고향반찬의 의무”

뭘 그렇게 아침부터 정성스럽게 끓이나 했다. 멸치, 대파뿌리, 양파 등을 넣고 푹푹 끓여낸 육수에 우거지와 된장을 넣고 만든 구수한 우거지된장국. 우거지는 그날그날 공수해서 쓰고, 된장은 단맛만 나고 맛이 없는 값싼 된장 대신 비싸더라도 깊은 맛을 주는 좋은 된장만을 고집한다. 돈 주고 파는 것 인줄 알았더니, 반찬을 사러 오는 손님에게 서비스로 주는 것이라고 한다. 어차피 얹어주는 것이니, 대충 할 수도 있거늘 이곳의 주인장은 그 ‘대충’을 용납하지 않는다. 보는 눈이 있으나 없으나 늘 재료와 정성의 원칙을 지키는 것! 그 고집이 ‘고향반찬’의 맛을 만들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고집이 만든 정직한 손맛에 단골이 꼬일 수 밖에 없다. 



동문동 먹거리골에서 9년 동안 ‘고향쌈밥’집을 한 지인숙(61) 사장은 식당에 불이 나서 음식점 일을 접었다. 그리고 2015년 9월에 그 ‘고향쌈밥’집의 손맛을 그대로 이어 ‘고향반찬’을 열었다. 꾸민 것 없이 있는 재료의 맛과 정성을 다해 그 옛날 어머니가 해주던 손맛을 반찬에 담고 싶었다는 지인숙 사장은 아침 7시면 나와서 재료를 준비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녀가 이곳에서 만드는 반찬들은 국 찌개류, 김치류, 나물류, 볶음류, 젓갈류, 조림류, 절임류, 전 종류, 마른 반찬류 등이다. 요즘의 입맛을 공략하는 퓨전의 맛은 아니지만, 모두가 정감 있고 익숙한 반찬들이다. 그 친근한 맛들을 여러 가지로 즐길 수 있는 것은 깻잎 반찬 하나를 만들더라도 그 맛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생 깻잎에 양념장을 켜켜로 올려 만든 양념깻잎, 깻잎을 소금에 절여 삭혔다가 양념한 깻잎지, 간장으로 맛을 낸 새콤달콤한 맛의 깻잎장아찌, 집에서 직접 된장에 박아 맛을 낸 된장깻잎, 그리고 여린 깻잎 순으로 만드는 깨순 볶음 등 그 맛의 종류가 다섯 가지나 된다. 



토속의 맛이 그리우면 무짠지나, 알타리 볶음, 아삭이 고추, 머위쌈, 능쟁이 무침, 박 장아찌 등 그 맛도 골고루 갖춰 놓았다. 비오는 날에는 호박과 무가 넉넉히 들어간 민물새우탕과 고소한 파래 전, 게가 좋은 계절에는 빨간 양념과 게살이 어우러지는 양념게장, 그 이름도 생소한 궁채 나물과 다래순 나물 등 음식을 척척 만들어내는 솜씨가 참 빠르기도 하지만, 맛도 좋다. 
지인숙 사장은 음식 맛을 내는데 남다른 고집이 있다. 재료는 좋은 재료여야 한다는 것이다. 가급적이면 국내산을 고집하고, 재료도 좋지 않으면 도로 돌려보낼 정도로 까다롭다. 고춧가루는 반드시 영주시 조합에서 생산한 국내산 고춧가루를 사용한다. 고추와 깻잎 등의 재료는 친정에서 농사지은 것을 갖다 쓴다. 말린 나물 재료는 특산지에서 직접 주문해서 쓰고, 일반 나물류 재료는 매일 구입해서 만든다. 거기에 더해 재료와 양념도 아끼는 법이 없다. 모든 음식은 재료를 아끼지 않았을 때 더 맛있다는 것을 오랜 식당일을 하며 터득했기 때문이다. 



좋은 재료와 양념을 아끼지 않고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것이 본인의 의무라는 지인숙 사장은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주방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는다. 재료를 다듬고 손질하는 것은 나눠 하되, 음식을 하나 하나 만들고 양념을 하고 간을 하는 것은 모두 본인의 몫으로 한다. 
“제가 몸이 많이 아팠어요. 지금은 거의 이겨내서 완치 단계이지만 언제나 몸과 건강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모든 음식을 만들면 간을 보느라 가장 먼저 들어가는 곳이 제 입인데, 어떻게 나쁜 재료, 값싼 양념으로 맛을 내겠어요. 얼렁뚱땅 하는 것은 제 스스로가 용납을 못하죠. 기왕이면 건강하고 맛있는 고향의 맛을 만들어 전하고 싶어요.”

그렇게 만들어지는 음식과 반찬들이 자그마치 백 여 가지가 넘는다. 띄운 콩비지 찌개, 오징어 무국, 무꼬들이, 청양고추 간장 초절임, 가자미구이, 버섯전, 생선가스, 오색잡채, 단호박 식혜 등이 어느 집 저녁상을 채우기도 하고, 어느 가게 개업식 상차림에도 올려 진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에게, 또는 먼 도시에 나가 공부하느라 자취를 하고 있는 자식들에게 택배로 보내지기도 하고, 먼 지방으로 가는 하객들 먹을 음식으로 버스에 올려 지기도 한다. 모두가 어머니의 손맛과 정성을 담아 고향반찬에서 만들어지는 고마운 맛들이다.
<배영금 기자>

●●● 고향반찬 : 서산시 한마음13로 31(지번 석림동 632-5)
        전화 ☎ 665-4170(010-7191-4170)
       - 카카오스토리 https://story.kakao.com/ch/insikno1
       - 매장 방문 3만원 이상 구매시 된장우거지국 증정/2만원 이상 배달 가능(오전 11시~오후 6시)/토요일은 3천원짜리 나물 두 개에 5천원 구입 찬스/카스 스토리 ‘고향반찬’ 에서 날마다 추천반찬 알림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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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3 바로굼터


“기술자는 자기가 그린대로 가는 거예요”
 천연 발효종, 아낌없는 재료, 당일 제작 당일 판매 원칙

이름만 들어도 빵 굽는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기는 듯한 ‘바로굼터’ 는 식빵전문점이다. 초코 식빵, 밤 식빵, 치즈 식빵, 오징어먹물 식빵, 블루베리 식빵, 단호박 식빵, 야채 식빵, 크랜베리 식빵, 일곱 가지 잡곡 식빵, 우유 식빵, 홍국 식빵, 올리브치즈 식빵 등 그 종류만도 자그마치 열세가지다. 그중에 유회석 대표가 가장 자신 있게 추천하는 식빵은 바로 우유 식빵. 재료와 이름도 독특한 갖은 식빵 중에서 그 흔한 우유 식빵을 내세우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기본에 충실한 빵이라는 것. 어느 재료를 덧대지 않더라도, 빵 자체의 맛으로 충분히 맛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빵 중에서 유난히 식빵이 좋았다. 다른 빵은 간식거리로 여겨지는 반면, 식빵은 왠지 주식 같은 느낌이라 더 든든했고, 밥처럼 먹는 식빵을 가급적 더 맛있게 만들고 싶었다. 식빵의 결을 따라 손으로 조금씩 뜯어 먹는 그 빵 맛을 더 많은 사람들과 다양하게 나누고 싶었던 그는 결국 식빵전문점을 차리게 됐다. 단순히 기술만 전수받아 차린 프랜차이즈가 아닌 그만의 이름을 걸고 문을 연 식빵전문점이다. 거기에 피자빵, 단팥빵, 슈크림빵, 소보루, 마늘바게트. 호두파이, 마늘 러스크 등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 빵을 더했다.



또 전국의 빵집에서 배우고 만든 빵의 맛들도 다양하게 구비했다. 오징어먹물과 단호박을 넣은 먹단크림치즈빵이나 악어의 등껍질을 닮은 엘리게이터 파이, 초코스콘과 호두스콘 등 특별한 맛을 골고루 얹었다. 이름부터가 재밌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엘리게이터 파이는 겉은 과자처럼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거기에 피칸을 넣어 고소한 맛을 더했다. 겉으로 보기에 평범해 보이지만, 빵 안에 옥구수와 양파 등의 샐러드야채를 더해 풍미를 더한 크레죤 역시 인기 상품. 엘리게이터 파이는 일산에서, 크레죤은 분당의 빵집에서 아주 잘나가던 인기 메뉴이다. 

그가 이렇게 그동안의 경험과 실력을 살려 만들어내는 빵은 모두 우유 버터와 천연 발효종을 사용한다. 쫄깃한 식감을 위한 탕종, 냉장고 안에 숙성발효시켜 빵의 노화를 막는 중종, 샤워종까지 직접 만들어 건강한 빵 맛을 만들어 간다. 화학 첨가제가 아닌 천연발효종으로 빵을 만들다 보니, 이 집의 빵을 먹으면 더부룩하지 않고 속이 편하다는 단골들이 많다. 밀가루로 만드는 빵의 한계를 천연발효종으로 극복하니, 빵 하나를 먹어도 더 속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 



‘바로굼터’의 유회석 대표는 그날 그날 빵을 만들며 아끼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빵을 만드는 재료이다. 그것이 비싸건, 귀하건 가리지 않고 빵맛의 극대화를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사용한다. 재료를 아끼는 마음이 없으면 빵 맛이 좋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고집이다. 
그런데도 이곳의 빵 값은 아주 착한  수준이다. 천연 발효종으로 발효시키고 오징어 먹물을 첨가한 식빵이 2500원, 피자빵이 1200원, 호두스콘이 1300원 등 그 가격이 참 고마울 정도로 저렴하다. 식빵 두 개에 호두파이, 단팥빵 등 한 봉지 가득 담아도 만원 한 장이면 거스름돈까지 받을 수 있을 정도. 

“많은 분들이 제가 만든 빵을 부담 없이 드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편하게 오실 수 있도록, 이윤을 당장 생각하지 말자고 생각하면서 일하고 있어요. 기술자는 자기가 그린대로 가는 것이에요. 이렇게 길게 오래 가는 게, 제가 그리는 빵집입니다.”
‘바로굼터’에서 만드는 빵은 당일제작, 당일판매를 원칙으로 한다. 그날 만든 것이 다 팔리지 않고 남으면 다음날 오전 중 개당 1500원씩 할인 판매를 하고, 오후에는 지역의 보육원에 갖다 준다. 한 개 더 팔아 돈을 벌기보다,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는 그다. 

고등학교 때는 뭣도 모르고 식품공학을 배우고, 대학도 그 길을 따라 가다가, 군대에 가서도 취사병, 제대를 하고 나서는 빵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전국의 내로라하는 빵집을 다니며 오로지 빵만 만들아 온 이 남자. 자다가도 빵 이야기만 나오면 벌떡 일어날 정도로 빵에 푹 빠져 사는 이 남자. 너무 정직하고 착해 돈 버는 일보다, 자기가 만든 빵이 좋아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며 그저 행복한 이 남자! 열심히 하루하루 빵만 만들어 굽다보니, 어느새 빵이 인생의 친구가 되고, 길이 되어버린 ‘바로굼터’의 유회석 대표. 그가 뜨거운 삶의 현장에서 피워 올리는 빵 냄새는 오늘도, 내일도 맡고 싶은 삶의 향기다.
<배영금 기자>

●●● 바로굼터 
   - 동문동 코아루아파트 정문 앞 상가내 OK정육점 옆 ☎ 663-1010
  - 단골 이벤트-만원어치 구매시 1000ml 우유 1개 증정/도장(7천원당 1개) 10개 모으면 5000원 즉석 할인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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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2 조우상씨


꽃밭 인생, 꽃길 인생

그의 집은 탑곡리 마을 안에서도 유명하다. 꽃이 많은 집, 정원이 아름다운 집, 충북에 있는 청남대보다도 더 멋진 마당을 갖고 있는 집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다. 그도 그럴 것이 4,298㎡ 정도 되는 집터 전체가 온갖 나무와 꽃들로 둘러싸여 있다. 마을회관 바로 밑에서 시작되는 터는 뒤로는 온갖 나무와 조경석으로 꾸며져 있고, 집 앞과 옆길은 온통 국화의 잔치가 한창이다. 개인집에서 이렇게 많은 국화를 본 적은 없다. 노랑, 하양, 분홍, 보라의 색색의 꽃잎을 한껏 펼친 국화들은 화분에 담겨 아예 꽃길을 만들었다. 한 뿌리에서 시작한 국화는 대형 하트 판 위에 수많은 꽃망울을 단채 한창 개화중이다. 그 옆은 가꾸기도 힘들고 한꺼번에 개화시키기도 힘들다는 다륜 대작이 손톱만한 크기의 노란 꽃망울들을 저마다 매달고 가을의 절정을 기다린다.

대문 옆은 계단식으로 만든 화단대 가득 사람 얼굴만한 대국들이 한창 꽃 잔치를 벌이고 있다. 그렇게 시작된 꽃밭은 화단대 뒤로 본격 시작된다. 나무로 만든 네모난 대형 화단은 아예 초대형 꽃다발을 보는 듯 알록달록 풍성하고 어여쁘다. 한 화단에 동그란 꽃다발처럼 피어난 국화의 종류가 자그마치 40가지나 된다. 그런 대형 화단이 여러 개 연결되어 국화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 집은 지금 온통 국화 축제 중이다. 벌들도 바쁘고, 앞 다퉈 꽃을 피워내느라 국화도 바쁘다. 그러나 가장 바쁜 것은 조우상씨다. 



서산 시내의 아파트에 사는 그는 매일 아침 이곳 부모님이 사는 집으로 출근을 한다. 논농사와 밭농사, 표고버섯, 달래 등의 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꾼다. 집앞 논 건너에는 1천여 그루의 소나무를 가꾸고 있고, 4,298㎡ 집터 가득 온갖 꽃들과 나무를 심어 이토록 멋진 정원을 만들어 놓았다. 이렇게 꽃을 가꾸고 정원을 만드는 것은 조우상씨의 취미생활이다. 논일과 밭일 틈틈이 쉬는 잠깐의 시간마다를 붙들어 꽃과 나무에 온갖 정성을 다 바친다. 요즘 같은 국화철은 더욱 바쁘다. 꽃송이가 큰 국화는 일일이 꽃대를 만들어 고정을 해야 한다. 한 송이 한 송이 대충 가는 손길은 없다. 애지중지 아끼고 정성을 쏟아야 되는 보물들이다. 

매년 서리가 내린후 국화가 지고나면 그는 국화 모종 수 백 개를 사와 겨울을 나는 것부터 다음해 가을을 준비한다. 국화는 밤에 온도를 맞춰줘야 하기 때문에 유난히 손이 많이 가는 식물이다. 겨울에는 추우니까 10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도록 해야 하고, 전깃불을 켜서 꽃의 개화시기도 조절해야 한다. 그가 이토록 정성을 쏟아 키우는 국화의 종류는 180여 가지. 국화마다 키우는 방법이 다 다르니 그의 최대 관심사는 늘 국화이다. 국화축제장이나 국화 전시장에 가면 그의 눈은 가장 바빠진다. 국화의 뿌리부터 줄기, 꽃마다의 특징을 머리와 눈으로 기억해 담아낸다. 모르는 것은 알 때까지 묻고, 깨알같이 적어와 적용해본다. 국화 앞에서 그는 가장 호기심이 왕성한 소년이 되고, 가장 꽃을 사랑하는 한 남자가 된다. 



서산의 고북에 국화축제가 있다면, 음암면 탑곡리에는 그가 5~6년동안 온갖 정성과 사랑으로 가꿔온 국화들이 가을의 축제를 한창 벌이고 있는 중이다. 입구부터 한바퀴 그 넓은 정원을 돌도록 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 장관이다. 봄에는 그 자리를 튤립들이 대신하고, 여름에는 빨간 장미들이 정원을 물들인다. 부모님이 살고 있고, 정원 바로 옆 선영이 있는 이 터가 그에게는 가장 소중한 터이다. 부모님들이 눈만 뜨고 집 앞에만 나오면 이 멋진 국화의 축제안에서 호강을 할 수 있도록 그는 그렇게 꽃에 열중이다. 취미는 곧 그만의 방식인 효도이고, 삶을 대하는 가장 진지한 태도이다. 국화 꽃망울이 아름답게 올라오기 시작하면 그의 차 한가득 국화 화분을 싣고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나눠주는 것이 행복한 이 사람, 부모님 발길에 꽃들이 채이도록, 그 눈안에 온통 꽃들이 담기도록 꽃으로 터를 가꾸고 사는 이 사람! 그가 디딘 삶이 꽃밭 인생, 꽃길 인생이다.   

(음암면 탑곡송내길 120-8)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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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1 신발끈 봉사단


“인생의 후반기는 신발 끈 열심히 매며 봉사하고 살래요”

“봉사하고 다닐 시간에 자동차 한 대라도 더 팔지.”
쉐보레자동차 서산대리점 과장으로 영업일을 하는 임광묵(55)씨에게 늘 따라다니는 말이다. 그 역시 봉사하고 싶은 마음만 늘 한 켠에 품고 살았지, 한 번도 봉사모임에 참가하거나 봉사활동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 중 하나였다. 몇 명이 모여서 봉사를 시작해볼까? 어디 봉사단체에 들어가서 참여해볼까? 생각을 하던 일곱 명의 사람들은 결국 2년 전 봉사단체를 직접 만들었다. 그 이름하여 ‘신발끈봉사단’. 
“인생의 중반을 접어들면서 인생의 후반은 더 보람 있게 살아야겠다는 생각들을 하던 차에 봉사단을 직접 만들게 됐어요. 인생의 후반은 신발끈을 더욱 동여매고 열심히 뛰며 봉사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봉사모임 이름을 ‘신발끈 봉사단’으로 짓게 되었답니다.”

‘신발끈봉사단’ 임광묵 회장은 봉사모임을 시작하며 그간 가져오던 모임의 활동도 모두 정리를 했다. 영업일을 하는 중년의 남자들에게 중요할 수 있는 취미활동과 술자리, 골프 모임도 없애고 오로지 ‘봉사’를 주된 활동으로 삼아 살고 있는 중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봉사 모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주어진 시간마다 봉사활동을 하며 살고 있는 그는 “봉사는 중독”이라고 이야기한다. 
‘신발끈봉사단’의 회원은 모두 열 다섯 명. 그중 두 명은 중국, 또 다른 두 명은 몽골에서 한국으로 온 사람들이다.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직접 나서서 도움을 주는 주체가 되어 살고 있는 것은 큰 의미가 있어요. 타국에 와서 봉사하며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거든요.”



‘신발끈봉사단’이 봉사활동을 가는 곳은 정해져 있지 않다. 요양원이건 수해복구 현장이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각자 갖고 있는 재능과 역할을 다해 요양원에 가서 공연도 펼치고, 겨울에는 자녀들과 함께 연탄봉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지난 여름에는 청주의 홍수피해 현장에 자원봉사를 나가 수해를 입은 민가의 도배를 도맡아 했다. 또 얼마 전에는 텔레비전에 나올 수 있을 만큼, 집안 가득 온갖 물건과 쓰레기들을 안고 안면도에 살고 있는 집을 방문해 대청소를 하며 1톤 트럭 세대분의 쓰레기들을 치워냈다. 회원들이 짐으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던 집안을 치우고 바닥을 정비하는 동안, 같이 간 회원들의 중고등학생 자녀들은 찌든 변기를 닦으며 온가족이 다함께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또 매주 목요일마다 열리는 ‘따뜻한 밥차’ 봉사활동에도 한 달에 한번은 참여해, 가장 힘들다는 설거지 봉사도 맡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 토요일에는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 모임’의 군산 기차여행 봉사활동에 지원, 아침 7시 40분에 서산을 출발해 하루종일 군산 여행에 동행하며 장애인들의 이동권 확보를 위한 지원을 할 계획이다. 

회원들 중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웃음치료사가 있어 더욱 값진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신발끈봉사단’은 몽골 출신 여자회원들을 통한 몽골어 지도도 펼칠 수 있다. 또 봉사를 위해 네일 아트를 일부러 배우는 회원도 있으며, 세 명의 회원은 전문 도배사 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악성뇌종양을 앓고 있는 음암의 ‘기극이’와 난치성 희귀질환인 ‘폐동맥 고혈압’ 진단으로 폐이식 수술을 받고 하루 50만원의 비용이 드는 입원실에서 치료받고 있는 고북의 ‘서연이’ 사정을 접한 ‘신발끈봉사단’은 오는 10월 31일 화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동문동에 자리한 ‘비엔나 커피하우스’에서 ‘기극이 서연이 돕기 일일찻집’ 행사를 열 계획이다. 장소를 제공하는 ‘비엔나 커피하우스’ 역시 ‘신발끈봉사단’의 회원인 이다희(40)씨. 10월 31일 하루 동안은 커피숍 영업을 포기하고 1층 커피숍과 2층 당구장 전체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이날 ‘일일찻집’ 행사장에는 ‘신발끈봉사단’회원들과 가족들이 함께 간단한 음식과 음료를 팔아 모은 돈을 기극이와 서연이 가정에 전달할 예정이다. 



몽골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지 8년차를 맞은 윤미진(35)씨는 기극이 사정이 유난히 마음 아픈 회원 중 한 명이다. 결혼을 하며 중국에서 한국으로 온 기극이 엄마와는 오래전부터 같이 한국어를 배우며 알던 사이로, 어릴 적부터 기극이를 봐왔다. 팔봉면 대황1구 부녀회장으로 활동하며 한국생활에 잘 정착하고 있는 미진씨는 이번 ‘기극이 서연이 돕기’일일찻집을 위해 팔봉면사무소 면장님을 직접 찾아가 티켓 30장을 팔고 올 정도로 누구보다 열심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기쁘다는 미진씨처럼 ‘신발끈봉사단’회원들 마음도 다 마찬가지. 각자 생업에 바쁜 시간들을 보내면서도 만나는 사람들마다에게 일일찻집 티켓 판매에 열중하고 있다. 
“봉사는 다 여유가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요. 봉사를 하는 것은 남을 돕는 일이지만, 결국은 내가 행복해지는 거라 늘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어 좋습니다.”

그런 임광묵 회장의 명함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보상을 구하지 않는 봉사는 남을 행복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행복하게 한다-간디’. 임 회장이 봉사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신발끈봉사단’의 봉사 목적이기도 하다. 봉사에 중독되다시피 남을 돕는 일을 일상으로 여기며 열심히 신발끈을 매고 있는 ‘신발끈봉사단’! 그 이름과 뜻 한번 진짜 멋지다. 
<배영금 기자>

●●● 봉사모임 참여 문의 - 임광묵 회장 ☎ 010-6687-7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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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0 민들레 음악봉사단


요양원에 핀 음악봉사의 꽃, 민들레 홀씨 되어

오늘은 실버빌요양원에서 음악봉사를 하는 날! 공연을 하는 시간은 오후 2시이건만, 민들레음악봉사단 단원들은 그 몇 시간 전부터 이렇게 준비에 바쁘다. 전문 공연단이 아니다 보니 좀 소홀 할 수도 있건만, 이들에게 ‘대충’은 없다. 부모님 칠순잔치, 팔순잔치 치러 드리듯 온 마음으로 시간을 매만져 그렇게 무대를 올린다.

창단한지 5년, 공연 횟수만 137회! 이제는 이골도 나련만, 음악봉사를 하는 날은 언제나 마음부터 부풀어 오른다. 중요한 약속이 있어도 뒤로 미루고, 생계를 위한 일도 잠시 멈추고 그 바쁜 시간을 꼼짝 못하게 붙들어 맨 채 정성껏 준비를 한다. 공들여 화장도 하고, 머리도 미용실에서 예쁘게 단장하고, 가장 고운 한복도 갖춰 입은 채 몇 번 이나 거울 앞에서 차림새를 비춰보고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요양원에 와서 어르신들의 눈빛을 보면 외로움이 느껴져요.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도 보이고요. 지금은 나이 들고 병이 들어 이렇게 요양원에 계시는 몸들이지만, 한때는 가정을 튼튼하게 꾸려나가시던 분들이고, 사회에 기여하며 세상도 움직이던 분들이잖아요. 외로움과 늘 싸우시는 이분들에게 잠시나마 자식들을 대신해서, 마치 자식들이 재롱을 떨 듯 그렇게 노래잔치, 춤 잔치를 벌여드리고 싶어요.”



민들레음악봉사단의 김창현(64) 기획실장은 요양원 음악봉사를 올 때마다, 지금은 다 돌아가시고 안 계신 부모님이 떠오른다. 처음 음악봉사단을 만들 때도 그런 마음이었다. 여러 가지 사정과 이유로 밖에 나와 공연을 보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순수한 음악봉사를 펼치는 것이 소명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몇 사람과 팔봉면의 허름한 시골집에서 연습을 하며 뜻을 모았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 싶었을 때는 시설 하나하나 일일이 찾아다니며 음악봉사활동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하다시피 하던 시절도 있었다. 2012년 12월에 팔봉면 주민자치센터에서 첫 공연을 연 이래 동부시장, 호수공원, 삼길포, 신진도 다리 밑, 솔밭공원 등의 공연을 비롯 각 요양원과 장애인 시설 등을 찾아다니며 137회의 음악봉사가 쌓이도록 쉬지 않고 달려왔다. 지금은 정회원만 15명에 밸리 댄스와 고전 춤 특별회원들 10명까지 보태져 제법 크고 내실 있는 봉사단체가 되었다. 



“가요만 부르면 지루할 수도 있으니까 민요도 부르고 춤도 추고, 색소폰도 불고, 톱연주도 하고 그래요. 그늘진 어르신들이 환하게 웃으시는 것을 보거나, 손을 꼭 잡고 또 오라는 말씀을 들을 때는 이 봉사활동이 이 어르신들만을 위한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모두가 힐링이 되는 그런 마음이 들거든요. 다들 생업이 있지만, 이 봉사활동은 이제 인생의 한 축이 되어 버렸어요.”
창단멤버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정화숙(57) 사무장은 음악봉사활동을 하던 중, 진짜 봉사다운 봉사를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에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따서 활동 중이다. 24시간 근무를 마치고 나와 봉사활동을 나갈 때는 힘이 들기도 하지만, 요양원에서 보낸 시간은 어르신들 심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고.



민들레음악봉사단의 막내이자 마스코트인 이선영 단원은 재능기부를 하듯 음악봉사활동을 하며 오히려 배운 것이 더 많다고 전한다. “삶에 대한 보람을 크게 느낄 수 있어서 좋고, 인생관 역시 달라졌어요. 부모님에게 무뚝뚝한 딸이었는데, 음악봉사활동을 다니며 어르신들을 많이 보다보니 이제는 부모님에게 애교도 부리고 밥 먹다가 손가락 하트도 날리는 그런 딸이 되었어요.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마음이 교화가 된 것 같아요.”
이렇듯 민들레 음악봉사활동을 통해 단원들의 삶도 자연스레 좋은 변화가 찾아들었다. 색소폰을 인연으로 합류한 악단장은 요양원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단절되다시피 했던 어머니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회복해 잘 지내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고령화 사회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이렇게 직접 찾아다니며 공연을 하는 봉사단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여기 계신 어르신들은 거동이 불편하시니까 어디 나갈 수도 없고, 1년 365일이 너무 무료하거든요. 꼭 우리가 아니라도 노래를 듣고 춤을 보는 시간이 있다면 그게 바로 낙이 아닐까요? 저희는 최소의 인원으로 최고의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민들레가 홀씨를 뿌리면 하나하나의 생명이 되어 피어나듯, 저희도 소박하지만 강인하게 낮은 자세로 임하며 민들레음악봉사단의 발자취들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저마다 타고난 끼와 재능도 다르지만, 단원들의 마음은 거의가 닮았다. 소박하다 못해 부족한 것 많은 흥부네 살림살이여도 가진 것 나누며 한 길을 걸어간다. 단원 한 명 한 명이 다 민들레 꽃이다. 가장 진정한 마음으로 사랑의 홀씨들을 날려 보내 행복의 움을 틔우고 마는 생명의 꽃.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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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 음암 문양농원 유선자씨 부부


주렁주렁, 사과도 영글고 삶도 영글고

사과밭이 넓어도 너무 넓다. 윗밭도 사과나무 밭 그 끝이 가늠이 되지 않는데, 집 아래에 있는 밭은 더 넓다. 일일이 걸어서 다니기도 힘들어 아예 사과나무 밭 가장자리로 뺑 돌아 길을 냈다. 그 길을 경차를 몰고 다니며 일을 본다. 식사시간이 되면 어디서 일하는지 찾을 수 없어 휴대폰을 걸어야 한다. 사과나무 그루 수는 그동안 죽고 캐낸 것도 있어서 이제는 일일이 세어 보지도 않는다. 그런 과수원 일을 12년 동안 해왔다. 
남편 이형찬(69)씨와 함께 ‘문양농원’에서 사과나무와 배나무 농사를 짓고 있는 유선자(65)씨는 1년 중 가을이 제일 바쁘다. 지금 한창 무르익기 시작한 홍로사과 수확을 한 달 여간 한 후에, 10월에는 향긋한 맛이 좋은 시나노사과를 따서 팔아야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단단하고 저장성이 좋은 부사 사과 수확이다. 

9월부터 10월까지 세달 동안 이어지는 사과 수확에 유선자씨의 가을은 여유로움이 없어진지 오래. 늘 아침에 눈을 뜨면 가난 한 집 주렁주렁 자식새끼 삼시세끼 밥 줘야 할 일이 기다리듯, 여기저기 꼭 해야 할 일들이 대기하고 있다. 일꾼들을 불러 수확을 하는 것도 일이고, 얼지 않게 저장을 하는 일, 일일이 주문 전화를 받고 방문을 받아 판매를 하는 것도 다 일거리다. 아예 안보이면 모를까, 쳐다보면 다 일거리들이니 눈을 질끈 감아 봐도 소용이 없다. 



사과나무 농사는 다른 농사와 다르게 일일이 수작업을 해야 하는 게 많다. 배나무 농사보다 두배로 힘들다. 배나무는 적과해서 봉지만 씌우면 거의 끝인데, 사과는 그보다 일이 훨씬 더 많다. 솎아내는 작업인 적과를 한 후 봉지를 씌워서 벗기고, 또 햇볕을 가린 잎을 다 따주고 색깔이 곱게 골고루 잘 익으라고 나무 밑에 일일이 반사판도 깔아줘야 한다. 체감하는 노동의 양은 다른 과일 보다 다섯 배 정도 힘들다. 그중에 가장 큰 일은 봉지를 씌우는 일이다. 잘못 씌우면 과일이 떨어져 버리니, 아무에게나 일을 시킬 수도 없다. 사과를 따는 일도 쉽지 않다. 잘못 따면 사과도 상하고, 가지도 상한다. 꼭지에 손대고 조심스럽게 따내야 한다. 누가 도와준다는 고마운 소리를 해도 선뜻 사과수확을 맡길 수 없다. 

태풍이 온다는 소리만 들리면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비가 조금만 거세게 와도 다 익은 사과들이 죄다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머리가 두 쪽이 나도 9시 뉴스의 일기 예보는 꼭 챙겨봐야 한다”는 말이 심상치 않게 들린다. 
“사과나무 꼭대기에 사다리 타고 올라가 적과를 할 때면 너무 힘이 들어서 누구에게 썩은 사과 하나도 못줘요. 다 따고 나면 어느 집 누구도 생각나고 해서 먹여주고 싶은 생각이 그제야 들어요.”

워낙 사과 농사 잘 짓기로 소문이 나다 보니, 다행히 판로 걱정은 하지 않는다. 수확량 중 60~70%는 지인들이나 단골들에게 직거래로 판매된다. 추석맞이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많다. 자매 결연을 맺은 서울의 서초동과 거여동 직거래장터에도 1년에 한 번씩은 올라가 사과를 판다. 사과를 사기위한 주문이 줄을 이으면, 그간의 고생도 눈 녹듯이 사라진다. 
“미용실이나 식당 같은 곳은 일이 늦게 끝나니까 문 닫고 밤에 사과들을 사러 와요. 봄에는 돈을 뭉텅이로 갖고 다니며 일꾼들 돈만 줘야 하는데, 사과를 수확할 때면 늦은 밤에 사러 와도 기운이 나요. 아무리 힘이 들어도, 그 재미로 살아가는 거죠.”



인지에서 태어나고 자라 스물다섯 살에 중매로 이곳 문양리에 시집 온 유선자씨는 사과 하나 열리면 그냥 따 먹는 줄 알고 자랐다. 사과농사 일이 이렇게 힘든지는 직접 해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 그 일이 너무 힘들어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생각도 없다지만, 이곳 사과나무 알알이 영글어가는 풍요로움과 넉넉함의 땅에 요양시설을 짓고 싶은 작은 꿈도 간직하고 있다. 
96세의 연로한 나이에도 아직 밭일을 나가실 정도로 정정한 시어머님, 남편과 함께 사는 유선자씨 인생은 이제 가을이다. 넉넉하고 여유로워야 할 가을의 나이에도 일복은 줄어들지 않지만, 그녀는 이 계절이 좋다. 어릴 적 사촌들이 하도 많아 큰집에 가도 사과조각 밖에 얻어먹지 못한 남편은 통으로 된 사과 하나 온전히 먹어보는 게 원이었다고 한다. 그런 사과와 배가 이토록 풍성하니 바라만 봐도 배가 부르다. 
가을이 익어가는 문양농원, 그녀의 인생만큼 배도 영글고 사과도 영글었다. <배영금 기자>
          
●●● 문양농원 - 음암면 간대산길 7-16번지☎ 010-7144-5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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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8 대휘철공소 대장간 허석 대표


1500도에서 달궈 매질해온 50여년 대장간 인생

오늘 만들어야 할 물건은 낙지잡이에 꼭 필요한 낙지 가래이다. 한번 사면 1~2년은 거뜬히 써야 할 정도로 튼튼하게 만들어져야 하는 이 물건은 기능에 맞는 모양과 단단함이 생명이다. 버스 스프링판만큼 좋은 재료는 없다. 단단한 그것을 필요에 맞게 자른다. 필요한 핵심 부분만 자르는 것도 그만의 기술이다. 프레스로 납작하게 누른 물건을 째서 불에 달구고 때린다. 그 단단하던 쇳덩어리가 그의 손에서 엿가락처럼 주물러진다. 가래의 모양을 잡아가며 매끈하게 다듬은 후의 열처리는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과정이다. 하나의 낙지 가래가 완성되기까지 드는 기본 작업만 해도 8~9번. 3시간 정도 집중을 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물건 하나가 나온다. 그 한 개의 값은 10만원 돈. 작은 연장 하나에 비싸다면 비쌀 수 있는 그 돈을, 주문한 사람은 두말하지 않고 가져간다. 깊은 개펄을 헤집으며 수십 수 백 마리의 새끼 낙지들과 씨름할 연장으로는 이 물건이 최고이다. 



그는 물건을 미리 만들어 두는 법이 절대 없다. 고객이 물건을 들고 와 해달라는 대로 만들어준다. 그의 남다른 눈썰미는 물건의 미세한 차이와 쓰임도 매섭게 읽어내고, 단련된 팔뚝과 손길은 노련한 솜씨와 어우러져 원하는 물건들을 잘도 만들어낸다. 
만들지 못하는 물건이 없는 그에게 주로 주문이 들어오는 것은 바다 일을 하는 사람들이 쓰는 어구들이다. 해녀들이 물질을 할 때 꼭 필요한 담치창, 전복칼, 홍합갈고리도 만들고, 낙지 잡을 때 없어서는 안 되는 낙지가래, 바지락을 잡을 때 쓰는 쇠갈퀴도 척척 만들어낸다. 그런 물건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제주도나 신안, 목포에서 까지 온다.



스무살에 인천의 조선소에 들어가 일을 배운 뒤 대장간에 들어간 그는 워낙 솜씨가 좋아 빠르게 인정을 받았다. 규모가 큰 철 공업 일도 많이 해냈다. 대산의 중고등학교 체육관이나 당진의 예비군 훈련장의 빔 공사는 물론 각 소방서 호수 건조대 만드는 일도 도맡아 했다. 금형을 찍어내는 가닥은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 쇠를 다루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열처리 방법은 그간의 세월과 경험으로 열 댓 개 정도를 터득했다. 독보적이다.
돈도 많이 벌어봤고, 교통사고를 당해 38개월 여 동안 입원하며 피눈물 나는 세월도 보냈다. 사고가 남긴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대장간 일을 하며 넘어지기도 수 십 번. 목발을 짚고 일을 해도 화덕에서 쇠 달구는 일은 직접 했다. 불의 온도를 높이고 유지하는 숯은 아무리 비싸도 최상품만을 고집했다. 중국산 저가 제품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와 판을 쳐도 직접 만들지 않은 물건은 곁에 두지도 않았다. 그의 자존심이기도 하고, 쇠와 불을 다루는 그만의 고집이기도 하다. 욕심은 일찌감치 내려 두고, 주문 받은 물건에 대한 책임, 불과 쇠에 대한 마음만 굳건히 지고 간다. 이제 서산태안에 대장장이는 그가 유일하다. 



1500도. 쇠가 녹는 온도이다. 화덕에 숯을 올려 풀무질로 불을 피우고, 쇳덩어리를 녹여 매질을 하는 굵은 팔뚝에 한 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다. 무척이나 단호하다. 그의 눈썰미, 집게를 잡는 손이 기억하는 것, 망치질의 강도와 시뻘겋게 달아오른 쇳덩어리의 성질, 이 모두가 그의 삶을 달궜다. 두드리고, 째고, 다시 달구고, 하루하루의 삶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따라할 수도, 따라갈 수도 없는 삶. 오늘도 그런 삶이 50여 년 째 이어진다. (동문동 318-1 ☎ 041-665-8990)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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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7 줌바댄스 서연주강사


춤을 향한 그녀의 인생 줌바 만큼 뜨겁다

취미도 특기도 춤이라는 서연주 강사의 문화센터 일일강좌가 있는 날, 신나는 라틴계열의 노래가 흘러나오자 인터뷰할 때 말주변이 없다며 낯설어 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춤을 춘다. 아니 노래에 맞춰 춤을 그린다.
“전 6남매 중에 셋째이고 일란성 쌍둥이 중 동생이에요. 어릴 때 큰언니가 저희 쌍둥이를 곧잘 돌봐주었는데 춤을 가르쳐주며 놀아 주곤 했어요. 그게 계기가 돼서 춤을 초등학교 2학년부터 배우게 되었어요. 현대무용을 시작으로 탈춤, 에어로빅, 댄스스포츠, 살사, 벨리댄스를 차근히 배웠어요. 제가 벨리댄스를 15년 정도 했는데 같이 운동하던 선생님의 권유로 줌바댄스를 하게 되었어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소비하게 만드는 운동이라 힘들지만 춤을 추면 아픈 곳도 사라져요. 그래서 춤이 너무 좋아요.”



둠칫둠칫두둠칫, 쿵쾅쿵
센터 안에 신나는 라틴음악이 이내 울려 퍼진다. 익숙한 듯 리듬을 타는 사람들, 그리고 마치 어제 만난 사이처럼 반갑게 웃음이 번져나간다. 쉬운 동작으로 시작한 줌바댄스는 몸이 풀리면서 점점 더 격렬해진다. 그 덕에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들린다. 잠깐 따라 했을 뿐인데 턱밑까지 숨이 차오른다. 그런데 힘들어 죽겠다가 아니라 힘든데 즐겁다. 기분 좋은 땀이 흐르며 무언가를 해내고 있다는 벅찬 기쁨이 가슴속에서 뜨겁게 퍼진다.
“줌바댄스가 타 댄스와 다른점은 쉽다는 거에요. 그리고 에너지 소비가 엄청 많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원하시는 분들에게 정말 추천드려요. 생각보다 많이 뛰지 않기 때문에 몸무게가 많이 나가시는 분들이 관절 다칠까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또 남녀노소 구별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어요. 대신 줌바댄스는 움직임이 많아 편한 복장과 운동화 착용은 필수에요.“

양발을 옆으로 이동하며 손을 위아래로 흔든다. 좌우로 쉴 틈 없이 어깨를 빠르게 흔들며 쌓인 스트레스를 털어낸다. 현란한 발동작 사이로 미러볼에 반사된 사이키 조명이 분주하게 쏟아지며 분위기를 돋운다. 또 중간중간 우렁찬 서연주 강사의 구호 소리가 뜨거운 열기를 더한다.
막바지에 다다르자 서연주 강사는 머리를 질끈 묶고 남은 에너지를 모두 쏟아낸다. 그녀의 화려한 경력을 말해주듯 경험이 묻어있는 듯한 춤 동작이 노련하다. 그 모습이 멋져 절로 박수가 나온다. 



“제 자랑 같아 부끄럽지만 벨리댄스를 하던 시절에는 우리나라에서 프로 개인전 부분에서 1위를 다수 했어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고딕 트라이벌 벨리댄스를 했었는데 고딕트라이벌 벨리댄서로 미국 질리나 공연단과 합작으로 하는 공연에서 솔로 공연 무대를 갖기도 했어요.”
실제로 그녀의 그간 노력과 경력은 줌바댄스 수업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는 문화센터의 담당자는 서연주강사의 높은 의욕과 회원들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에 반했다며 줌마댄스 강좌를 강력 추천한다고 전했다.

서연주 강사의 수업엔 어디든 꼭 참석 할 정도로 열심히 배우고 있다는 38살 오수정씨는
“전 아이가 어려서 못했던 걸 해내는 강사님이 자랑스러워요. 또 항상 노력하고 하나라도 더 알려주실라고 하는 모습에 감동받았어요. 열정이 정말 많으시고 순수하신 강사님 덕에 흥이 많은 가족 모두가 줌바댄스에 빠졌어요. 요즘은 매일 온 가족이 거실에서 줌바댄스 노래를 틀고 춤을 춰요. 키즈줌바를 배우는 딸은 얼마 전 호수공원에서 공연도 했을 정도로 너무 좋아해요” 라며 줌바댄스와 서연주강사의 열렬한 팬을 자처했다.

처음 만난 줌바댄스는 때론 강렬하고 때론 귀엽고 때론 경쾌하다. 마치 오늘 만난 서연주강사의 열정과 같았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줌바학원을 차리고 싶다고 했다. 오직 춤밖에 모르는 진정한 춤꾼 서연주강사의 뜨거운 열정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길 언제나 응원한다.
<김슬기 기자>

▶▶ 신나는 파워 줌바댄스 (서연주강사)
      장소 : 롯데마트 문화센터/화·목 오전11시~1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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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6 더 펌헤어


어릴 적부터 꾸던 꿈, 가위로 디자인하다

헤어디자이너 19년 차, 그녀의 다부진 노력 끝에 올해 4월 동문동에 더펌헤어 헤어숍을 오픈했다. 매장은 푸른 바다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바닥과 깔끔한 검은색의 인테리어가 초록 잎이 무성한 화분들과 어우러져 열정적으로 일하는 그녀를 더 돋보이게 해준다.
“아무래도 제 숍을 갖게 되니 심적으로 여유와 자유로움을 얻은 거 같아요. 그래서 손님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갈 수 있어서 만족스러워요. 또 다양한 손님들을 만나고 원하시는 헤어스타일을 해주고 손님들이 만족스럽다 하실 때 그 기분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뻐서 표현할 수가 없어요”

가게를 오픈한 뒤 줄곧 혼자 헤어숍을 운영 중인 김하민 원장은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즐길 줄 알기에 힘든 줄도 모르고 매일 문을 연다. 
대산이 고향인 김하민 원장은 어릴 적 꿈이 늘 헤어디자이너였다고 했다. 엄마를 따라간 헤어숍에서 사람들의 헤어스타일을 멋지게 만들어주는 헤어디자이너의  모습에 반해 늘 헤어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한 로망을 갖게 된 그녀는 19살 때부터 미용학원을 다니며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 후 어린 나이부터 헤어숍에서 근무하며 좋은 헤어디자이너 밑에서 꾸준히 미용기술을 터득해 어릴 적 꾼 꿈을 마침내 이루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미용 일을 시작한 지 5~6년 차, 20대 한참 나이 때 같은 일을 매일 반복해야 하는 삶에 지쳐 슬럼프가 찾아온 적도 있다. 늘 곁에서 함께하던 친구들이 위로가 되었고 오히려 새로운 미용기술을 배우며 슬럼프를  극복해냈다고. 비가 오면 가위질을 하는 손가락이 쑤시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요즘은 매일이 기쁘고 재미있다는 김하민원장의 일에 대한 열정과 애정은 대단했다. 
미용밖에는 모를 거 같은 그녀에게 소중한 보물을 묻자 첫째는 가족이고 둘째는 가위라고 했다. 언제나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는 소중한 가위가 반짝이고 있었다.



“이 가위로 가족들 헤어는 제가 도맡아 잘라줘요.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주셔서 저에게 믿고 맡겨주세요. 가족들이 저를 자랑스러워 해주셔서 기쁘고 무언가를 해드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뿌듯해요.”
인터뷰를 하던 날에는 비가 많이 내렸었는데 우산을 쓴 멋쟁이 할아버지가 들어오셨다. 김하민 원장에게 조용히 안부 인사를 건네시곤 물을 한 잔 드시더니 5분이 채 되지도 않아 말없이 나가셨다. 김하민원장의 시아버지셨다. 근처에 사시는 시아버지는 늘 이렇게 다녀가신다고 했다. 별말은 없었지만 시아버지의 맏며느리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가족들은 그녀에게 늘 이렇게 곁에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늘 곁에서 응원해주는 가족들과 남편, 친구들에게 늘 감사하다는 그녀는 가족의 사랑과 친구들과의 우정이 그녀가 하루의 시작을 기쁨으로 시작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라고 했다.

어릴 적 꿈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온 김하민 원장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또 18년의 노력 끝에 얻은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며, 그녀의 헤어숍에 좋은 일이 가득하길 희망한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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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5 던킨도너츠 예천점


두 아이 엄마의 달콤한 일자리가 된 ‘던킨도너츠’

“어서 오세요~ 던킨도너츠입니다.”
매장에 들어서니 조금은 긴장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밝게 손님을 반겨준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지난 19일 예천동 호수공원 내 새로 오픈한 던킨도너츠 이수연 점장이다. 
올해로 36살이 된 이수연씨는 2살, 5살 아들 둘의 엄마이다. 얼마 전까지 직장에 다니던 이수연씨는 아이 둘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저녁 늦게까지 일하는 것이 힘들어 퇴사, 육아에 전념 중이었다. 

“육아휴직 후 복직해서 시간에 맞춰진 회사생활이 너무 어려웠어요. 그래서 10년 다닌 회사를 그만두었죠. 쉬는 중 우연히 광고를 보다 예전에 남편과 데이트를 하던 시절이 떠올랐어요. 남편이 도너츠를 정말 좋아해요. 아마 앉은 자리에서 10개는 거뜬히 먹을 거예요. 그래서 속으로 ‘이렇게 좋아하는데 도너츠 매장을 내가 차려볼까’ 하는 농담반 진담반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때 생각에 한번 알아나 보자 해서 매장 창업 관련 상담을 받게 되었는데 상상만 해도 너무 설레더라고요. 좋은 기회가 돼서 이렇게 매장을 오픈하게 되었어요.”





물론 아이 둘을 키우며 매장을 오픈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늘 응원해주는 든든한 남편과 양가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울에 거주 중이신 양가 부모님께선 서산에 내려와 두 아이를 흔쾌히 봐주시는 것은 물론 매장에 들려 힘을 보태주신다.
“아기들이 어려서 걱정도 많이 하시고 우려도 하셨지만 지금은 많이 도와주시고 누구보다 더 지지도 해주세요. 그래서 많이 힘이 되고 가족들에게 너무 감사해요. 특히 무엇보다 엄마를 응원해주는 저희 아이들에게 고마워요.”

5살 큰아들은 엄마의 매장에 오는 걸 너무 좋아한다고. 마치 주인인 냥 먹고 싶은 걸 다 골라 먹는 아들이 상전이라며 투정하듯 말했지만 이수연씨의 얼굴은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오픈 날부터 새벽에서 밤늦게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매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수연씨는 다소 피곤해 보였지만 밝은 미소만큼은 잃지 않았다. 
“솔직히 처음 하는 일이라 몸은 너무 고되고 힘들어요. 그런데 두 아들과 가족들 생각하면 힘이 나고 다양한 손님들을 만나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요. 첫 손님은 꼬마 아가씨였는데 먹고 싶은 도너츠를 직접 고르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기억에 남아요. ” 

스트레스를 원래 모르는 성격이라며 특히 어린이 손님들이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쌓인 피로가 풀린다며 웃어 보였다.
“처음 도전해보는 일에 떨리고 긴장도 되었지만 차근차근 배우며 열심히 할 거예요. 또 가고 싶은 매장, 밝고 활기찬 매장, 친절한 매장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그래서 친절을 항상 생각하고 더 열심히 청소하고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인사하고 뭐든지 열심히 할 생각이에요.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로써 내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착한 먹거리 매장을 만들겠습니다.”



현재 던킨도너츠 예천점에서는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샌드위치류 콤보 선택 시 아메리카노, 아이스 아메리카노, 오렌지주스 중 선택 1종을 천원에 제공하고, 오픈 시간부터 오전11시까지는 해피포인트앱 제시시 단품 가격에 콤보를 맛볼 수 있다. 도너츠류는 6개 구입시 오백원 할인, 도너츠 10개 구입시 천원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또 추후 SNS을 통한 다양한 정보 및 혜택, 이벤트 제공 예정 중이다.
한 가정의 엄마로써 한 매장의 주인으로써 누구 보다 열심히 일하는 멋진 이수연씨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한다.
<김슬기 기자>

  ▶▶▶  던킨도너츠 서산예천점
   - 서산시 호수공원12로 18 / ☎ 664-2375
   - 매일 오전 7시 30분 ~ 저녁 10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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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4 조은씨앗농장 신채봉 농부


땅이 그녀를 키웠고, 그녀가 땅을 지켰다

음암면 부산리에 사는 마흔 네 살의 신채봉씨는 서울에서 나서 서울에서만 자랐다. 농사라고는 지어 본 적도 없고, 농사를 짓고 살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농부의 아들을 만나 사랑했다. 결혼을 하고 서산으로 따라 내려왔지만, 그녀의 남편조차 아내가 농사짓는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녀 역시 농사가 아닌 다른 일이 하고 싶어 전공인 미술을 살려 유치원이나 미술학원 등에 취직해보려 했지만, 결국 그녀는 농사일하느라 힘든 시아버지와 남편에게 밥 한 그릇, 물 한잔, 수박 한 쪽이라도 줘야 마음이 편할 것 같은 생각에 집밖으로 나서지 못했다. 

지금 그녀는 누가 뭐래도 전문 농사꾼이다. 그것도 할 일이 넘쳐난다는 밭농사 담당이다. 봄과 가을에는 알타리 씨를 뿌려 수확하고, 제 철이 지나면 보리를 키워 녹색의 자연 비료를 만든다. 991㎡여 면적의 밭에는 옥수수도 여섯 번이나 심어 수확을 하고, 철마다 감자며 콩이며 땅콩이며 참깨며 갖가지 곡식들을 부지런히 가꾸고 거둬들인다. 콩 한쪽을 심으면 열 개가 되고, 백 개가 되는 흙의 신비로움에 빠져 팥 시루떡이나 팥죽이 먹고 싶으면 팥을 심고, 한겨울 동치미에 곁들인 노란 고구마가 먹고 싶으면 힘든 줄도 모르고 순을 심어댔다. 
이제는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챙이 넓은 모자와 자외선을 막아줄 긴팔 옷, 아무데나 앉아도 좋을 편한 바지가 일상복이 된 그녀는 농사일이 힘들다는 이야기조차 웃으면서 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그리고 지금의 삶 안에서 가족들과 함께 누리는 것들, 땅이 정직하게 베풀어 주는 것들을 기꺼워한다. 

그녀가 짓는 농사는 대부분이 제철 농사에, 친환경적인 농법이다. 알타리를 제 철인 봄과 가을에 키우면 약을 별로 치지 않아도 되고 벌레도 없지만, 여름에 키울 때는 약으로 키워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밭을 놀린다. 그 자리에 보리를 심어 거름을 만들고, 제초제보다는 풀을 더 가깝게 여긴다. 10여년의 농사를 통해 결국 땅도 숨 쉬어야 사람도 숨 쉴 수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녀의 남편은 논농사 담당이다. 13년 전부터 우렁이를 이용한 유기농 농법으로 친환경 쌀들을 재배하고 있다. 부흥권역 마을 사업을 이끌며 지속가능한 농촌의 모델을 만들고 가고 있으며, 우리나라 농촌의 어제와 오늘, 암담한 미래에 누구보다 펄펄 뛰는 심장으로 살아간다. 그런 남편이 바깥으로 돌며 바쁘기만 할 때는, 아이들도 어리고 농사일도 서툴러 모든 일이 힘들었다는 그녀는 이제 우리 농촌과 농업의 미래를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남편의 가장 든든한 동지로 함께 살아간다. 



이제 열 살, 열세 살인 남매는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와 새끼손톱만한 참게 새끼들을 논에 넣어주는 일을 도맡아 하고, 지천에 널린 오디와 딸기, 앵두, 개 복숭아를 따 먹으며 자란다. ‘아이들의 인생에 대학입시라는 단어를 지우고 살아볼까?’ 하는 부모님의 의지 아래 학원에 가지 않고 곧장 집으로 돌아와 자기주도형으로 놀이 학습을 한다. 엄마인 그녀는 오늘 행복한 아이가 한 달 후 행복하고, 10년 후에도 행복하다고 믿는다. 그런 엄마와 아빠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꼭 공부를 잘하고 돈이 많아야 행복한 것이 아니고, 세상에는 다양한 삶이 있다는 것을 알아간다. 
채봉씨의 친정 부모님은 외동딸을 시집 보내놓고, 서해 쪽을 쳐다보지 않고 딸 걱정에 눈물을 흘리고 사셨다. 지금은 열심히 재미있게 사는 딸의 모습을 보고 웃고 돌아가신다. 화장기 하나 없지만, 딸의 건강한 웃음에서 참 행복을 여실히 느끼고 가시기 때문이다. 

“심으며 염려하고, 가꾸며 기다리고, 거두며 뿌듯한 것이 농부의 한 살이예요. 바람의 방향과 안개의 농도가, 햇빛의 시간과 구름의 내려앉음이 자연과 인간에 미칠 영향에 대해 농부만큼 삶에 녹아 내려 하나 된 이들이 있을까요?”
밭 매다가 골병들어 죽을 것 같다가도, 우렁이가 벼에 낳은 분홍의 알들을 누구보다 소담스러워 하는 이 땅의 농부 여자 신채봉씨. 10여년의 힘든 세월동안 땅이 그녀를 키웠고, 그녀가 땅을 지켰다. 그런 그녀가 눈부신 것은 7월 한낮의 햇빛때문만 이었을까.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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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3 꽃차전문가_꽃누리 최보임 대표


가장 향기로운 꽃의 절정을 붙들어 꽃차로 피워내다

한 잔의 차. 목련차라 한다. 하얀 꽃잎을 오므린 목련이 뜨거운 물속에서 활짝 피어났다. 봄의 시작을 알리며 그 눈부신 수줍음으로 피어났을 목련 꽃이 여름의 한 낮에 잔속에서 다시 피어났다. 그 향이 깊다. 자꾸 큰 숨을 들이마시게 하는 은근한 향이다. 한 모금 마시니 그 맛은 더 깊다. 달콤하면서도 은근한 맛이 입안에서 향기롭게 꽃을 피운다. 그렇게 꽃은 세 번 피어난다. 잔속에서, 향기로, 그리고 귀한 맛으로! 
꽃차가 예로부터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목련차는 최상의 꽃차로 손꼽았다. 그만큼 그윽하고 은은한 향과 맛이 최고다. 정성껏 덖어진 목련은 언제나 찾잔 속에서 우아한 자태로 피어난다. 가장 향기로운 꽃의 절정을 붙들어 꽃차로 피어나게 하는 이, 바로 ‘꽃누리’대표인 꽃차전문가 최보임씨다. 

“꽃차중에서 목련을 가장 좋아해요. 보는 것도 예쁘지만 냄새도 좋고, 맛도 너무 좋아요. 한잔 마시면 심신이 차분하게 안정이 되는 효과도 있어요. 누구나 다 좋아할 수 있는 꽃차예요.”
최보임씨의 일상은 거의 꽃과 함께 이뤄진다. 틈이 나면 산으로 들로 다니며 제철의 꽃을 따고, 그 따온 꽃을 정성껏 손질해 오랜 시간 온갖 공을 들여 덖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차는 일일이 유리병에 담아 상하지 않게 보관을 하고, 또 직거래 장터 등에 들고 나가 전시를 하며 시음 및 판매도 한다. 차에게 꽃을, 사람에게 꽃차를 전해주는 가장 향기로운 전령사라고나 할까. 
“원래 한지공예나 규방공예를 했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꽃차를 만드는 사람을 만나면서 꽃차에 한눈에 반하고 말았어요. 그날 부로 등록해서 배우기 시작했는데 하나 두 개 만들던 일이 이제 본업이 되고 말았네요.”

그녀는 이른 봄이 되면 산에서 나는 대나무인 산죽부터 채취해 덖어내기 시작한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 제비꽃, 도라지, 칡꽃, 맨드라미, 봉숭아, 국화 등 철철이 피어나는 꽃 들 대부분이 꽃차로 만들 수 있는 소재들이다. 남편을 데리고 깊은 산에 들어 달맞이꽃 같은 야생화를 따오기도 하고, 여의치 않으면 혼자라도 깊은 산에 들어가 제철의 꽃을 수확해온다. 씻어야 될 것 같은 꽃들은 아예 따지 않는 것이 최보임씨의 원칙이다. 자연 속에서 벌레 먹은 꽃이 더 귀하다. 그래서 더더욱 산으로 들로 다니며, 가장 깨끗하고 향이 좋으며 몸에도 좋은 꽃을 따러 다닐 수 밖에 없다고. 등산을 가건, 잠깐의 외출을 하건 어딘가 새로운 곳에 가면 그녀의 눈은 언제나 색깔부터 좇는다. 빨간색이나 노란색이 눈에 뜨이면 꽃이 아닌가 하고 눈부터 커지는 그녀다. 
“원래 편두통이 심했어요. 커피를 자주 마셨는데, 그걸 끊으래서 안마시다 보니, 마실 차가 없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꽃차를 만나서 즐기고 있는데, 편두통도 어느새 사라진 듯 삶이 개운해졌어요.”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많은 꽃들이 피어나는 봄철이다. 봄이 무르익기 시작하면 지천으로 널린 게 꽃이다 보니, 눈도 바쁘고 손도 바빠진다. 집안은 온통 따온 꽃들을 다듬어내느라 엉망이고, 방이건 거실이건 꽃들을 덖어지는 꽃들 천지다. 자연에서 가져온 것들이니 집안에 꽃과 함께 벌레도 꼬인다. 집안이 늘 지저분하다고 잔소리하는 남편이지만, 어느 날은 산꼭대기에서만 얻을 수 있는 산죽을 따다가 주기도 하는 모습이 고맙고 든든한 그녀다. 
“꽃을 덖는 시간과 방법은 그 종류에 따라 다 달라요. 특히 조심해야 하는 것들도 있고, 특징을 잘 살펴야 하는 것도 있어요. 잘 우러나게 하기 위해서는 꽃잎을 방망이로 밀어서 상처를 줘야 하는 것도 있답니다.”

꽃을 다 덖고 나서 꽃 색깔이 예쁘게 나왔을 때가 행복하다는 그녀는 나중에 조그만 꽃찻집을 내는 것이 꿈이다. “커피 마시러 가자”라고 하듯 더 많은 사람들이 꽃차에 빠져 “꽃차 마시러 가자”라고 말하는 세상은 더 향기로운 세상이 될 거라고 여긴다. 양주병을 마시고 나서 남은 술을 키핑을 하듯, 꽃차를 한병 사서 마시고 남은 차는 찻집에 두고 가는 그런 문화도 꿈꾼다. 자연에서 공짜로 얻은 것이니, 꽃차를 가지고 돈을 벌 욕심도 없다. 
꿀벌이 꽃을 다니며 부지런히 꿀을 따듯, 꽃마다의 향과 맛을 차로 우려내는 꽃차전문가 최보임씨. 그녀는 늘 삶이나 집이나, 손에서나 꽃향기 물씬 나는 사람이다.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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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믿을 수 있는 친구는 셋이다. 오래 함께 산 아내, 오래 기른개, 그리고 현찰.-벤자민 프랭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