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플러스 홈으로
 
  • ▒ 전체 955개의 게시글이 있습니다. ▒

955 국제라이온스클럽 강완설 부총재


진심어린 섬김의 마음을 담은‘따뜻한 밥차’

‘따뜻한 밥차’ 봉사 단장을 맡은 국제라이온스클럽 356-F지구 서산지역 협의회 강완설 부총재는 매주 목요일이 더 없이 특별하다. 매주 200여 분의 어르신들이 ‘따뜻한 밥차’를 어김없이 찾아 즐거운 식사를 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봉사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더 커지며 누구보다 더 큰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 

“‘따뜻한 밥차’의 봉사 주축을 맡다보니, 서산지역 12개 라이온스 클럽 480여명의 회원들이 지대별로 조를 나눠 매주 30여 명씩 밥 차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봉사는 다 소중하고 의미가 있지만, 특히 먹는 봉사는 마음이 더 따뜻하고 훈훈해서 매주 보람을 느낍니다. 매일 혼자 드시다가 같이 드시는 모습이나, 매주 색다른 메뉴의 식사를 하시며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면 내 부모를 보듯 마음이 참 뿌듯하지요.”



서산지역 라이온스 클럽 회원들은 ‘따뜻한 밥차’가 운영되기 하루 전인 수요일이면 장을 미리 보는 것으로 밥차 봉사를 시작한다. 음식은 미리 해두면 식거나 맛이 없어지기 때문에 당일 아침에 만드는 것이 원칙. 라이온스 클럽 회원 중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 여러 명 있기 때문에 장소와 솜씨를 빌려 아침 6시부터 그날 점심에 나갈 메뉴의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다. 음식을 만들면 밥차로 나르고, 천막을 치고, 또 의자를 배열하고 뒷정리 까지 도맡아 하는 것이 회원들의 임무. 처음 ‘따뜻한 밥차’ 운영과 봉사의 책임을 맡게 되었을 때는 안산으로 견학도 가서 보고 익히며 좋은 방법을 접목해서 방향도 찾았을 정도로 시작과 끝 모두가 열심이다.

“매주 목요일 ‘따뜻한 밥차’에 오셔서 식사를 하시는 분들이 보통 200~250여분이 됩니다. 여럿이 먹으면 무엇이든 더 맛있는 법이니, 혼자 외롭게 드시거나 점심을 거르지 마시고 꼭 오셔서 따뜻한 밥을 드시고 가시길 바랍니다.”
7년 전 서산 라이온스 회장직으로 있을 때 중국음식점인 ‘띵호와’에서 한 달에 두 번씩 하는 식사봉사를 하며 음식으로 나누는 봉사에 큰 매력을 느꼈다는 강완설 부총재는 모든 회원들은 물론 다른 봉사자 모두와 함께 ‘따뜻한 밥차’에 진심어린 섬김의 마음을 담고 있다고 전했다.
<배영금 기자>


  •  
  •  
  •  
954 나눔봉사단체_빵이랑 떡이랑


빵과 떡, 그 거룩한 나눔에 대하여

떡은 여유고 인심이다. 매일 먹는 밥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배를 곯는 사람이 해먹을 수 없는 것이 떡이고, 돈이 없는 사람이 쉽게 사먹을 수 없는 것이 빵이다. 쌀과 밥은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기본이지만, 빵과 떡은 그 이상의 여유가 있어야만 가능하기에 그 나눔 또한 특별할 수 밖에 없다. 
봉사단체로 출발해 사단법인으로 설립된 ‘빵이랑 떡이랑’은 하루도 빠짐없이 빵과 떡을 만들어 이웃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우리지역의 가장 인심 좋은 ‘곳간’이다. 미래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장혜순 원장과 학원을 운영하던 이은희 원장이 공동 대표를 맡아 월급의 전부를 기부하며 이곳을 하나하나 일궈왔다. 지금은 40~50여명의 정기 후원자들이 일정 금액을 후원하고 있고, 바르게살기운동 서산시협의회, 생활개선회, 늘보람 봉사단 등의 단체와 여러 직장에서의 봉사모임 또는 개인들의 참여와 봉사활동 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빵이랑 떡이랑’에서 만들고 있는 것은 카스테라와 피자빵, 와플, 단팥빵, 소보로 등의 빵과 쿠키류, 그리고 약식과 절편 등의 떡 들이다. 떡들은 주로 새벽에 만들어지고, 빵과 쿠키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2개조로 나뉘어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들은 적십자가 반찬 나눔, 보건소 방문요양 사업, 차상위 학생들의 공부하는 ‘차오름’, 활란요양원 및 대산 롯데봉사회와 대산 생활개선회의 빵나눔팀, 인지면 일대의 다문화 가정이나 새터민들이 있는 곳으로 배달된다. 그밖에 장애인 복지관, 성남보육원, 서림복지원, 교육청 길거리 봉사단, 드림 스타트, 밥차 봉사단 등 빵과 떡이 간절히 필요한 곳이면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훈훈함을 더해준다. 작년에는 김장 1천포기를 담아 또다른 나눔을 실천했다. 



“처음에 학원을 운영할 때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위해 돈으로만 후원을 했어요. 가보니까 누가 후원한 줄도 모르고, 돈을 잘 쓰지도 못하고, 모았다가 손주들에게 주고 계시는 것을 봤어요. 내 생각과 다르게 돈이 써지는 것을 보고 반찬과 생필품 나눔을 시작했는데, 어르신들이 즐겁게 드실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을 하다가 빵이랑 떡을 만들어 드리게 된 거예요.”
이은희 대표의 나눔에 대한 생각은 현재 공동대표로 함께 하는 장혜순 원장과 통했다. 그리고 둘은 나눔의 동지이자 버팀목이 되어 ‘빵이랑 떡이랑’을 함께 지켜간다. 이들의 꿈이자 희망사항은 ‘평생 돈 걱정 안하고 실컷 빵 만들어 나눔을 실천’하는 것. 나눔과 봉사라는 것이 어디 마음과 의지만 가지고 되는 것이던가.

운영이 어려워 배달차로 쓰던 차를 팔기도 하고, 외상으로 재료를 갖다 쓴 적도 많았던 이들은 어린이집 뒤에 빵 만드는 간이시설로 지은 곳이 불법이라 해서 신고 되었을 때는 건강에도 이상이 왔을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그럼에도 이들이 포기하지 않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진심을 다해 도움의 손길을 보태는 수많은 후원자들과 봉사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힘겨운 교대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며 이곳에 들러 빵 만드는 기계의 수리를 도와주는 기업체 직원들도 고맙고, 열심히 수학 문제지 넘기던 손으로 쿠키를 포장하는 학생들의 손길에도 큰 애정을 느낀다.



빵을 만들 수 있는 지금의 공간을 만들 때 설계나 천정형 에어컨, 토목, 기계 등의 재능이나 물품들을 아낌없이 기부해주시 분들, 계란 값이 너무 올라 빵 만드는 일이 힘들어 졌을 때 마진을 다 포기한 생산원가로 공급해준 진성농장 사장님, 봉사자들의 고픈 배를 아낌없이 해결해주시며 천만원 이상의 밥을 무료로 제공해주신 황금부페 사장님, 떡을 찌고 빵을 굽고 배달을 하느라 쓴 기름값 694만원의 외상값을 전액 기부해주신 대산 하이츠 주유소의 사장님, 당뇨로 인해 인슐린제 투약을 하면서까지 일주일에 5회 이상 이곳을 찾아 한결같은 봉사를 펼쳐주시며 봉사란 것이 무엇인지 몸소 실천하시는 석림동의 서찬순 어머님, 그리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봉사의 손길을 한결같이 내미는 수많은 사람들 그 모두가 한 알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뿌려지고, 넉넉한 빵과 떡이 되어 거룩한 나눔이 됐다. 

“넉넉한 형편에서 펼치는 나눔이 아니다보니,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마늘도 일일이 직접 까고, 약식에 쓸 은행도 직접 주어다 말려서 썼어요. 피자 빵에 넣을 양파는 양파수확이 끝난 밭에 가서 양패새끼들을 주워오고 했으니까요. 학원 할 때는 월 천 만원도 벌었는데 나이 오십이 됐어도 집 한 채 없이 월세를 살고 있어요. 가진 게 없지만, 한마음으로 나눔을 같이 하는 친구가 있고 여러 분들이 있어서 늘 배부른 마음으로 살고 있답니다.”
나눔과 봉사활동을 30여 년간 실천해온 이은희 공동대표에게 빵이나 떡은 그저 배고픔을 채우기 위한 음식이 아니다. 비록 빵 하나지만, 그 안에 사랑과 훈훈함을 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외로운 이들이 달콤한 쿠키 하나, 고소한 빵 하나에 살아가는 재미 한 입 채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기쁜 것이다. 인심은 곳간에서 나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서 난다는 것을 그녀는 안다. ‘빵이랑 떡이랑’에서 그런 마음들이 하루하루 익어간다. 
<배영금 기자>

- 빵이랑 떡이랑
- 서산시 대산읍 대산 4길 112번지 (대산미래어린이집 뒤편)  ☎ 010-5431-9977

  •  
  •  
  •  
953 산불전문진화대 김형록 대원


“봄철의 산을 든든히 지키는 산불전문진화대원”

1년 중 2월 1일부터 5월 15일까지 딱 105일간 산불전문 진화대원으로 활동하는 김형록(54)씨는 아침 9시면 해미면 황락리와 산수리로 출근해 저녁 6시까지 산을 지킨다. 
그가 하는 일은 산불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고,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진화를 하며 신고를 하는 것이다. 2012년 4월 30일 오후 3시 40분께 가야산 줄기인 해미면 황락리 황락저수지 인근에서 큰 산불이 났을 때도 그는 현장에 누구보다 먼저 도착해, 그가 지니고 다니는 위치추척 시스템으로 정확한 좌표를 안내했다. 

“그 당시 큰 불이었어요. 황락저수지 인근 종중산에서 장례를 치른 유가족들이 고인의 유품을 태우다가 산에 옮겨 붙어 발생한 불이었는데, 가야산 줄기로 고압선이 지나는 곳이어서 더 위험했지요. 산불이 다 꺼진 듯 해도 연기가 또 살아나고 또 나고 해서 10일간은 계속 화재 현장을 감시했답니다.”
건조주의보가 내려지는 봄이 오면 자그마한 불씨 하나, 한줄기 연기 하나 놓칠 새라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는 그의 철칙은 ‘내 위치에서 내 할 일 다해가며, 내 구역을 칼같이 지켜내는 것’이다. 한순간의 방심과 실수로 잃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크고 황망한 지를, 지난 9년간의 경험으로 익히 봐왔기 때문이다. 

그가 일을 하며 가장 어렵고 힘든 때는 아무 곳에서나 쓰레기, 농사 폐기물 등을 소각하는 노인들을 상대할 때라고. 노인들이 살아온 평생의 방식도 중요하지만, 작은 불씨 하나로 소중한 산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에 단속과 계도를 게을리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마을의 노인들과 실랑이를 벌일 때도 많고, 하다하다 안되면 아예 소각 현장을 끝까지 지키며 만반의 단속을 기하기도 한다. 
“화마가 지나간 산은 사막보다 더 삭막해요. 그 아름드리 울창한 나무들이 새까맣게 타버려서 정말 처참하죠. 그런 것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워요. 그래서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합니다.”

그는 원래 건축일과 사업을 했다. 열심히 일을 한 뒤에도 돈을 받지 못하는 일이 많아지자, 차라리 버는 돈이 적더라도 마음 편한 일이나 하고 살자고 한 것이 산불감시원 인생의 시작이 됐다. 그렇게 산을 지키며 살다보니, 이제는 산 자체가 좋아졌다는 그는 산속의 멧돼지 새끼도 반갑고, 고라니들도 정겹다. 트럭을 타고 임도를 돌다가도, 차에서 내려 산에 오르고, 고사리 꺾는 철이면 아예 산 능선을 타고 돈다. 산에 오를 때 매고 다니는 산불진화용 배낭은 물을 채웠을 때 무게가 20~30kg. 갈퀴도 빠트리지 않는다. 

“워낙 산이 크고 넓다 보니 맡은 구역을 완벽하게 지킬 수는 없어요. 그래도 산불전문진화대원이나 산불감시원 모두가 맡은 구역 안에서 최선을 다해 지키고 노력한다면 우리 산을 더욱 건강하게 지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빨간 옷을 입고 다니는 것만 해도 많은 계도와 예방 효과가 있어요. 담뱃불이나 산중 취사나 단속을 하려해도 “네가 뭔데 그러냐”고 반발을 할 때는 힘이 들고 맥이 풀리지만, 2005년 이후 산불이 급격히 줄어든 통계를 보면 힘이 납니다.”
놀러 다니기 좋은 계절! 산불 나기 쉬운 계절 봄! 그는 105일간을 꼬박 산과 함께 한다. 그가 좋아하는 산이 거기 있고, 그가 끝내 지켜내야 할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돈보고는 못하지만, 이 보람된 일을 돈 받으며 할 수 있으니 더 좋다는 김형록씨. 그는 우리 지역 산을 든든히 지키는 산불전문진화대원이다.  
<배영금 기자>

  •  
  •  
  •  
952 하영석 서산 생활음악센터장


6개의 기타 줄, 진한 사랑이 되어

6개의 기타 줄 위에 손가락이 쉴 새 없이 춤을 춘다. 풍성하고 아름다운 화음은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고 감탄하게 한다. 그의 연주는 마음으로 다가와 심금을 울린다.  
서산, 태안 지역에서 기타를 배운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미 그의 실력과 명성은 자자하다. 하영석(서산 생활음악센터장) 원장은 깨어 있는 시간 동안은 언제, 어디서나 늘 기타와 함께이다.
“기타요? 정말 매력 있죠. 단음정이 나오는 악기와 달리 여러 화음을 연주할 수 있고, 간소하게 들고 다니면서 종합적인 것을 다 연주할 수 있죠. 노는 문화가 흔치 않아 통기타가 유행하던 시절, 우연히 교회 형의 기타 치는 멋진 모습에 반해 시작한 기타 연주가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 살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또한 처음 만난 사람과도 금방 친해질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주고 공연 시 함께 연주하면 너무 행복합니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 밴드 생활도 오래 했었습니다. 피터팬 밴드의 정규앨범은 다 제가 작사, 작곡하였습니다.”



35년 동안 단 한 번도 기타를 놓아 본 적이 없다. 좋은 벗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는 생계수단으로 식당 배달 및 막노동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진심으로 기타를 지켜냈다. 그리고는 기타를 통해 알게 된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을 돕는 불우이웃돕기 재능기부 공연도 어느덧 11년째 진행 중이다. 장학금, 교복 선물, 생필품 및 쌀 등등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필요한 손길을 베풀고 있다. 후원이 많이 줄어 어려울 때도 있지만, 변치 않는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하영석 원장은 매년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고 사랑을 나눈다.
“기타는 끝이 없어요. 저를 통하여 더 큰 꿈을 꾸고 배워 나가야 하기에 저 역시도 매일 연습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가 배워야 나에게 배우는 수강생들 역시 발전할 수 있어 나를 개발하는 일에는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기타 악보는 일반 악보와 달라서 보기도 쉽고, 치는 방법만 알면 누구나 무난하게 연주할 수 있습니다. 성실한 연습은 정직한 실력으로 보답합니다. 망설이지 말고, 집에 하나씩 있는 기타와 용기를 내보세요! 기타를 독학하시게 되면 박자, 진도, 정확성이 부족할 수 있기에 전문가에게 배우는 것을 추천합니다.”



하영석 원장은 수강생의 기타 연주법의 장·단점을 파악해야 한다고 한다. 손의 크기 및 완력. 왼손과 오른손의 힘의 차이, 빠르기, 성격 등등을 빠른 시간 내에 진단해야 한다고.
그리고 각각의 개인에 맞게 차별성을 두어 쉽고, 흥미를 유발하며 진도를 맞춰주는 눈높이교육을 한다. 그렇기에 같은 수업을 하더라도 개인의 능력에 따라 개별 진도 수업이 이루어진다. 이런 열정과 세심함은 수강생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더 늦기 전에 솔로 앨범을 내는 것이 꿈이라는 하영석 원장은 오늘도 6개의 기타 줄과 진한 사랑에 빠진다. 세상에서 가장 친한 기타친구와 그는 오늘도 가장 멋지고 행복한 여행을 꿈꾼다.
<이지희 기자>

- 하영석 서산 생활음악센터장 ☎ 010-8309-4872
- 초중고등학생 방과 후 및 정규수업 복지센터 출강, 개인지도 등

  •  
  •  
  •  
951 목공예 정덕채 작가


죽은 나무에 생명의 꽃을 피우는 ‘도심안의 자연인’

산속에 깃들어 사는 ‘자연인’을 소재로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인기다. 자연인의 삶은 남자들의 로망이라고도 한다. 세속의 삶을 끊어내고 자연 안으로 들어가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산다는 것은 이상만 가지고는 결코 이룰 수 없다. 손가락 사이로 바람을 잡을 수 없듯 나를 이루던 수많은 것들을 흘려보낼 줄 알아야 한다. 훌훌 털어내고 바람처럼 스며들어 산속의 뿌리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 결코 간단치가 않다. 
결혼도 하고, 자녀도 가졌지만, 그는 머물지 않는다. 시간 안에 멈추지 않고, 만족 안에 그 자신을 가두지 않는다. 정처 없이 마음 시키는 대로 살아온 삶. 어느새 환갑에 가까운 오십 육세가 됐다. 나이 먹은 만큼, 사는데 있어 노련해질 법도 한데, 그는 다듬어지지 않았다. 거칠고 단순하다.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마음 가는 대로 살아왔다. 바람처럼, 강가에 돌멩이 하나에도 수십 년을 머물렀다가, 숲 속에 썩은 등걸 하나에 빠져 시간들을 붙든다. 

관광가이드도 하고, DJ도 했던 그는 한때 1년에 수십억을 버는 사업도 했다. 팔봉산에도 오래 깃들었고, 40여 년 동안은 돌을 찾아 전국을 떠돌고 분재를 하며 삶을 채웠다. 돌과 분재 안에서 가장 자유로웠던 그는 이제 누구에게도 배운 적이 없는 목공예에 온 몸을 담그고 산다. 대상만 바뀌었을 뿐 돌이나 분재나 나무는 공통점이 많다는 그는 60여년 삶의 과정과 그간 만들고자 했던 결과물들을 목공예에 담아내고 있다. 
그가 목공예의 소재로 쓰는 것은 고사한지 오래된 고목들이다. 산속 깊은 곳,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에서 홀로 쓰러져 죽은 채 비틀어진 나무, 썩어서 문드러진 나무다. 
“금은보화는 참외밭에서 난다고 하던가요? 나무가 썩어서 지저분하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소재들을 이용하다 보니, 남들이 안 쓰는 나무가 제게는 금은보화나 같아요. 목공예를 하는 곳을 한 바퀴 돌면 그 사람들이 안 쓰고 쳐 박아 둔 나무 더미에서 보물 같은 것들을 값싸게 사오기도 합니다.”

정덕채 작가에게 나무는 인연과 같은 것이다. 억지로 또는 너무 가볍게 아무 나무하고나 관계를 맺지 않는다. 수 만번 스치는 옷깃 중에서 인연을 만나듯, 그에게 오는 나무는 따로 있다. 천년 고찰 주지스님이 준 50년 동안 뒹굴며 썩어가던 500년 된 나무와 인연을 맺고, 누군가 산 속에 버린 궤짝을 끌고 내려오기도 한다. 땅바닥에서 썩고 썩어 뼈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소재다. 대추나무를 뿌리 채 캐서 20년 만에 작품을 완성하기도 하고, 인위적인 작업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두 달 넘게 정성을 쏟은 것도 하루아침에 망치기도 한다. 오래된 나무와의 작품에 빠져 살다보니 인대가 끊어져 손가락 두 개를 못 썼던 적도 있고, 조각칼이 꽂힌 그대로 병원으로 간 적도 있다. 

“목공예에 빠져 살고 있는 지금도 하기 싫을 때는 돌밭으로 달려가요. 왜 돌이 좋을까 생각해봤는데, 모든 것 다 잊고 거기에 몰입할 때 너무 개운합니다. 돌을 줍고 안 줍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욕심만 갖고 돌밭에 갔던 세월도 길었어요. 20년쯤 지나니 욕심이 비워지더군요. 수석의 최고봉인 산수경석만 찾으려고 하니 보일 리가 있나요. 다 지우고, 다 비우고 나서 비로소 많은 산수경석을 얻었어요. 욕심이 마음의 눈을 닫아 버린 거죠. 수석이나 나무도 비슷합니다. 산이나 강가에서 무심히 뒹구는 돌이나, 수 십 년 동안 썩어 문드러진 나무나 생각하지 나름이고 의미를 담기 나름이지요.”

그의 호는 ‘바람’이다. 머물지 않고 움직이며 스스로 변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바람. 그 안에서 그는 가장 살아있음을 느낀다. 돌과 나무와 친구가 되어 수 십 년을 벗한다. 더불어 자연이 된다. 멈춰 있거나 갇혀 있거나, 잊혀져 있거나, 죽어 있는 자연의 일부에 또다시 생명의 입김을 불어 넣으며 스스로가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그. 도심안의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정덕채 작가다. 
<배영금 기자>

  •  
  •  
  •  
950 라이라이 수타면 이창희씨


수타와 백 짬뽕!  옛날 손맛이 그리우면 이곳에 오라

“기계로 면을 뺀 적도 당연히 있지요. 그거 하다가 손을 다친 적이 있어요. 그래서 기계로 하라면 마음이 편치 않고 어색해요. 손으로 빼는 것이 더 편하고 좋아요. 수타는 누구보다 자신 있습니다.”
‘라이라이 수타면’의 이창희씨가 서산에 정착하게 된 것은 수타에 대한 자신감과 서산의 발전에 따른 비전을 믿기 때문이라고. 예전에 수타면을 하던 집들이 이제 대부분 기계로 면을 뽑는 것을 보고, 승산이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서산의 공단시설과 인구유입이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는 계산도 섰다. 



“가게를 하려고 여기저기 많이 다녔어요. 이제 마지막일 텐데 기왕이면 괜찮은 목에 하고 싶었지요. 그러다가 지금의 자리를 보고 계약을 하고 싶었는데, 연이 닿지 않았어요. 익산에 있는 가게에 계약금 500만원을 걸고 올라가는데 연락이 와서 그 계약금 포기하고 이곳에 가게를 낸 거예요. 시골은 겨울이면 장사가 안 되는데, 여기는 어업, 농업, 산업 3박자가 다 맞아서 사계절 다 활기가 넘치니까 열심히 해서 인정만 받으면 입소문 듣고 오실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의 생각은 주효했다. 점심시간마다 제법 넓은 식당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성연면의 공단 사람들. 그가 옛날 방식의 수타만을 고집한다는 소문은 이 일대에서 이미 발이 달렸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수타 자장면과 굴 짬뽕. 이 집의 굴 짬뽕이나 백 짬뽕은 60~70년대 먹던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하얀 국물이 특징. 그는 하얀 국물로 개운하고 얼큰한 맛을 내기 위해 가을이 되면 노지에 있는 청양고추를 20~30여 박스 사다가 손질해서 냉동고에 저장해둔다. 그때그때 사서 쓰는 청양 고추는 비싸기도 하지만, 풋내가 나기 때문에 칼칼한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음식의 염도를 낮추기 위해 천일염을 고집하고 있다. 2~3년 간수를 뺀 후 볶아서 갈아 만든 천일염으로 음식의 간을 맞추면 염도도 낮으면서 깔끔한 맛이 난다고 한다. 





“소금하고 청양고추만 바꿔도 음식이 달라집니다. 대부분은 감으로 하는데 가끔 염도기를 넣어보고 있어요. 그러면 대부분 맞더라고요. 내가 먹는 음식 만든다고 생각하면 어려울 것도 없고 힘든 것도 없어요.”
그는 아침에 먼저 점심에 쓸 수타면을 어느 정도 빼서 냉장고에 숙성시켜둔다. 맛도 맛이지만, 점심시간에 몰려드는 손님들 맞이하며 한꺼번에 면을 빼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도 점심시간 중간에 면이 떨어져 여러 번 면을 일일이 뽑아 쓴다. 음식을 먹고 있다 보면 탕탕 소리가 울려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데, 그게 수타면 만드는 소리인줄 아는 사람들은 쫓아나가 구경하기도 한다. 요즘은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수타는 생 반죽을 쓰면 뻣뻣해요. 몇 분 두드리면 풀이 줄어서 몇 번 흔들면 완전 골라져요. 그때부터 가락을 빼는 거예요. 보통 먹는 수타면이 128가락이고, 더 굵은 옛날 면발을 원하면 한번 덜 빼면 되요. 기스면 같이 가는 면을 원하시면 두 번 더 접어서 빼면 되고요. 한 가닥이 숨이 죽으면 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어요. 어차피 기계보다 나으니까요.”
‘어서 오세요’라는 뜻을 지닌 ‘라이라이 수타면’집은 수타와 요리 담당인 남편과, 서빙 담당인 아내 둘이서 운영을 한다. 남편만큼 중국요리를 할 줄 아는 아내가 있어 아직은 그럭저럭 꾸려갈 수 있다. 



“나이가 있어서 힘들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수타는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요령으로 하는 거예요. 후배들에게 수타면 뽑는 것을 가르치면 어깨가 무너지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직장생활을 했으면 이 나이에 일이 끝났을 건데, 어릴 적 배운 기술로 여태 일할 수 있어서 참 좋지요”
한바탕 점심 손님이 휩쓸고 간 식당 안, 잠시 한적하다 싶더니 탕탕 수타면대와 면발이 만나 다시 경쾌한 소리를 낸다. 일흔 셋 그의 굵은 손가락 안에서 마치 마술처럼 면발이 나뉘어진다. 정확히 128가락이다. 수타를 사랑하는 그가 고집으로 뽑아내는 귀하디 귀한 면발들이다.
<배영금 기자>

  •  
  •  
  •  
949 맹꽁이도서관 지키는 안세영 관장


“도서관은 지금도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진행 중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도서관에 가는 것을 참 좋아했어요. 중학교는 예산에서 다녔는데, 시간이 나면 군립도서관에 다니며 책 보는 시간이 참 좋았어요. 백과사전이나 모차르트 등의 작곡가 책들이 소설보다 재밌더라고
요.”
인지의 태성산에 있는 ‘맹꽁이 도서관’의 안세영 관장은 주중에는 이곳 도서관을 지키고, 주말에는 1시간 30여분 거리를 달려 안양에 있는 ‘하늘과 씨앗 교회’ 목사 자리를 지킨다. 관장이라기 보다는 관리인에 가깝다는 안세영 관장은 이곳 맹꽁이 도서관을 짓는데 13년의 세월을 썼다. 산을 편편하게 다져 토목 공사를 한 다음에는 곳곳에 나무를 심고, 도서관을 어떻게 지을지 설계와 디자인을 연구했다고. 건물을 지을 때도 목수에게만 맡기지 않았다.

직접 목수 뒤를 따라다니며 직접 못질을 하며 집을 지었다. 도서관 안의 인테리어도 모두 그의 손이 닿은 것들. 안을 채우는 책장과 의자, 탁자 역시 그가 직접 자르고 못을 박아 만들어낸 것들이다. 
“무엇을 한번 하려고 계획을 세우면 보통이 10년이에요. 여기 맹꽁이 도서관도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진행중이구요. 아직도 멀었어요. 책도 더 채워 넣어야 하고, 잔디위에 정자와 인디언 집도 만들 겁니다. 언제나 진행중인 도서관, 변하는 도서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도서관 안팎을 다니며 정리하고 쓸고 닦는다. 잔디도 깎고 늘어진 나뭇가지도 전지하고 동물들 먹이도 직접 챙긴다. 그러다보니 도서관 대출 시스템을 챙기지 못해 안타깝다는 그는 틈틈이 지역 아동들을 위한 인재양성 프로그램에도 열심이다. 도움이 필요한 지역의 아이들을 불러 영어를 가르치고 있기도 하고, 자신의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며 모아뒀던 각종 스크랩 자료 들을 공유하며 더 많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도 마련해뒀다. 
안세영 관장은 그렇게 시골의 한 구석, 외진 산길에 덩그마니 서 있는 도서관에서 날마다 나눔과 섬김의 씨앗들을 뿌린다.
<배영금 기자>

  •  
  •  
  •  
948 인하 태권도 배순연 부관장


태권도는 곧 삶, 태권도 20년 인생

그녀는 20년이 훨씬 넘는 긴 시간을 태권도와 함께했다. 인생의 반 이상을 태권도와 함께 달려온 것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체육관에서 땀 흘리는 것이 좋았다. 지는 것을 싫어하는 승부욕은 한층 더 그녀를 성장시켰다. 태권도를 빼고는 그녀의 삶을 이야기할 수 없다. 그리고 그녀 역시도 태권도가 전부였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녀의 선하고 밝은 인상은 따뜻한 눈빛을 품어 모두를 보듬는다. 그러나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숨 막히는 카리스마로 곧 분위기를 압도한다. 그리고 그녀는 오로지 실력으로 보여준다. 여자라고 물러서지 않는다. 선수 생활을 하던 인천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녀의 명성이 자자했다고. 어떤 순간이든 그녀는 자신 있다. 악바리 근성으로 힘든 순간들을 이기고 버텨 내었다. 값진 경험들은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가장 큰 노하우는 ‘경험’ 이라고 말하는 인하 태권도 배순연 부관장. 

엄마의 마음으로 학생들을 다독이며 여자만이 가질 수 있는 섬세함과 꼼꼼함으로 아이들 하나하나를 살핀다. 오늘도 기합 소리 우렁찬 그녀의 태권도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딸이 하나라 강하게 컸으면 좋겠다는 아버지의 권유로 태권도를 배우게 되었죠. 5학년 후반부터 선수부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6학년 때 나간 첫 시합에서 2등을 하고, 중학교 1학년 때 출전한 전국대회에서는 전국 2등으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소녀가 생각지도 못하게 대회를 휩쓸게 되니 관심이 집중되었죠. 태권도에 대한 자부심 역시 강해졌습니다.”



배순연 부관장은 말로만 운동을 가르치지 않는다. 중·고등학생일수록 직접 몸으로 보여줘야 받아들이고 깨닫는 부분이 다르다는 것을 그녀는 안다. 그렇기에 한 가지라도 더 배워갈 수 있도록 그녀는 직접 시범을 보이며 몸으로 가르친다. 
“저는 무엇보다 인성을 최우선을 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인성을 갖추어야 올바른 인재로 바르게 커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위해 노력하고, 미래를 위해 인내하며 타인을 위해 배려하는 것이야말로 운동하는 모든 이의 기본 덕목이죠. 서산에서 처음으로 선수부 학생을 가르칠 때 무서운 사범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운동할 때는 빡빡하게, 그리고 예의에 벗어나는 부분은 단호하게 가르치며 태권도를 가르쳤습니다. 아들 삼 형제에게도 흐트러지지 않고 엄격하게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엄마로서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도록 노력하고 밖에 나가서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꼬맹이였던 제자들이 어느덧 군대를 다녀오고, 사회의 일원으로 맡은 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봤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잊지 않고 안부 전화를 걸어오고, 찾아오고 제자들을 보며 다시금 그녀는 힘을 낸다. 그리고 헛되지 않음에 감사해 한다.
배순연 부관장. 그녀의 하얀 도복이 멋지게 빛이 난다. 품고 있는 큰 꿈을 위해 오늘도 정직한 땀방울을 흘린다. 그녀의 열정으로 이 곳은 바르고 곧은 태권도 기합소리가 가득 차 있다. 태.권.도!
<이지희 기자>

- 인하태권도(단국대 석사)
-서산시 성연면 일람리 1106 테크노빌딩 4층 401호 ☎ 668-8866

  •  
  •  
  •  
947 부석중 졸업생 김복한 할아버지


부석중학교 62회 졸업생 김복환 할아버지

아직은 앳된 중학교 3학년 학생들 사이, 구부정한 허리에 지팡이를 의지하고 선 김복환 할아버지는 2월 8일 열린 부석중학교 제62회 졸업생중 최고령 학생이다. 올해나이 여든 하고도 여섯이니, 이번에 같이 졸업을 하는 16살의 친구들 하고는 자그마치 육십년이나 차이가 난다. 그 세월을 껑충 뛰어넘어 같은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같은 졸업장에서 졸업장을 받아드니 할아버지 감회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중학교 1학년을 다니다가 군대에 가는 바람에 중단된 공부를 이제야 마쳐, 속도 시원하고 후련도 하겠건만, 할아버지 마음은 며칠 전부터 서운하기만 하다. 그토록 다니고 싶던 학교를 졸업하면, 다시는 그리운 학교와 교실에 오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졸업의 기쁨보다 서운함이 갑절로 클 수 밖에. 

할아버지는 그 마음을 며칠 전부터 글로 적어 두었다. 그리고 졸업식 날 <작별의 인사>를 낭독했다. 교장선생님과 여러 선생님, 손주 뻘 되는 같은 반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보내는 편지다. 
<정든 우리 부석중학교 학생으로 만 2년간 교장선생님과 모든 선생님들 동문 학생들, 그리고 1, 2학년 학생들과 학교생활을 도와주신 교직원 여러분들 모두다 정이 많이 들었는데, 그 정을 막상 떼어놓고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무척이나 서운합니다.<중략> 속담에 사람은 만나고 헤어지는 게 정한 이치라 했지요. 지금은 섭섭하게 헤어지지만 다음에 만날 적에는 더욱 더 반갑게 만나기를 바랍니다.<후략>

며칠 전부터 할아버지는 학교에 오면 운동장도 자꾸 보고, 교실도, 친구들도 자꾸 돌아봤다. 떼놓고 가려니 자꾸 쳐다만 져서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했다는 할아버지. 
“굉장히 서운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심지어 교실까지 내 방삼아 있었으니 사람한테 정든 것이야 말할 것도 없지요. 이럴 거면 2학년부터 시작하지 말고 1학년부터 시작할 걸 그랬어요. 그래서 교장선생님한테 1학년부터 다닌 것으로 해서 1년 더 다니면 안 되겠냐고 여쭸는데, 졸업하기 전에 이야기 해야지, 이제 졸업해서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서운해요.” 

할아버지는 이날 졸업식에서 개근상을 받았다. 2년 개근에 빛나는 상은 할아버지가 얼마나 학교를 열심히 다녔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평상시 아프던 몸도 학교에 다니고 부터는 멀쩡했다는 할아버지는 학교 오가는 길이 그저 신나기만 했다고 말씀하신다. 
“처음에 이종렬 교장선생님이 입학 허가를 해주면서 용기를 주고 배움의 길을 열어 주신 게 너무 고마워요. 나한테 교복도 사주시면서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셔서 더 열심히 다닐 수 있었어요. 지금의 오경수 교장 선생님도 아침 등교 때마다 마중하시며 하루하루 학교생활에 불편이 없는지 늘 살펴주셔서 그 은혜도 잊을 수 없어요. 내가 수학시간마다 배우는 게 서툴고 힘들었을 텐데 잘 가르쳐주신 선생님도 고맙고, 교실 이동할 때나 공부할 때나 친할아버지처럼 꼭 챙겨 데리고가준 학생들도 참 착하고 그래요.”

김복환 할아버지는 학교를 다니면서부터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떳떳함이 생겼다고 한다. 사람들 앞에 나서도 이제 떨리지 않는 자신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는 할아버지는, 못 배운 한을 푼 것이 두고두고 잘한 일 같다고 흐뭇해하신다. 공부를 한 덕분에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저 멀리 여행을 갔을 때도 멀리서 알아보고 달려와 반갑다며 덥석 안는 사람들도 있었다며 자랑도 하신다. 
“나중에 느닷없이 학교에 오고 싶을 텐데 그럴 수도 없어서 큰일 났어요. 원래는 중학교 졸업하면 고등학교도 가고 그러려고 했는데, 아침마다 밥해주며 학교에 배웅해주던 사람도 저세상 가고 없으니 이제 더 기약은 못하겠네요.”

마지막으로 학교에 온 졸업식 날, 할아버지는 누구보다 더 많이 축하도 받고, 꽃다발도 받았다. 개근상도 받고, 졸업장도 받았다. 그리고 고마운 두 교장선생님에게 손수 쓴 편지도 드렸다. 더는 여한도 없으련만, 교문을 나서는 할아버지 고개가 자꾸 뒤로 돌려진다. 못 배운 한 풀고 싶었던 86세 김복환 할아버지의 졸업식이다.
<배영금 기자>  

  •  
  •  
  •  
946 244문화예술촌


화개천하춘(花開天下春)! 꽃이 피니 천하가 봄이로구나

아침 이슬이 실컷 훑고 간 물기 머금은 ‘곤포사일리지’위, 검은 물감을 가득 머금은 페인트 붓 하나가 무심하게 지나간다. 원을 그리는 가 싶더니, 가지를 치고, 굵고 거친 직선이 날아드는 가 싶더니, 점이 찍히고 갈퀴가 그려진다. 무엇일까? 알 수 없는 사이 다른 붓이 움적움적 붉은 빛깔을 드러내다가 쏜살같이 달려 나간다. 거침이 없는 호흡 하나다. 단 몇 초! 눈치 채기 전에 이미 끝나버렸다. 부릅뜨고 지켜봤건만, 붓의 끝만 좇는 사이, 전체의 그림이 남몰래 완성된다. 아! 닭의 볏이다. 닭의 붉은 볏이 뾰족뾰족 튀어나와서야 뒤늦은 탄성이 새어 나온다. “닭의 상징은 하트여!” 노란 하트모양의 심장이 그려지니, 벌떡벌떡 닭의 심장이 살아 움직인다. 정유년 닭띠해의 노란 심장이 창작 예술촌 위에 살아난다. 

봄의 시작을 알리던 입춘 날, 지곡면 중왕리 창작예술촌 작은 운동장에 놓인 둥근 원통 모양의 커다란 비닐 덩어리들. 추수가 끝 난 후 논에 있는 볏단을 일정한 모양으로 압축한 후 묶어서 비닐로 밀봉시킨 가축용 숙성사료인 ‘곤포 사일리지’가 오늘의 화폭이다. 자연과 인간의 기술이 만나 만든 거대한 화선지에 회원마다의 영감이 녹아드니, 예술촌 마당도, 봄도 알록달록 물들여진다. 누군가는 무의식 상태에서 붓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붓을 놀리고, 누군가는 빨갛고 노란 하트만 가득 그려댄다. 옥빛의 소먹이 사료가 정열적인 사랑으로만 꽉 차고 말았다. 파란 물감이 주르륵 흘러내리며 노란빛과 만나니, 대지를 적시는 짙은 초록빛 봄비가 되었다. 

오늘의 주제는 ‘대지미술로 새해소망을 말하다’. 대지미술에 대한 선구자인 황석봉 작가와 그의 제자들인 ‘244문화예술촌’(회장 박종서 회원 황석봉, 김종일, 조성훈, 조성호, 송영옥, 김광호, 정덕채, 안종미, 조선임) 회원들이 봄맞이 퍼포먼스를 펼친다. 붓이 가면 가는 대로 아름답고, 여백 또한 편안하다. 때마침 2월의 찬바람은 자장가처럼 잦아들고, 대지는 느리고 깊은 호흡으로 봄의 기운을 폐 깊숙이 머금는다. 
정치도 시끄럽고, 나라도 어수선하다. 민심은 얼어붙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시절이다. 그 메마른 대지에 창작예술촌 황석봉 촌장의 붓이 다시 달려 나간다. 화개천하춘(花開天下春)! 꽃 한송이 피니 천하가 봄이다. 노란 나비까지 한 마리 그림으로 날아드니, 그 꽃 한송이, 여기서 먼저 피었다.
<배영금 기자>  

  •  
  •  
  •  
945 현대익스프레스 최경숙 대표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갈 길 ‘이삿짐 천직 인생’

“저는 이삿짐 일이 참 좋아요. 이사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짐이 다른 곳으로 공간 이동을 하는 그 이상의 의미잖아요. 무엇인가 시작되고, 끝나는 지점을 함께 하다 보니, 이사 하나하나가 다 특별해요. 그 사람의 삶 안에서 함께 하는 그런 기분이라고 할까? 그래서 한 집 한 집 최선을 다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벌써 15년이다. 누군가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누군가의 삶이 재정비되는 이사의 한가운데에서 그렇게 오랜 세월을 보냈다. 남자들이나 하는 이사일, 겁도 없이 덤벼 15년을 버텼다. 처음에는 남편도 없이 억척스레 5년을, 그 다음 10년은 남편과 함께 든든하게 일을 했다. 그 안에서 보람도 찾고, 사명도 찾았다. 언젠가 부터는 천직의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참 귀했다. 서산에서 현대익스프레스 이삿짐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최경숙(53)대표. 15년 전 동생이 정리하려고 내놓은 이삿짐센터를 덜컥 인수해, 지금은 탑차 2대, 사다리차 2대, 화물차 2대, 직원 13명을 거느린 탄탄한 업체로 만든 장본인이다. 

지금이야 개인 집과 사무실 이사는 기본으로, 의료기관, 학교, 대기업, 공기업들의 대규모 이사까지 맡아 하고 있는 굵직한 이삿짐 업체로 인정받고 있지만, 시작할 당시는 어려움도 많았다. 여자라는 한계도 컸고, 부딪쳐야 할 것도 많았다. 
“여자가 이삿짐센터를 운영하는 일이 굉장히 생소하던 때였어요. 처음에는 남편 없이 저 혼자 5년을 했었는데, 일하는 분들을 데리고 제가 주방 일을 맡아 했었어요. 그 당시 우리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냉장고 청소 서비스를 해드렸는데, 고객들에게는 칭찬도 많이 들었지만, 힘든 일도 많았어요. 또 일요일에 이사를 하지 않는 것도 저희뿐이었어요. 그러다가 망한다는 소리도 듣고, 남편하고 싸운 적도 많지만, 이제는 정착이 돼서 이제 현대익스프레스 하면 일요일에 이사안하는 집으로 아예 통하고 있어요.”

그녀의 전화기에 저장된 고객만도 3천여 명. 모두가 이사를 하며 엮어진 인연들이다. 몇 년 전 안동으로 이사를 간 어느 부부의사는 그 많은 의학서적을 밴딩기계로 말끔하게 묶어 옮겨준 것을 잊지 못해 지금도 연락을 하고 있고, 또 어느 주부는 전근이 잦은 남편 때문에 이사를 할 적마다 그녀에게 전화를 한다. 그렇게 모아진 인연들이 많다보니, 그녀의 전화기는 늘 견적의뢰와 이사 문의로 쉴 틈이 없다. 낮에 운동을 하는 일도, 친구를 만나는 일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유다. 

“처음에 탑 차를 세대 운영할 때는 그 차들을 다 돌리려니 일정도 무리하게 잡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과감하게 한 대를 줄였어요. 두 대만 가지고 열심히 살고, 열심히 베풀자는 마음으로 살았어요. 할 수 있는 한도가 정해져 있으니까 욕심이 자연스레 비워지고, 일하기도 더 수월해졌어요. 항상 열심히 일해 주는 직원들에게도 늘 고마운 마음이죠. 일을 배워 나가 사업을 시작한 직원들도 있지만, 저희는 좋은 경쟁관계라고 생각해요.”

견적을 내고, 일정을 잡고, 이사를 하는 일이 쉬운 일이 없고 복잡하지만, 그녀는 늘 이사하는 틈틈이 나누는 삶을 실천한다. 이사 가는 집에서 필요 없어진 가구나 가전제품 들을, 시골의 교회나, 살림이 어렵거나 필요한 집, 비영리 단체 등에 연결해 실어다 주고 있다. 얼마 전에도 김치냉장고, 온풍기, 냉장고, 에어컨 등 가전제품 총 6대를 서울의 노숙자쉼터 사무실에 주고 왔다. 이삿짐 일을 하기 때문에 펼칠 수 있는 특별한 봉사의 길이 너무 좋다는 그녀는 이 일을 평생의 사명으로 여기고 있는 중이다. 

그녀가 많은 것을 가진 지금에도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은 IMF로 인해 무일푼이 되었을 때, 사람 하나 보고 큰 도움을 준 인연을 잊지 않기 때문이다. 이삿짐센터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1억 원의 예탁금이 필요했는데, 10원 하나 없는 그녀에게 아파트 청소 일을 하시던 분이 1억 원의 돈을 선뜻 빌려줬다고. 그 큰돈을 갖고 그냥 도망갈 수도 있는 일인데, 자신을 믿어준 사람을 봐서라도 더 이를 악물었던 그녀는 결국 성공의 결과를 얻고야 말았다.

고마운 인연을 늘 가슴에 담고 살며, 고객과의 새로운 인연 역시 늘 기억에 저장하는 것이 습관이 된 그녀. 최경숙 대표는 그렇게 일을 즐기다보니, 결국 일에 감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사하는 일은 누구나 인생의 큰 변화가 시작되는 순간이잖아요. 사업이 기울어 집을 줄여 이사를 갈 수도 있고, 어렵게 살다가 살림이 펴서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갈 수도 있잖아요. 그런 순간의 시작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이삿짐 일의 의미가 참 큰 거 같아요. 다시 하라고 해도 제가 이삿짐 일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예요. 이삿짐 일은 제 천직이랍니다.”
이사 인생에 보람도 실리고, 기쁨도 실리니, 삐그덕 삐그덕 탑차가 가득 찼다. 그녀가 꾸려가는 이삿짐 인생이다.
<배영금 기자>


  •  
  •  
  •  
944 독거노인, 우리의 미래이자 사회의 자화상


‘혼자’의 그 쓸쓸한 삶, 그 무거움에 대하여

원래부터 혼자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큰 아들이 큰 도시에 있는 학교에 다닌다고 나가 결혼까지 하더니 연락이 뜸해지고, 작은 아들은 외국으로 이민을 갔다. 세 딸은 결혼하고 나서는 1년에 하루 생일에만 본다. 영감하고 둘! 서로 그림자처럼 붙어살았다. 열아홉 살에 시집와 여든 일곱이 되도록 칠십여 년을 같이 산 영감은 십년도 더 전에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고, 아무도 없는 이 집을 망부석처럼 지켰다. 그렇게 할머니는 혼자 사는 사람이 됐다. 세상에서 불리워지는 그 이름 ‘독거노인’. 

혼자 한 끼 먹자고 챙기는 것도 귀찮고 힘들어 굶는 일이 많아도, 전기세 아까워 불 끄고 지내는 밤이 많아도 견딜 만 했다. 날짜 가는 것도 까먹은 채 해가 바뀌는 것도 덤덤해지고, 나이를 헤아리는 것조차 부질없는 일이 됐다. 문득문득 외로움이 뼛속까지 사무치면, 울리지 않는 전화기만 들었다 놨다 했다. 질기디 질긴 목숨 이렇게도 길까! 이번 설에도, 오지 않는 자식들. 평생을 헌신하며 키웠더니, 헌신짝 신세가 된 걸까. 한숨도, 눈물도 바짝 말라버렸다. 이렇게 혼자 쪼그라져 아무도 모르게 스러져 버리면 어쩌나. 기왕 한번 죽는 거 곱게 곱게 가야 할 텐데. 이렇게 혼자 남아, 혼자 죽어도 세상사람 아무도 모를 일이 가장 겁나는 일이 되어 버렸다. 덜커덩 소리에 누가 왔을 새라 삐그덕 문을 열어보지만, 야속한 겨울바람만이 대문을 흔드는 밤, 할머니의 겨울밤이 실타래처럼 길다.

2016년 1월 기준 6,683명이던 서산지역 독거노인의 수가 같은 해 6월에는 6,816명, 12월에는 6,930명으로 늘어 1년 안에 250여명이나 증가했다. 사회구조와 가족관계의 변화로 이같은 수치는 앞으로도 더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독거노인과 같은 1인 세대는 단절과 소외로 이어져, 요즘 한창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고독사’와 ‘노인자살’의 어두운 그림자가 되고 있다. 우리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2015년 12월 29일에는 77세의 노인이 12월의 엄동설한에 마당에서 쓰러진 채 홀로 쓸쓸히 숨진 사건이 발생,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한편 지난해 11월 충남도의회 문화복지위원회의 ‘제292회 정례회 충남도청 보건복지국 소관 행정사무감사’자료에 따르면, 충남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노인들의 자살률이 전국 1위를 기록했다. 최근 2년간 지역 노인의 자살 건수는 2014년 246명, 2015년 265명 등 511명으로 집계됐으며, 지역별(2014년 기준)로는 천안시 37명, 아산시 22명, 보령시 21명, 서산시 20명 등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모두 늙는다. 1인 가구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생애주기이다. 독거노인 역시 사회구조와 가족관계의 변화 앞에서 피해갈 수 없는 앞으로의 현실이다. 고독사와 자살은 불운한 남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이자 내 문제이다. 사회적 단절과 소외로 인한 고독, 가정 내 빈곤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건강악화, 공동체 붕괴로 인한 독거노인들의 아픔은 이 사회가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숙제이다. 
온 가족이 한데 모였다가 흩어지는 명절의 뒷자락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혼자’의 그 쓸쓸한 삶과 대안을 더듬어 본다.
<배영금 기자>  

  •  
  •  
  •  




내가 아직 살아있는 동안에는 나로 하여금 헛되이 살지 않게 하라. - 에머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