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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8 아이숲 유치원_기린차 운행하는 안인호 기사님


‘젊은 오빠’ 또는 ‘남자 천사’

“한번 왔다 가는 인생인데 아름답게 살다 가야쥬. 안그래유?”
아이숲유치원 기린차를 운행하는 안인호 기사는 우리 지역에서는 제법 유명한 스타이다. 얼마전 방송에서도 나와서 그의 일상들을 촬영해갔다. 엄마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다. 기사선생님이 좋다는 아이들은 유치원 차를 기다리고, 유치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안인호기사가 아이숲 유치원 등하원 차량을 운행하기 시작한 것은 2016년 3월. 지인의 소개로 시작한 일은 1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를 더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유치원 원장님이 처음에는 제 나이가 너무 많아서 걱정을 좀 하셨는데, 한 바퀴 같이 타고 다니며 운전하는 것을 보시더니 믿고 맡겨 주시더라고요. 저는 과속도 안하고 신호위반도 하지 않아요. 애들이 다 제 가족 같고 손주들 같으니까 아껴야 한다는 마음이지요. 기사님 기사님 하면서 따르고 좋아해주는 것을 보면 더 잘하고 싶어요.”
안인호 기사는 차량 운행을 하지 않는 시간 틈틈이 유치원 곳곳을 가꾼다.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보리를 캐와 화분에 심어두고, 산에 가서 대나무를 잘라와 터널도 만들었다. 조롱박 터널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어서이다. 작은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해바라기도 키운다. 조금 더 크면 유치원 정원 곳곳에 심어 아이들이 키재기하며 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겨울이면 인조 눈사람을 만들어 눈코입 목도리도 만들어 주고, 버스 안은 항상 안방처럼 치우고 가꾼다. 



“놀면 뭐해요. 원장님이나 선생님들도 여자분들이고, 기사님들은 농사도 짓고 또 하는 일도 있어서 바쁘니까 제가 그냥 하는 거예요. 그냥 여기 유치원 곳곳이 예뻐져서 이곳에서 지내는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이곳에 온 어머님들이 좋아하셨으면 좋겠어요. 좋은 유치원이라는 소문이 나서 정원이 꽉 차면 그게 제 보람이 될 것 같네요.”
그는 원래 과수원도 크게 하고, 간월도에서 3층짜리 횟집도 직접 운영했었다.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로 횟집을 접고 이것저것 소일하며 지내다가 지인의 소개로 유치원 차량을 운행하기 시작한 것. 아침 7시면 집에서 나가 유치원에 출근해 버스를 운행하고 저녁 5시 반에 퇴근한다. 매주 화요일에는 종합사회복지관에 들러 친구들과 어울리고 주말에는 해미읍성 등지에서 열리는 전통 문화공연 등에 초청을 받아 태평소 공연을 연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외로운 마음에 배워 불기 시작한 태평소는 76세가 된 그의 인생에 가장 친한 친구가 됐다. 거기에 노랗고 빨간 색이 돋보이는 화려한 옷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지 오래. 



“간월도 횟집을 팔고 나와서 어느날 텔레비전을 보는데 송대관이니 태진아니 하는 가수들 입은 옷이 너무 멋져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집사람에게 빨간바지 입고 싶다고 했더니, 18만원짜리 빨간 바지를 사왔어요. 그 다음에는 노란 바지를 2개 사오고, 나중에는 같이 양품점에 가서 한 벌에 65만원 짜리 옷들도 많이 맞췄어요. 그게 벌써 40~50벌이나 되요. 아침마다 집사람이 나비넥타이도 골라서 매주는데 저는 그게 행복이에요. 싫다 안하고 오히려 더 나서서 남편 원하는 거 해주니 너무 고맙지요. 매사 고맙고 기쁘게 사는 게 제 건강의 비결이랍니다.”

안인호 기사는 건강검진을 하는 것 외에는 아파서 병원에 가본 적이 없을 정도로 건강함을 자랑한다. 바보처럼 살면 그게 건강하게 오래 사는 비결이라고 말하는 안인호씨는 젊어서부터 일하는 것을 즐겨 했다. 지금 나이에 쉬는 것이 끔찍하다는 그는‘쉴 때가 됐구나’하고 느끼기 전에 부지런히 몸을 놀리고 열심히 일을 찾아 할 생각이다. 그런 안인호 기사를 두고 아이숲 유치원 원장님은‘남자 천사’라 칭한다. 건강관리와 인맥관리를 하며 늘 베풀고 인사하고 살아가는 그의 삶은 늘 엔돌핀을 돌게 한다고 칭찬 일색이다. 
언젠가 길에서 나비 넥타이에 알록달록 화려한 양복을 갖춰 입은 그를 보면 먼저 인사를 건네보자.“멋쟁이 오빠, 안녕하세요.”행복을 전염시키는 그를 만나는 것이 반가울 게 틀림 없으니까.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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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7 마을학교 졸업생부부


마을학교 부부 졸업생 탄생

부석면 월계1리 마을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부부 졸업생이 탄생하는 경사가 있었다. 주인공은 바로 박치석(82), 이화자(78)부부. 3월 20일 오후 3시 30분 마을회관에서 열린 이날 졸업식에서는 11명의 월계1리 어르신들이 이완섭 시장으로부터 졸업장과 꽃다발을 받는 가운데, 부부 졸업생이 탄생해 더 큰 축하와 격려를 받았다. 

특히 이들 부부는 몸이 불편한 가운데에서도 마을학교에 열심히 다니며 졸업장을 받게 돼 타의 모범이 되기도. 다리 종양수술과 위암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받느라 몸이 아프고 불편해도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던 박치석 할아버지는 원래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했다. 이번에 기회가 돼서 부인과 함께 마을 학교를 졸업하게 된 것. 부인 이화자 할머니는 허리디스크 수술을 하고 나서도 허리가 펴지지 않아 굽은 몸을 하고서도 4년간을 다닌 끝에 결국 학사모를 쓰고 졸업을 하게 됐다. 특히 박치석 어르신은 11명의 졸업생 가운데 유일한 청일점이라 부부가 함께 사이좋게 마을 학교에 다니는 동안 많은 부러움을 사기도. 

“4년 사이에 학생들도 참 많이 달라졌어요. 아파서 중간에 못오시는 분도 있었고 해서 안타까웠지요. 졸업을 한다고 하니까 좋기도 한데 많이 서운해요. 4년간 학교 가는 일이 참 재미나고 당연한 일이 됐는데, 이제 갈 학교가 없으니까 허전하지요.”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이면 선생님 만나 배우는 것이 좋았던 이화자 할머니는 이번 졸업식에서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준비해 낭독했다. 헤어지는 것이 서운하고, 졸업하는 것이 기뻐서 자꾸 눈물이 나왔다는 할머니는 같이 해준 남편이 있어 의지가 됐다고 전했다. 

“치매예방이라도 할까 싶고 뭐라도 하나 더 배우자 싶어서 학교에 다니게 됐는데, 얻어진 게 참 많아요. 선생님과 세상사는 이야기도 하고, 배우다 보니 어릴 적 배웠던 유전법칙도 떠올려지더라고요. 시장님이나 선생님이나 참 감사하지요. 누가 우리같은 늙은이들을 이렇게 대우해주겠어요. 졸업을 했다는 것이 참 감개무량합니다.”
박치석 할아버지는 그동안 배운 책들을 고이 싸서 상자에 넣어 보관해뒀다. 만들고, 그리고 썼던 글들도 소중히 넣어뒀다. 할머니도 마찬가지. 졸업앨범을 꺼내 한 장 한 장 들춰보며 벌써부터 학교를 그리워하신다. 적적하고 외로운 삶, 마을 학교는 이들에게 기쁨이고 행복이었다.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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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6 서산시 마을학교


배우는 게 제일 행복한 마을 학교의 늦깎이 학생들 

지곡면 환성3리 마을학교에 다니는 김춘자 할머니는 올해 나이 일흔 다섯이다. 스물 한 살에 장남한테 시집와서 시동생, 시누이 여덟 명과 자식 둘을 가르쳤다. 나이 아홉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학교 공부를 다 마치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 됐던 할머니는 아직도 하얀 ‘에리’ 눈부신 교복이 눈에 선하다. 그 교복이 그토록 입고 싶었건만,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오라버니 등만 야속하게 쳐다본 세월! 아는 글자도 살림하고 농사짓느라 다 까먹은 시간들! 일흔 다섯 살의 나이에도 미련이 남아 다시 연필을 잡았다.

매주 월요일, 수요일 10시가 되면 열리는 마을 학교. 같은 마을 사촌 올케도 같이 배우는 동급생이고, 나이가 한참 많은 동네 언니도 같은 반이다. 작년에는 제11회 서산시 문해백일장에 참가해 ‘학교가는 길’이라는 작품을 써내서 대상을 받았다. 만날 공부하러 학교 다니는 것도 꿈만 같이 좋은데, 대상이라는 소리에 너무 좋아서 사흘 저녁을 잠을 못 잔 할머니는 아흔 네살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틈틈이 한글을 익히고 공부를 한다. 마을학교가 아니었으면 셰퍼트처럼 집만 보고 있었을 삶, 어제 배운 것 오늘 잊어버려도 학교 가서 선생님 만나는 일이 그토록 즐겁다. 



김춘자 할머니의 사촌올케인 신숙자(74)할머니는 자식들 한글 배울 때 어깨너머로 글을 배웠다. 2015년 1월 13일에 열린 마을 학교에서 정식으로 한글을 다시 배우는 중이다. 잘하지는 못해도 받아쓰기가 제일 재미있다는 신 할머니는 배우는 것중에서 쌍받침만 나오면 기가 죽는다. ‘볶다’의 ‘ㄲ’, ‘있다’의 ‘ㅆ’처럼 같은 자음이 겹쳐서 된 된소리 받침인 쌍받침, ‘넓다’, ‘없다’처럼 서로 다른 두 개의 자음으로 이루어진 겹받침이 너무 어려워서 무조건 열심히 쓰고 외우지만, 뒤돌아서면 까먹기 일쑤. 요즘에는 영어도 배우기 시작해 알파벳도 A, B, C, D, E까지 다섯 개나 익혔다. “CD가 뭔지도 몰랐어. 그냥 동그란게 씨디라고 하니까 씨디인줄 알았지. 이제 알겄어. 카드에 쓰인 BC도 읽고, 시장가면 ‘BYC’ 내복가게도 읽을 줄 알지. 요즘 지은 아파트 영어 이름도 척척 읽을 날이 오겄지. 배우는 게 참 어려워도 참 재밌고 좋아.”

요즘 서산의 농촌마을마다 있는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에 가면 글 읽는 소리가 담을 넘는다. “가갸거겨 나냐너너”, “12345678910”, “ABCD” 한글이면 한글, 수학이면 수학, 그리고 영어면 영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열기가 마을마다 경쟁을 하듯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서산시에서 마을을 직접 찾아가 문해교육을 실시하는 마을학교의 훈훈한 모습들이다. 
마을학교는 농어촌 지역 등 교육 소외지역의 비문해자를 대상으로 마을회관 또는 경로당 등 다수의 비문해자가 모이는 장소를 활용하여 실시하는 교육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현재 세계최고 수준을 달리고 있지만, 불과 우리의 부모님 세대만 해도 학령기 동안 가난이나 건강, 성차별 등의 문제로 인해 기초교육을 받을 기회를 놓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비문해 성인을 대상으로 최소한의 국민기초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마을학교 운영의 취지이자 목표. 



서산시는 2006년부터 비문해자를 대상으로 마을학교를 운영해 지금까지 74개소에서 총 877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현재는 42개소에서 632명이 배움의 갈증을 속 시원하게 풀고 있는 중. 3월 현재 운영 중인 마을 학교는 대산읍에 영탑1리, 대산노인대학, 인지면에 야당1리, 모월1리, 애정1리, 부석면에 월계2리, 대두1리, 대두2리, 지산3리, 팔봉면에 어송2리, 지곡면에 화천1리, 화천3리, 장현1리, 장현2리, 대요1리, 대요2리, 환성1리, 환성2리, 환성3리 거점, 무장2리에 있다. 또한 성연면에는 일람3리, 고남3리, 평리, 운산면에는 용장1리, 용장3리, 상성리, 거성2리, 해미면에 대곡1리, 산수리, 조산리, 고북면에 신정1리, 사기리가 있으며 부춘동의 갈산2통, 동문2동의 동문 47통과 동문 63통, 수석동의 수석1통과 석림3통에도 마을 학교가 운영 중이다. 또 학습센터 거점, 학습센터 예비중, 서산석림사회복지관의 예비중, 복지관 대산분관의 예비중, 부석면 봉락2리의 예비중도 마련되어 배움의 기회와 문을 확대했다. 

마을학교에서의 학력인정 기간은 총 3년. 6년 과정을 3년 과정 안에 응축시켜 진행한다. 마을학교마다의 사정과 과정을 고려하여 4년이 걸리기도 하고, 5년이 걸리기도 한다. 부부가 나란히 학교를 다니며 졸업장을 같이 받기도 하고, 90세 넘은 백발의 노인이 뒤늦은 향학열을 불태우기도 한다. 2015년에는 부석면 봉락1리 마을 학교에 90대 시어머니와 60대 며느리 고부(姑婦) 졸업생 이 탄생해 ‘화제’가 됐었다. 여러 가지 형편으로 젊은 시절 학교 문턱을 밟지 못했던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배움의 한을 풀기 위해 2009년 12월 배움교실에 함께 등록해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며 5년 2개월 만에 과정을 무사히 마친 것. 



지곡면 대요2리의 최정순 할머니도 91세의 노익장을 자랑하며 마을학교에 열심히 다니신다. 대요리에서 나고 자라난 할머니는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산 것이 한이 돼 뒤늦게 용기를 냈다. 이제는 이름도 쓸 줄 알고, 못 읽던 간판 글씨도 읽어지니 편하고 좋다고 하신다. 
“학교 문앞에 가보지도 못해서 답답했는데, 이제 내 앞은 다듬어요. 선생님이 참 자상하고 좋아서 잘 가르쳐 주시는데, 우리가 하도 까먹어서 속이 푹신 썩을껴. 숙제 내주신 것은 열심히 해요. 안해온 적이 없어요. 아프면 할 수 없이 빠지는데 거의 다 학교에 와요. 발이 저려서 오래 앉아 있으면 힘들긴 해요. 앞으로 더 재미나게 숙제도 하고,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살아야지요. 선생님이 아프려면 허락받고 아프라고 하니까 그래야지유.”

같은 마을 학교에 다니는 배선자(80)할머니는 마을학교 4년차 학생으로 내년 졸업을 앞두고 있다. “어려서 4학년 까지는 학교를 다녔는데 6.25 사변 나고 몸 아프고 그렇게 빠지면서 중도 포기하고 여태 그냥 살았어요. 여기 다니는 할머니들이 죄다 말하자면 낫놓고 기억자도 모르잖아요. 받침자도 어렵고, 쌍받침은 더 어렵지. 그냥 열심히 다니는 거지. 하다보면 재미도 나고 해요. 난 수학이 그렇게 재미가 있어요. 기초니까 어렵지도 않고 해서 수학시간이 제일 기다려지네요.”
대요2리 마을학교의 오늘 수업은 ‘ㅈ’과 ‘ㅊ’에 대해 배우는 것.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하루에 딱 두 개씩 배우며 한글을 익혀 간다. 자두, 저고리, 조기, 주부, 치즈, 지하, 차비, 초보, 추수 등 단어도 익히고 분단별 읽기 시합도 한다. 할머니들 신나게 읽기 시합하는 소리가 한여름 개구리 소리처럼 시원하게 듣기 좋다. 



“오늘도 잊어주셔서 다시 가르쳐 드릴 수 있어요.” 선생님 소리에 여학생들처럼 웃음이 터진다. 영낙없는 중학교, 고등학교 여학생들이다. 
같은 날 지곡면 환성3리의 마을 학교도 공부 열기가 한창 달아 올랐다.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한 자 한 자 또박 또박 써내려가는 할머니들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공부가 지루하다 싶으면 노래에 맞춰 율동도 한다. 오늘은 ‘묻지 마세요’라는 노래. “여기까지 왔는데, 앞만 보고 왔는데, 지나온 세월에 서러운 눈물 서산 넘어 가는 청춘 떠나는 줄 몰랐구나 세월아 가지 말아라” 가사는 어쩌면 그리도 인생을 그대로 이야기 하는지, 교실이 떠나가라 열창에 빠져든다. 노래하는 시간이 지나고 다시 공부가 이어지는데도 ‘세월아 가지 말아라’를 흥얼거리며 ‘소방관’을 쓰고, ‘의사’를 쓴다. 오늘 배우는 것은 다양한 직업의 세계. 요리사, 선생님, 공무원이 이어지는 중에 ‘화가’를 ‘하가’로 쓴 짝꿍 글씨를 ‘화가’로 고쳐주고, 선생님은 다시 ‘화가’의 ‘화’는 ‘화요일’의 ‘화’라고 반복해서 일깨워준다. 

“한글과 수학 등만 배우는 게 아니라 특별활동도 하고 재량 수업도 해요. 미술 수업도 하고 행사에도 참여하죠. 그림도 얼마나 잘 그리고 글도 얼마나 잘 쓰는지 몰라요. 글이야 배운거 돌아서서 까먹어도 다시 배우면 되는 거고, 다같이 모여 함께 배우고 숙제도 하고, 밥도 같이 먹으며 한나절 같이 지내는 것을 참 좋아하세요. 가르치는 보람도 크고, 선생님 선생님 하며 따라주시니까 더 열심히 잘 할 수 밖에 없어요.”
환성3리의 마을 학교 선생님을 맡은 문선희(47) 선생님은 마을 학교 자체가 할머니들 인생에 삶의 생기가 되고 활력이 된다고 전했다. 



표승래(71) 할머니는 미술은 애들이나 그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늙어서 그림도 그리는 것이 너무 기쁘다고 하신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늙은이 가르쳐 주는 선생님도 고맙고, 잘 노르는 거 옆에서 일러주는 짝꿍도 고맙다. 아무리 바빠도 학교 가는 날 만큼은 까먹지 않으려고 한다는 표 할머니는 배우는 재미에 늙는 줄도 모른다고. 76세의 홍순표 할머니도 혼자 집에 앉아 있는 것보다 다 같이 모여 배우는 시간이 좋아 열심히 마을 학교를 다닌다. 
“모르는 거 받아쓸 때는 어질병이 났어. 모르는 거 받아쓰려고 해봐. 어지럽지. 쌍받침 받아  쓰라고 하면 환장할 노릇이지. 그래도 다 좋아요. 하루라도 빠지면 손해 보는 것 같아서 웬만하면 안 빠지고 다들 열심이지요.”

다들 평균 나이가 칠십 세 중반, 그나마 칠십대는 젊은 축이고 팔십대는 되어야 나이대접을 받는다. 나이가 나이다 보니 눈도 침침하다. 귀도 잘 안 들린다. 손은 떨리고, 아픈 데도 많다. 집안 살림도 아직 할머니들 몫이고, 농사철이 되면 논으로, 밭으로 달려가 일꾼처럼 일도 해야 한다. 그래도 마을학교가 열리는 시간이 되면 가방 안에 책과 필통을 챙겨 학교에 가고, 쉬는 시간 틈틈이 숙제도 한다. 저녁에 드라마를 보고 나서는 돋보기를 꺼내 쓰고 오늘 배운 글자들을 한 자 한 자 복습도 한다. 아들에게 편지도 써보고, 며느리에게 문자도 보내본다. 손자가 놀러오면 같이 한글 공부도 한다. 계집애가 배워서 어디에 써먹느냐고 가보지 못한 학교, 보릿고개 나느라 너무 가난해서 포기했던 학교. 다시는 가보지 못할 줄 알았다. 그래서 포기하고 살았다. 못배웠다고 무시도 당하고, 지레 기도 죽었다. 이름자도 못 써보고 갈 줄 알았는데, 이제 자신 있게 이름도 쓰고, 간판도 읽는다. 애들이 놓고 간 동화책도 읽을 줄 알고, 텔레비전 뉴스 자막도 챙겨볼 수 있다. 휙휙 지나가도, 글자가 보이고 읽히는 세상이 하루하루 재밌다. 늦깎이 학생들의 배우는 재미가 마을마다 동화속 이야기처럼 훈훈하게 피어오른다.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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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5 국제라이온스클럽 강완설 부총재


진심어린 섬김의 마음을 담은‘따뜻한 밥차’

‘따뜻한 밥차’ 봉사 단장을 맡은 국제라이온스클럽 356-F지구 서산지역 협의회 강완설 부총재는 매주 목요일이 더 없이 특별하다. 매주 200여 분의 어르신들이 ‘따뜻한 밥차’를 어김없이 찾아 즐거운 식사를 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봉사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더 커지며 누구보다 더 큰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 

“‘따뜻한 밥차’의 봉사 주축을 맡다보니, 서산지역 12개 라이온스 클럽 480여명의 회원들이 지대별로 조를 나눠 매주 30여 명씩 밥 차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봉사는 다 소중하고 의미가 있지만, 특히 먹는 봉사는 마음이 더 따뜻하고 훈훈해서 매주 보람을 느낍니다. 매일 혼자 드시다가 같이 드시는 모습이나, 매주 색다른 메뉴의 식사를 하시며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면 내 부모를 보듯 마음이 참 뿌듯하지요.”



서산지역 라이온스 클럽 회원들은 ‘따뜻한 밥차’가 운영되기 하루 전인 수요일이면 장을 미리 보는 것으로 밥차 봉사를 시작한다. 음식은 미리 해두면 식거나 맛이 없어지기 때문에 당일 아침에 만드는 것이 원칙. 라이온스 클럽 회원 중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 여러 명 있기 때문에 장소와 솜씨를 빌려 아침 6시부터 그날 점심에 나갈 메뉴의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다. 음식을 만들면 밥차로 나르고, 천막을 치고, 또 의자를 배열하고 뒷정리 까지 도맡아 하는 것이 회원들의 임무. 처음 ‘따뜻한 밥차’ 운영과 봉사의 책임을 맡게 되었을 때는 안산으로 견학도 가서 보고 익히며 좋은 방법을 접목해서 방향도 찾았을 정도로 시작과 끝 모두가 열심이다.

“매주 목요일 ‘따뜻한 밥차’에 오셔서 식사를 하시는 분들이 보통 200~250여분이 됩니다. 여럿이 먹으면 무엇이든 더 맛있는 법이니, 혼자 외롭게 드시거나 점심을 거르지 마시고 꼭 오셔서 따뜻한 밥을 드시고 가시길 바랍니다.”
7년 전 서산 라이온스 회장직으로 있을 때 중국음식점인 ‘띵호와’에서 한 달에 두 번씩 하는 식사봉사를 하며 음식으로 나누는 봉사에 큰 매력을 느꼈다는 강완설 부총재는 모든 회원들은 물론 다른 봉사자 모두와 함께 ‘따뜻한 밥차’에 진심어린 섬김의 마음을 담고 있다고 전했다.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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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4 나눔봉사단체_빵이랑 떡이랑


빵과 떡, 그 거룩한 나눔에 대하여

떡은 여유고 인심이다. 매일 먹는 밥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배를 곯는 사람이 해먹을 수 없는 것이 떡이고, 돈이 없는 사람이 쉽게 사먹을 수 없는 것이 빵이다. 쌀과 밥은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기본이지만, 빵과 떡은 그 이상의 여유가 있어야만 가능하기에 그 나눔 또한 특별할 수 밖에 없다. 
봉사단체로 출발해 사단법인으로 설립된 ‘빵이랑 떡이랑’은 하루도 빠짐없이 빵과 떡을 만들어 이웃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우리지역의 가장 인심 좋은 ‘곳간’이다. 미래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장혜순 원장과 학원을 운영하던 이은희 원장이 공동 대표를 맡아 월급의 전부를 기부하며 이곳을 하나하나 일궈왔다. 지금은 40~50여명의 정기 후원자들이 일정 금액을 후원하고 있고, 바르게살기운동 서산시협의회, 생활개선회, 늘보람 봉사단 등의 단체와 여러 직장에서의 봉사모임 또는 개인들의 참여와 봉사활동 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빵이랑 떡이랑’에서 만들고 있는 것은 카스테라와 피자빵, 와플, 단팥빵, 소보로 등의 빵과 쿠키류, 그리고 약식과 절편 등의 떡 들이다. 떡들은 주로 새벽에 만들어지고, 빵과 쿠키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2개조로 나뉘어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들은 적십자가 반찬 나눔, 보건소 방문요양 사업, 차상위 학생들의 공부하는 ‘차오름’, 활란요양원 및 대산 롯데봉사회와 대산 생활개선회의 빵나눔팀, 인지면 일대의 다문화 가정이나 새터민들이 있는 곳으로 배달된다. 그밖에 장애인 복지관, 성남보육원, 서림복지원, 교육청 길거리 봉사단, 드림 스타트, 밥차 봉사단 등 빵과 떡이 간절히 필요한 곳이면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훈훈함을 더해준다. 작년에는 김장 1천포기를 담아 또다른 나눔을 실천했다. 



“처음에 학원을 운영할 때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위해 돈으로만 후원을 했어요. 가보니까 누가 후원한 줄도 모르고, 돈을 잘 쓰지도 못하고, 모았다가 손주들에게 주고 계시는 것을 봤어요. 내 생각과 다르게 돈이 써지는 것을 보고 반찬과 생필품 나눔을 시작했는데, 어르신들이 즐겁게 드실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을 하다가 빵이랑 떡을 만들어 드리게 된 거예요.”
이은희 대표의 나눔에 대한 생각은 현재 공동대표로 함께 하는 장혜순 원장과 통했다. 그리고 둘은 나눔의 동지이자 버팀목이 되어 ‘빵이랑 떡이랑’을 함께 지켜간다. 이들의 꿈이자 희망사항은 ‘평생 돈 걱정 안하고 실컷 빵 만들어 나눔을 실천’하는 것. 나눔과 봉사라는 것이 어디 마음과 의지만 가지고 되는 것이던가.

운영이 어려워 배달차로 쓰던 차를 팔기도 하고, 외상으로 재료를 갖다 쓴 적도 많았던 이들은 어린이집 뒤에 빵 만드는 간이시설로 지은 곳이 불법이라 해서 신고 되었을 때는 건강에도 이상이 왔을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그럼에도 이들이 포기하지 않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진심을 다해 도움의 손길을 보태는 수많은 후원자들과 봉사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힘겨운 교대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며 이곳에 들러 빵 만드는 기계의 수리를 도와주는 기업체 직원들도 고맙고, 열심히 수학 문제지 넘기던 손으로 쿠키를 포장하는 학생들의 손길에도 큰 애정을 느낀다.



빵을 만들 수 있는 지금의 공간을 만들 때 설계나 천정형 에어컨, 토목, 기계 등의 재능이나 물품들을 아낌없이 기부해주시 분들, 계란 값이 너무 올라 빵 만드는 일이 힘들어 졌을 때 마진을 다 포기한 생산원가로 공급해준 진성농장 사장님, 봉사자들의 고픈 배를 아낌없이 해결해주시며 천만원 이상의 밥을 무료로 제공해주신 황금부페 사장님, 떡을 찌고 빵을 굽고 배달을 하느라 쓴 기름값 694만원의 외상값을 전액 기부해주신 대산 하이츠 주유소의 사장님, 당뇨로 인해 인슐린제 투약을 하면서까지 일주일에 5회 이상 이곳을 찾아 한결같은 봉사를 펼쳐주시며 봉사란 것이 무엇인지 몸소 실천하시는 석림동의 서찬순 어머님, 그리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봉사의 손길을 한결같이 내미는 수많은 사람들 그 모두가 한 알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뿌려지고, 넉넉한 빵과 떡이 되어 거룩한 나눔이 됐다. 

“넉넉한 형편에서 펼치는 나눔이 아니다보니,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마늘도 일일이 직접 까고, 약식에 쓸 은행도 직접 주어다 말려서 썼어요. 피자 빵에 넣을 양파는 양파수확이 끝난 밭에 가서 양패새끼들을 주워오고 했으니까요. 학원 할 때는 월 천 만원도 벌었는데 나이 오십이 됐어도 집 한 채 없이 월세를 살고 있어요. 가진 게 없지만, 한마음으로 나눔을 같이 하는 친구가 있고 여러 분들이 있어서 늘 배부른 마음으로 살고 있답니다.”
나눔과 봉사활동을 30여 년간 실천해온 이은희 공동대표에게 빵이나 떡은 그저 배고픔을 채우기 위한 음식이 아니다. 비록 빵 하나지만, 그 안에 사랑과 훈훈함을 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외로운 이들이 달콤한 쿠키 하나, 고소한 빵 하나에 살아가는 재미 한 입 채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기쁜 것이다. 인심은 곳간에서 나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서 난다는 것을 그녀는 안다. ‘빵이랑 떡이랑’에서 그런 마음들이 하루하루 익어간다. 
<배영금 기자>

- 빵이랑 떡이랑
- 서산시 대산읍 대산 4길 112번지 (대산미래어린이집 뒤편)  ☎ 010-5431-9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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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3 산불전문진화대 김형록 대원


“봄철의 산을 든든히 지키는 산불전문진화대원”

1년 중 2월 1일부터 5월 15일까지 딱 105일간 산불전문 진화대원으로 활동하는 김형록(54)씨는 아침 9시면 해미면 황락리와 산수리로 출근해 저녁 6시까지 산을 지킨다. 
그가 하는 일은 산불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고,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진화를 하며 신고를 하는 것이다. 2012년 4월 30일 오후 3시 40분께 가야산 줄기인 해미면 황락리 황락저수지 인근에서 큰 산불이 났을 때도 그는 현장에 누구보다 먼저 도착해, 그가 지니고 다니는 위치추척 시스템으로 정확한 좌표를 안내했다. 

“그 당시 큰 불이었어요. 황락저수지 인근 종중산에서 장례를 치른 유가족들이 고인의 유품을 태우다가 산에 옮겨 붙어 발생한 불이었는데, 가야산 줄기로 고압선이 지나는 곳이어서 더 위험했지요. 산불이 다 꺼진 듯 해도 연기가 또 살아나고 또 나고 해서 10일간은 계속 화재 현장을 감시했답니다.”
건조주의보가 내려지는 봄이 오면 자그마한 불씨 하나, 한줄기 연기 하나 놓칠 새라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는 그의 철칙은 ‘내 위치에서 내 할 일 다해가며, 내 구역을 칼같이 지켜내는 것’이다. 한순간의 방심과 실수로 잃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크고 황망한 지를, 지난 9년간의 경험으로 익히 봐왔기 때문이다. 

그가 일을 하며 가장 어렵고 힘든 때는 아무 곳에서나 쓰레기, 농사 폐기물 등을 소각하는 노인들을 상대할 때라고. 노인들이 살아온 평생의 방식도 중요하지만, 작은 불씨 하나로 소중한 산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에 단속과 계도를 게을리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마을의 노인들과 실랑이를 벌일 때도 많고, 하다하다 안되면 아예 소각 현장을 끝까지 지키며 만반의 단속을 기하기도 한다. 
“화마가 지나간 산은 사막보다 더 삭막해요. 그 아름드리 울창한 나무들이 새까맣게 타버려서 정말 처참하죠. 그런 것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워요. 그래서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합니다.”

그는 원래 건축일과 사업을 했다. 열심히 일을 한 뒤에도 돈을 받지 못하는 일이 많아지자, 차라리 버는 돈이 적더라도 마음 편한 일이나 하고 살자고 한 것이 산불감시원 인생의 시작이 됐다. 그렇게 산을 지키며 살다보니, 이제는 산 자체가 좋아졌다는 그는 산속의 멧돼지 새끼도 반갑고, 고라니들도 정겹다. 트럭을 타고 임도를 돌다가도, 차에서 내려 산에 오르고, 고사리 꺾는 철이면 아예 산 능선을 타고 돈다. 산에 오를 때 매고 다니는 산불진화용 배낭은 물을 채웠을 때 무게가 20~30kg. 갈퀴도 빠트리지 않는다. 

“워낙 산이 크고 넓다 보니 맡은 구역을 완벽하게 지킬 수는 없어요. 그래도 산불전문진화대원이나 산불감시원 모두가 맡은 구역 안에서 최선을 다해 지키고 노력한다면 우리 산을 더욱 건강하게 지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빨간 옷을 입고 다니는 것만 해도 많은 계도와 예방 효과가 있어요. 담뱃불이나 산중 취사나 단속을 하려해도 “네가 뭔데 그러냐”고 반발을 할 때는 힘이 들고 맥이 풀리지만, 2005년 이후 산불이 급격히 줄어든 통계를 보면 힘이 납니다.”
놀러 다니기 좋은 계절! 산불 나기 쉬운 계절 봄! 그는 105일간을 꼬박 산과 함께 한다. 그가 좋아하는 산이 거기 있고, 그가 끝내 지켜내야 할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돈보고는 못하지만, 이 보람된 일을 돈 받으며 할 수 있으니 더 좋다는 김형록씨. 그는 우리 지역 산을 든든히 지키는 산불전문진화대원이다.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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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2 하영석 서산 생활음악센터장


6개의 기타 줄, 진한 사랑이 되어

6개의 기타 줄 위에 손가락이 쉴 새 없이 춤을 춘다. 풍성하고 아름다운 화음은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고 감탄하게 한다. 그의 연주는 마음으로 다가와 심금을 울린다.  
서산, 태안 지역에서 기타를 배운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미 그의 실력과 명성은 자자하다. 하영석(서산 생활음악센터장) 원장은 깨어 있는 시간 동안은 언제, 어디서나 늘 기타와 함께이다.
“기타요? 정말 매력 있죠. 단음정이 나오는 악기와 달리 여러 화음을 연주할 수 있고, 간소하게 들고 다니면서 종합적인 것을 다 연주할 수 있죠. 노는 문화가 흔치 않아 통기타가 유행하던 시절, 우연히 교회 형의 기타 치는 멋진 모습에 반해 시작한 기타 연주가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 살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또한 처음 만난 사람과도 금방 친해질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주고 공연 시 함께 연주하면 너무 행복합니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 밴드 생활도 오래 했었습니다. 피터팬 밴드의 정규앨범은 다 제가 작사, 작곡하였습니다.”



35년 동안 단 한 번도 기타를 놓아 본 적이 없다. 좋은 벗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는 생계수단으로 식당 배달 및 막노동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진심으로 기타를 지켜냈다. 그리고는 기타를 통해 알게 된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을 돕는 불우이웃돕기 재능기부 공연도 어느덧 11년째 진행 중이다. 장학금, 교복 선물, 생필품 및 쌀 등등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필요한 손길을 베풀고 있다. 후원이 많이 줄어 어려울 때도 있지만, 변치 않는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하영석 원장은 매년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고 사랑을 나눈다.
“기타는 끝이 없어요. 저를 통하여 더 큰 꿈을 꾸고 배워 나가야 하기에 저 역시도 매일 연습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가 배워야 나에게 배우는 수강생들 역시 발전할 수 있어 나를 개발하는 일에는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기타 악보는 일반 악보와 달라서 보기도 쉽고, 치는 방법만 알면 누구나 무난하게 연주할 수 있습니다. 성실한 연습은 정직한 실력으로 보답합니다. 망설이지 말고, 집에 하나씩 있는 기타와 용기를 내보세요! 기타를 독학하시게 되면 박자, 진도, 정확성이 부족할 수 있기에 전문가에게 배우는 것을 추천합니다.”



하영석 원장은 수강생의 기타 연주법의 장·단점을 파악해야 한다고 한다. 손의 크기 및 완력. 왼손과 오른손의 힘의 차이, 빠르기, 성격 등등을 빠른 시간 내에 진단해야 한다고.
그리고 각각의 개인에 맞게 차별성을 두어 쉽고, 흥미를 유발하며 진도를 맞춰주는 눈높이교육을 한다. 그렇기에 같은 수업을 하더라도 개인의 능력에 따라 개별 진도 수업이 이루어진다. 이런 열정과 세심함은 수강생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더 늦기 전에 솔로 앨범을 내는 것이 꿈이라는 하영석 원장은 오늘도 6개의 기타 줄과 진한 사랑에 빠진다. 세상에서 가장 친한 기타친구와 그는 오늘도 가장 멋지고 행복한 여행을 꿈꾼다.
<이지희 기자>

- 하영석 서산 생활음악센터장 ☎ 010-8309-4872
- 초중고등학생 방과 후 및 정규수업 복지센터 출강, 개인지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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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1 목공예 정덕채 작가


죽은 나무에 생명의 꽃을 피우는 ‘도심안의 자연인’

산속에 깃들어 사는 ‘자연인’을 소재로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인기다. 자연인의 삶은 남자들의 로망이라고도 한다. 세속의 삶을 끊어내고 자연 안으로 들어가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산다는 것은 이상만 가지고는 결코 이룰 수 없다. 손가락 사이로 바람을 잡을 수 없듯 나를 이루던 수많은 것들을 흘려보낼 줄 알아야 한다. 훌훌 털어내고 바람처럼 스며들어 산속의 뿌리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 결코 간단치가 않다. 
결혼도 하고, 자녀도 가졌지만, 그는 머물지 않는다. 시간 안에 멈추지 않고, 만족 안에 그 자신을 가두지 않는다. 정처 없이 마음 시키는 대로 살아온 삶. 어느새 환갑에 가까운 오십 육세가 됐다. 나이 먹은 만큼, 사는데 있어 노련해질 법도 한데, 그는 다듬어지지 않았다. 거칠고 단순하다.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마음 가는 대로 살아왔다. 바람처럼, 강가에 돌멩이 하나에도 수십 년을 머물렀다가, 숲 속에 썩은 등걸 하나에 빠져 시간들을 붙든다. 

관광가이드도 하고, DJ도 했던 그는 한때 1년에 수십억을 버는 사업도 했다. 팔봉산에도 오래 깃들었고, 40여 년 동안은 돌을 찾아 전국을 떠돌고 분재를 하며 삶을 채웠다. 돌과 분재 안에서 가장 자유로웠던 그는 이제 누구에게도 배운 적이 없는 목공예에 온 몸을 담그고 산다. 대상만 바뀌었을 뿐 돌이나 분재나 나무는 공통점이 많다는 그는 60여년 삶의 과정과 그간 만들고자 했던 결과물들을 목공예에 담아내고 있다. 
그가 목공예의 소재로 쓰는 것은 고사한지 오래된 고목들이다. 산속 깊은 곳,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에서 홀로 쓰러져 죽은 채 비틀어진 나무, 썩어서 문드러진 나무다. 
“금은보화는 참외밭에서 난다고 하던가요? 나무가 썩어서 지저분하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소재들을 이용하다 보니, 남들이 안 쓰는 나무가 제게는 금은보화나 같아요. 목공예를 하는 곳을 한 바퀴 돌면 그 사람들이 안 쓰고 쳐 박아 둔 나무 더미에서 보물 같은 것들을 값싸게 사오기도 합니다.”

정덕채 작가에게 나무는 인연과 같은 것이다. 억지로 또는 너무 가볍게 아무 나무하고나 관계를 맺지 않는다. 수 만번 스치는 옷깃 중에서 인연을 만나듯, 그에게 오는 나무는 따로 있다. 천년 고찰 주지스님이 준 50년 동안 뒹굴며 썩어가던 500년 된 나무와 인연을 맺고, 누군가 산 속에 버린 궤짝을 끌고 내려오기도 한다. 땅바닥에서 썩고 썩어 뼈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소재다. 대추나무를 뿌리 채 캐서 20년 만에 작품을 완성하기도 하고, 인위적인 작업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두 달 넘게 정성을 쏟은 것도 하루아침에 망치기도 한다. 오래된 나무와의 작품에 빠져 살다보니 인대가 끊어져 손가락 두 개를 못 썼던 적도 있고, 조각칼이 꽂힌 그대로 병원으로 간 적도 있다. 

“목공예에 빠져 살고 있는 지금도 하기 싫을 때는 돌밭으로 달려가요. 왜 돌이 좋을까 생각해봤는데, 모든 것 다 잊고 거기에 몰입할 때 너무 개운합니다. 돌을 줍고 안 줍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욕심만 갖고 돌밭에 갔던 세월도 길었어요. 20년쯤 지나니 욕심이 비워지더군요. 수석의 최고봉인 산수경석만 찾으려고 하니 보일 리가 있나요. 다 지우고, 다 비우고 나서 비로소 많은 산수경석을 얻었어요. 욕심이 마음의 눈을 닫아 버린 거죠. 수석이나 나무도 비슷합니다. 산이나 강가에서 무심히 뒹구는 돌이나, 수 십 년 동안 썩어 문드러진 나무나 생각하지 나름이고 의미를 담기 나름이지요.”

그의 호는 ‘바람’이다. 머물지 않고 움직이며 스스로 변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바람. 그 안에서 그는 가장 살아있음을 느낀다. 돌과 나무와 친구가 되어 수 십 년을 벗한다. 더불어 자연이 된다. 멈춰 있거나 갇혀 있거나, 잊혀져 있거나, 죽어 있는 자연의 일부에 또다시 생명의 입김을 불어 넣으며 스스로가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그. 도심안의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정덕채 작가다.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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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0 라이라이 수타면 이창희씨


수타와 백 짬뽕!  옛날 손맛이 그리우면 이곳에 오라

“기계로 면을 뺀 적도 당연히 있지요. 그거 하다가 손을 다친 적이 있어요. 그래서 기계로 하라면 마음이 편치 않고 어색해요. 손으로 빼는 것이 더 편하고 좋아요. 수타는 누구보다 자신 있습니다.”
‘라이라이 수타면’의 이창희씨가 서산에 정착하게 된 것은 수타에 대한 자신감과 서산의 발전에 따른 비전을 믿기 때문이라고. 예전에 수타면을 하던 집들이 이제 대부분 기계로 면을 뽑는 것을 보고, 승산이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서산의 공단시설과 인구유입이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는 계산도 섰다. 



“가게를 하려고 여기저기 많이 다녔어요. 이제 마지막일 텐데 기왕이면 괜찮은 목에 하고 싶었지요. 그러다가 지금의 자리를 보고 계약을 하고 싶었는데, 연이 닿지 않았어요. 익산에 있는 가게에 계약금 500만원을 걸고 올라가는데 연락이 와서 그 계약금 포기하고 이곳에 가게를 낸 거예요. 시골은 겨울이면 장사가 안 되는데, 여기는 어업, 농업, 산업 3박자가 다 맞아서 사계절 다 활기가 넘치니까 열심히 해서 인정만 받으면 입소문 듣고 오실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의 생각은 주효했다. 점심시간마다 제법 넓은 식당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성연면의 공단 사람들. 그가 옛날 방식의 수타만을 고집한다는 소문은 이 일대에서 이미 발이 달렸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수타 자장면과 굴 짬뽕. 이 집의 굴 짬뽕이나 백 짬뽕은 60~70년대 먹던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하얀 국물이 특징. 그는 하얀 국물로 개운하고 얼큰한 맛을 내기 위해 가을이 되면 노지에 있는 청양고추를 20~30여 박스 사다가 손질해서 냉동고에 저장해둔다. 그때그때 사서 쓰는 청양 고추는 비싸기도 하지만, 풋내가 나기 때문에 칼칼한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음식의 염도를 낮추기 위해 천일염을 고집하고 있다. 2~3년 간수를 뺀 후 볶아서 갈아 만든 천일염으로 음식의 간을 맞추면 염도도 낮으면서 깔끔한 맛이 난다고 한다. 





“소금하고 청양고추만 바꿔도 음식이 달라집니다. 대부분은 감으로 하는데 가끔 염도기를 넣어보고 있어요. 그러면 대부분 맞더라고요. 내가 먹는 음식 만든다고 생각하면 어려울 것도 없고 힘든 것도 없어요.”
그는 아침에 먼저 점심에 쓸 수타면을 어느 정도 빼서 냉장고에 숙성시켜둔다. 맛도 맛이지만, 점심시간에 몰려드는 손님들 맞이하며 한꺼번에 면을 빼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도 점심시간 중간에 면이 떨어져 여러 번 면을 일일이 뽑아 쓴다. 음식을 먹고 있다 보면 탕탕 소리가 울려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데, 그게 수타면 만드는 소리인줄 아는 사람들은 쫓아나가 구경하기도 한다. 요즘은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수타는 생 반죽을 쓰면 뻣뻣해요. 몇 분 두드리면 풀이 줄어서 몇 번 흔들면 완전 골라져요. 그때부터 가락을 빼는 거예요. 보통 먹는 수타면이 128가락이고, 더 굵은 옛날 면발을 원하면 한번 덜 빼면 되요. 기스면 같이 가는 면을 원하시면 두 번 더 접어서 빼면 되고요. 한 가닥이 숨이 죽으면 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어요. 어차피 기계보다 나으니까요.”
‘어서 오세요’라는 뜻을 지닌 ‘라이라이 수타면’집은 수타와 요리 담당인 남편과, 서빙 담당인 아내 둘이서 운영을 한다. 남편만큼 중국요리를 할 줄 아는 아내가 있어 아직은 그럭저럭 꾸려갈 수 있다. 



“나이가 있어서 힘들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수타는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요령으로 하는 거예요. 후배들에게 수타면 뽑는 것을 가르치면 어깨가 무너지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직장생활을 했으면 이 나이에 일이 끝났을 건데, 어릴 적 배운 기술로 여태 일할 수 있어서 참 좋지요”
한바탕 점심 손님이 휩쓸고 간 식당 안, 잠시 한적하다 싶더니 탕탕 수타면대와 면발이 만나 다시 경쾌한 소리를 낸다. 일흔 셋 그의 굵은 손가락 안에서 마치 마술처럼 면발이 나뉘어진다. 정확히 128가락이다. 수타를 사랑하는 그가 고집으로 뽑아내는 귀하디 귀한 면발들이다.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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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9 맹꽁이도서관 지키는 안세영 관장


“도서관은 지금도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진행 중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도서관에 가는 것을 참 좋아했어요. 중학교는 예산에서 다녔는데, 시간이 나면 군립도서관에 다니며 책 보는 시간이 참 좋았어요. 백과사전이나 모차르트 등의 작곡가 책들이 소설보다 재밌더라고
요.”
인지의 태성산에 있는 ‘맹꽁이 도서관’의 안세영 관장은 주중에는 이곳 도서관을 지키고, 주말에는 1시간 30여분 거리를 달려 안양에 있는 ‘하늘과 씨앗 교회’ 목사 자리를 지킨다. 관장이라기 보다는 관리인에 가깝다는 안세영 관장은 이곳 맹꽁이 도서관을 짓는데 13년의 세월을 썼다. 산을 편편하게 다져 토목 공사를 한 다음에는 곳곳에 나무를 심고, 도서관을 어떻게 지을지 설계와 디자인을 연구했다고. 건물을 지을 때도 목수에게만 맡기지 않았다.

직접 목수 뒤를 따라다니며 직접 못질을 하며 집을 지었다. 도서관 안의 인테리어도 모두 그의 손이 닿은 것들. 안을 채우는 책장과 의자, 탁자 역시 그가 직접 자르고 못을 박아 만들어낸 것들이다. 
“무엇을 한번 하려고 계획을 세우면 보통이 10년이에요. 여기 맹꽁이 도서관도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진행중이구요. 아직도 멀었어요. 책도 더 채워 넣어야 하고, 잔디위에 정자와 인디언 집도 만들 겁니다. 언제나 진행중인 도서관, 변하는 도서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도서관 안팎을 다니며 정리하고 쓸고 닦는다. 잔디도 깎고 늘어진 나뭇가지도 전지하고 동물들 먹이도 직접 챙긴다. 그러다보니 도서관 대출 시스템을 챙기지 못해 안타깝다는 그는 틈틈이 지역 아동들을 위한 인재양성 프로그램에도 열심이다. 도움이 필요한 지역의 아이들을 불러 영어를 가르치고 있기도 하고, 자신의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며 모아뒀던 각종 스크랩 자료 들을 공유하며 더 많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도 마련해뒀다. 
안세영 관장은 그렇게 시골의 한 구석, 외진 산길에 덩그마니 서 있는 도서관에서 날마다 나눔과 섬김의 씨앗들을 뿌린다.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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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8 인하 태권도 배순연 부관장


태권도는 곧 삶, 태권도 20년 인생

그녀는 20년이 훨씬 넘는 긴 시간을 태권도와 함께했다. 인생의 반 이상을 태권도와 함께 달려온 것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체육관에서 땀 흘리는 것이 좋았다. 지는 것을 싫어하는 승부욕은 한층 더 그녀를 성장시켰다. 태권도를 빼고는 그녀의 삶을 이야기할 수 없다. 그리고 그녀 역시도 태권도가 전부였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녀의 선하고 밝은 인상은 따뜻한 눈빛을 품어 모두를 보듬는다. 그러나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숨 막히는 카리스마로 곧 분위기를 압도한다. 그리고 그녀는 오로지 실력으로 보여준다. 여자라고 물러서지 않는다. 선수 생활을 하던 인천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녀의 명성이 자자했다고. 어떤 순간이든 그녀는 자신 있다. 악바리 근성으로 힘든 순간들을 이기고 버텨 내었다. 값진 경험들은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가장 큰 노하우는 ‘경험’ 이라고 말하는 인하 태권도 배순연 부관장. 

엄마의 마음으로 학생들을 다독이며 여자만이 가질 수 있는 섬세함과 꼼꼼함으로 아이들 하나하나를 살핀다. 오늘도 기합 소리 우렁찬 그녀의 태권도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딸이 하나라 강하게 컸으면 좋겠다는 아버지의 권유로 태권도를 배우게 되었죠. 5학년 후반부터 선수부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6학년 때 나간 첫 시합에서 2등을 하고, 중학교 1학년 때 출전한 전국대회에서는 전국 2등으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소녀가 생각지도 못하게 대회를 휩쓸게 되니 관심이 집중되었죠. 태권도에 대한 자부심 역시 강해졌습니다.”



배순연 부관장은 말로만 운동을 가르치지 않는다. 중·고등학생일수록 직접 몸으로 보여줘야 받아들이고 깨닫는 부분이 다르다는 것을 그녀는 안다. 그렇기에 한 가지라도 더 배워갈 수 있도록 그녀는 직접 시범을 보이며 몸으로 가르친다. 
“저는 무엇보다 인성을 최우선을 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인성을 갖추어야 올바른 인재로 바르게 커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위해 노력하고, 미래를 위해 인내하며 타인을 위해 배려하는 것이야말로 운동하는 모든 이의 기본 덕목이죠. 서산에서 처음으로 선수부 학생을 가르칠 때 무서운 사범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운동할 때는 빡빡하게, 그리고 예의에 벗어나는 부분은 단호하게 가르치며 태권도를 가르쳤습니다. 아들 삼 형제에게도 흐트러지지 않고 엄격하게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엄마로서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도록 노력하고 밖에 나가서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꼬맹이였던 제자들이 어느덧 군대를 다녀오고, 사회의 일원으로 맡은 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봤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잊지 않고 안부 전화를 걸어오고, 찾아오고 제자들을 보며 다시금 그녀는 힘을 낸다. 그리고 헛되지 않음에 감사해 한다.
배순연 부관장. 그녀의 하얀 도복이 멋지게 빛이 난다. 품고 있는 큰 꿈을 위해 오늘도 정직한 땀방울을 흘린다. 그녀의 열정으로 이 곳은 바르고 곧은 태권도 기합소리가 가득 차 있다. 태.권.도!
<이지희 기자>

- 인하태권도(단국대 석사)
-서산시 성연면 일람리 1106 테크노빌딩 4층 401호 ☎ 668-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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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7 부석중 졸업생 김복한 할아버지


부석중학교 62회 졸업생 김복환 할아버지

아직은 앳된 중학교 3학년 학생들 사이, 구부정한 허리에 지팡이를 의지하고 선 김복환 할아버지는 2월 8일 열린 부석중학교 제62회 졸업생중 최고령 학생이다. 올해나이 여든 하고도 여섯이니, 이번에 같이 졸업을 하는 16살의 친구들 하고는 자그마치 육십년이나 차이가 난다. 그 세월을 껑충 뛰어넘어 같은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같은 졸업장에서 졸업장을 받아드니 할아버지 감회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중학교 1학년을 다니다가 군대에 가는 바람에 중단된 공부를 이제야 마쳐, 속도 시원하고 후련도 하겠건만, 할아버지 마음은 며칠 전부터 서운하기만 하다. 그토록 다니고 싶던 학교를 졸업하면, 다시는 그리운 학교와 교실에 오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졸업의 기쁨보다 서운함이 갑절로 클 수 밖에. 

할아버지는 그 마음을 며칠 전부터 글로 적어 두었다. 그리고 졸업식 날 <작별의 인사>를 낭독했다. 교장선생님과 여러 선생님, 손주 뻘 되는 같은 반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보내는 편지다. 
<정든 우리 부석중학교 학생으로 만 2년간 교장선생님과 모든 선생님들 동문 학생들, 그리고 1, 2학년 학생들과 학교생활을 도와주신 교직원 여러분들 모두다 정이 많이 들었는데, 그 정을 막상 떼어놓고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무척이나 서운합니다.<중략> 속담에 사람은 만나고 헤어지는 게 정한 이치라 했지요. 지금은 섭섭하게 헤어지지만 다음에 만날 적에는 더욱 더 반갑게 만나기를 바랍니다.<후략>

며칠 전부터 할아버지는 학교에 오면 운동장도 자꾸 보고, 교실도, 친구들도 자꾸 돌아봤다. 떼놓고 가려니 자꾸 쳐다만 져서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했다는 할아버지. 
“굉장히 서운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심지어 교실까지 내 방삼아 있었으니 사람한테 정든 것이야 말할 것도 없지요. 이럴 거면 2학년부터 시작하지 말고 1학년부터 시작할 걸 그랬어요. 그래서 교장선생님한테 1학년부터 다닌 것으로 해서 1년 더 다니면 안 되겠냐고 여쭸는데, 졸업하기 전에 이야기 해야지, 이제 졸업해서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서운해요.” 

할아버지는 이날 졸업식에서 개근상을 받았다. 2년 개근에 빛나는 상은 할아버지가 얼마나 학교를 열심히 다녔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평상시 아프던 몸도 학교에 다니고 부터는 멀쩡했다는 할아버지는 학교 오가는 길이 그저 신나기만 했다고 말씀하신다. 
“처음에 이종렬 교장선생님이 입학 허가를 해주면서 용기를 주고 배움의 길을 열어 주신 게 너무 고마워요. 나한테 교복도 사주시면서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셔서 더 열심히 다닐 수 있었어요. 지금의 오경수 교장 선생님도 아침 등교 때마다 마중하시며 하루하루 학교생활에 불편이 없는지 늘 살펴주셔서 그 은혜도 잊을 수 없어요. 내가 수학시간마다 배우는 게 서툴고 힘들었을 텐데 잘 가르쳐주신 선생님도 고맙고, 교실 이동할 때나 공부할 때나 친할아버지처럼 꼭 챙겨 데리고가준 학생들도 참 착하고 그래요.”

김복환 할아버지는 학교를 다니면서부터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떳떳함이 생겼다고 한다. 사람들 앞에 나서도 이제 떨리지 않는 자신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는 할아버지는, 못 배운 한을 푼 것이 두고두고 잘한 일 같다고 흐뭇해하신다. 공부를 한 덕분에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저 멀리 여행을 갔을 때도 멀리서 알아보고 달려와 반갑다며 덥석 안는 사람들도 있었다며 자랑도 하신다. 
“나중에 느닷없이 학교에 오고 싶을 텐데 그럴 수도 없어서 큰일 났어요. 원래는 중학교 졸업하면 고등학교도 가고 그러려고 했는데, 아침마다 밥해주며 학교에 배웅해주던 사람도 저세상 가고 없으니 이제 더 기약은 못하겠네요.”

마지막으로 학교에 온 졸업식 날, 할아버지는 누구보다 더 많이 축하도 받고, 꽃다발도 받았다. 개근상도 받고, 졸업장도 받았다. 그리고 고마운 두 교장선생님에게 손수 쓴 편지도 드렸다. 더는 여한도 없으련만, 교문을 나서는 할아버지 고개가 자꾸 뒤로 돌려진다. 못 배운 한 풀고 싶었던 86세 김복환 할아버지의 졸업식이다.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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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 결국에는 가능한 것이 된다. -K. 오브라이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