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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0 라이라이 수타면 이창희씨


수타와 백 짬뽕!  옛날 손맛이 그리우면 이곳에 오라

“기계로 면을 뺀 적도 당연히 있지요. 그거 하다가 손을 다친 적이 있어요. 그래서 기계로 하라면 마음이 편치 않고 어색해요. 손으로 빼는 것이 더 편하고 좋아요. 수타는 누구보다 자신 있습니다.”
‘라이라이 수타면’의 이창희씨가 서산에 정착하게 된 것은 수타에 대한 자신감과 서산의 발전에 따른 비전을 믿기 때문이라고. 예전에 수타면을 하던 집들이 이제 대부분 기계로 면을 뽑는 것을 보고, 승산이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서산의 공단시설과 인구유입이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는 계산도 섰다. 



“가게를 하려고 여기저기 많이 다녔어요. 이제 마지막일 텐데 기왕이면 괜찮은 목에 하고 싶었지요. 그러다가 지금의 자리를 보고 계약을 하고 싶었는데, 연이 닿지 않았어요. 익산에 있는 가게에 계약금 500만원을 걸고 올라가는데 연락이 와서 그 계약금 포기하고 이곳에 가게를 낸 거예요. 시골은 겨울이면 장사가 안 되는데, 여기는 어업, 농업, 산업 3박자가 다 맞아서 사계절 다 활기가 넘치니까 열심히 해서 인정만 받으면 입소문 듣고 오실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의 생각은 주효했다. 점심시간마다 제법 넓은 식당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성연면의 공단 사람들. 그가 옛날 방식의 수타만을 고집한다는 소문은 이 일대에서 이미 발이 달렸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수타 자장면과 굴 짬뽕. 이 집의 굴 짬뽕이나 백 짬뽕은 60~70년대 먹던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하얀 국물이 특징. 그는 하얀 국물로 개운하고 얼큰한 맛을 내기 위해 가을이 되면 노지에 있는 청양고추를 20~30여 박스 사다가 손질해서 냉동고에 저장해둔다. 그때그때 사서 쓰는 청양 고추는 비싸기도 하지만, 풋내가 나기 때문에 칼칼한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음식의 염도를 낮추기 위해 천일염을 고집하고 있다. 2~3년 간수를 뺀 후 볶아서 갈아 만든 천일염으로 음식의 간을 맞추면 염도도 낮으면서 깔끔한 맛이 난다고 한다. 





“소금하고 청양고추만 바꿔도 음식이 달라집니다. 대부분은 감으로 하는데 가끔 염도기를 넣어보고 있어요. 그러면 대부분 맞더라고요. 내가 먹는 음식 만든다고 생각하면 어려울 것도 없고 힘든 것도 없어요.”
그는 아침에 먼저 점심에 쓸 수타면을 어느 정도 빼서 냉장고에 숙성시켜둔다. 맛도 맛이지만, 점심시간에 몰려드는 손님들 맞이하며 한꺼번에 면을 빼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도 점심시간 중간에 면이 떨어져 여러 번 면을 일일이 뽑아 쓴다. 음식을 먹고 있다 보면 탕탕 소리가 울려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데, 그게 수타면 만드는 소리인줄 아는 사람들은 쫓아나가 구경하기도 한다. 요즘은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수타는 생 반죽을 쓰면 뻣뻣해요. 몇 분 두드리면 풀이 줄어서 몇 번 흔들면 완전 골라져요. 그때부터 가락을 빼는 거예요. 보통 먹는 수타면이 128가락이고, 더 굵은 옛날 면발을 원하면 한번 덜 빼면 되요. 기스면 같이 가는 면을 원하시면 두 번 더 접어서 빼면 되고요. 한 가닥이 숨이 죽으면 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어요. 어차피 기계보다 나으니까요.”
‘어서 오세요’라는 뜻을 지닌 ‘라이라이 수타면’집은 수타와 요리 담당인 남편과, 서빙 담당인 아내 둘이서 운영을 한다. 남편만큼 중국요리를 할 줄 아는 아내가 있어 아직은 그럭저럭 꾸려갈 수 있다. 



“나이가 있어서 힘들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수타는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요령으로 하는 거예요. 후배들에게 수타면 뽑는 것을 가르치면 어깨가 무너지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직장생활을 했으면 이 나이에 일이 끝났을 건데, 어릴 적 배운 기술로 여태 일할 수 있어서 참 좋지요”
한바탕 점심 손님이 휩쓸고 간 식당 안, 잠시 한적하다 싶더니 탕탕 수타면대와 면발이 만나 다시 경쾌한 소리를 낸다. 일흔 셋 그의 굵은 손가락 안에서 마치 마술처럼 면발이 나뉘어진다. 정확히 128가락이다. 수타를 사랑하는 그가 고집으로 뽑아내는 귀하디 귀한 면발들이다.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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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9 맹꽁이도서관 지키는 안세영 관장


“도서관은 지금도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진행 중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도서관에 가는 것을 참 좋아했어요. 중학교는 예산에서 다녔는데, 시간이 나면 군립도서관에 다니며 책 보는 시간이 참 좋았어요. 백과사전이나 모차르트 등의 작곡가 책들이 소설보다 재밌더라고
요.”
인지의 태성산에 있는 ‘맹꽁이 도서관’의 안세영 관장은 주중에는 이곳 도서관을 지키고, 주말에는 1시간 30여분 거리를 달려 안양에 있는 ‘하늘과 씨앗 교회’ 목사 자리를 지킨다. 관장이라기 보다는 관리인에 가깝다는 안세영 관장은 이곳 맹꽁이 도서관을 짓는데 13년의 세월을 썼다. 산을 편편하게 다져 토목 공사를 한 다음에는 곳곳에 나무를 심고, 도서관을 어떻게 지을지 설계와 디자인을 연구했다고. 건물을 지을 때도 목수에게만 맡기지 않았다.

직접 목수 뒤를 따라다니며 직접 못질을 하며 집을 지었다. 도서관 안의 인테리어도 모두 그의 손이 닿은 것들. 안을 채우는 책장과 의자, 탁자 역시 그가 직접 자르고 못을 박아 만들어낸 것들이다. 
“무엇을 한번 하려고 계획을 세우면 보통이 10년이에요. 여기 맹꽁이 도서관도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진행중이구요. 아직도 멀었어요. 책도 더 채워 넣어야 하고, 잔디위에 정자와 인디언 집도 만들 겁니다. 언제나 진행중인 도서관, 변하는 도서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도서관 안팎을 다니며 정리하고 쓸고 닦는다. 잔디도 깎고 늘어진 나뭇가지도 전지하고 동물들 먹이도 직접 챙긴다. 그러다보니 도서관 대출 시스템을 챙기지 못해 안타깝다는 그는 틈틈이 지역 아동들을 위한 인재양성 프로그램에도 열심이다. 도움이 필요한 지역의 아이들을 불러 영어를 가르치고 있기도 하고, 자신의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며 모아뒀던 각종 스크랩 자료 들을 공유하며 더 많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도 마련해뒀다. 
안세영 관장은 그렇게 시골의 한 구석, 외진 산길에 덩그마니 서 있는 도서관에서 날마다 나눔과 섬김의 씨앗들을 뿌린다.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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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8 인하 태권도 배순연 부관장


태권도는 곧 삶, 태권도 20년 인생

그녀는 20년이 훨씬 넘는 긴 시간을 태권도와 함께했다. 인생의 반 이상을 태권도와 함께 달려온 것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체육관에서 땀 흘리는 것이 좋았다. 지는 것을 싫어하는 승부욕은 한층 더 그녀를 성장시켰다. 태권도를 빼고는 그녀의 삶을 이야기할 수 없다. 그리고 그녀 역시도 태권도가 전부였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녀의 선하고 밝은 인상은 따뜻한 눈빛을 품어 모두를 보듬는다. 그러나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숨 막히는 카리스마로 곧 분위기를 압도한다. 그리고 그녀는 오로지 실력으로 보여준다. 여자라고 물러서지 않는다. 선수 생활을 하던 인천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녀의 명성이 자자했다고. 어떤 순간이든 그녀는 자신 있다. 악바리 근성으로 힘든 순간들을 이기고 버텨 내었다. 값진 경험들은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가장 큰 노하우는 ‘경험’ 이라고 말하는 인하 태권도 배순연 부관장. 

엄마의 마음으로 학생들을 다독이며 여자만이 가질 수 있는 섬세함과 꼼꼼함으로 아이들 하나하나를 살핀다. 오늘도 기합 소리 우렁찬 그녀의 태권도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딸이 하나라 강하게 컸으면 좋겠다는 아버지의 권유로 태권도를 배우게 되었죠. 5학년 후반부터 선수부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6학년 때 나간 첫 시합에서 2등을 하고, 중학교 1학년 때 출전한 전국대회에서는 전국 2등으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소녀가 생각지도 못하게 대회를 휩쓸게 되니 관심이 집중되었죠. 태권도에 대한 자부심 역시 강해졌습니다.”



배순연 부관장은 말로만 운동을 가르치지 않는다. 중·고등학생일수록 직접 몸으로 보여줘야 받아들이고 깨닫는 부분이 다르다는 것을 그녀는 안다. 그렇기에 한 가지라도 더 배워갈 수 있도록 그녀는 직접 시범을 보이며 몸으로 가르친다. 
“저는 무엇보다 인성을 최우선을 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인성을 갖추어야 올바른 인재로 바르게 커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위해 노력하고, 미래를 위해 인내하며 타인을 위해 배려하는 것이야말로 운동하는 모든 이의 기본 덕목이죠. 서산에서 처음으로 선수부 학생을 가르칠 때 무서운 사범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운동할 때는 빡빡하게, 그리고 예의에 벗어나는 부분은 단호하게 가르치며 태권도를 가르쳤습니다. 아들 삼 형제에게도 흐트러지지 않고 엄격하게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엄마로서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도록 노력하고 밖에 나가서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꼬맹이였던 제자들이 어느덧 군대를 다녀오고, 사회의 일원으로 맡은 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봤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잊지 않고 안부 전화를 걸어오고, 찾아오고 제자들을 보며 다시금 그녀는 힘을 낸다. 그리고 헛되지 않음에 감사해 한다.
배순연 부관장. 그녀의 하얀 도복이 멋지게 빛이 난다. 품고 있는 큰 꿈을 위해 오늘도 정직한 땀방울을 흘린다. 그녀의 열정으로 이 곳은 바르고 곧은 태권도 기합소리가 가득 차 있다. 태.권.도!
<이지희 기자>

- 인하태권도(단국대 석사)
-서산시 성연면 일람리 1106 테크노빌딩 4층 401호 ☎ 668-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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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7 부석중 졸업생 김복한 할아버지


부석중학교 62회 졸업생 김복환 할아버지

아직은 앳된 중학교 3학년 학생들 사이, 구부정한 허리에 지팡이를 의지하고 선 김복환 할아버지는 2월 8일 열린 부석중학교 제62회 졸업생중 최고령 학생이다. 올해나이 여든 하고도 여섯이니, 이번에 같이 졸업을 하는 16살의 친구들 하고는 자그마치 육십년이나 차이가 난다. 그 세월을 껑충 뛰어넘어 같은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같은 졸업장에서 졸업장을 받아드니 할아버지 감회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중학교 1학년을 다니다가 군대에 가는 바람에 중단된 공부를 이제야 마쳐, 속도 시원하고 후련도 하겠건만, 할아버지 마음은 며칠 전부터 서운하기만 하다. 그토록 다니고 싶던 학교를 졸업하면, 다시는 그리운 학교와 교실에 오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졸업의 기쁨보다 서운함이 갑절로 클 수 밖에. 

할아버지는 그 마음을 며칠 전부터 글로 적어 두었다. 그리고 졸업식 날 <작별의 인사>를 낭독했다. 교장선생님과 여러 선생님, 손주 뻘 되는 같은 반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보내는 편지다. 
<정든 우리 부석중학교 학생으로 만 2년간 교장선생님과 모든 선생님들 동문 학생들, 그리고 1, 2학년 학생들과 학교생활을 도와주신 교직원 여러분들 모두다 정이 많이 들었는데, 그 정을 막상 떼어놓고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무척이나 서운합니다.<중략> 속담에 사람은 만나고 헤어지는 게 정한 이치라 했지요. 지금은 섭섭하게 헤어지지만 다음에 만날 적에는 더욱 더 반갑게 만나기를 바랍니다.<후략>

며칠 전부터 할아버지는 학교에 오면 운동장도 자꾸 보고, 교실도, 친구들도 자꾸 돌아봤다. 떼놓고 가려니 자꾸 쳐다만 져서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했다는 할아버지. 
“굉장히 서운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심지어 교실까지 내 방삼아 있었으니 사람한테 정든 것이야 말할 것도 없지요. 이럴 거면 2학년부터 시작하지 말고 1학년부터 시작할 걸 그랬어요. 그래서 교장선생님한테 1학년부터 다닌 것으로 해서 1년 더 다니면 안 되겠냐고 여쭸는데, 졸업하기 전에 이야기 해야지, 이제 졸업해서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서운해요.” 

할아버지는 이날 졸업식에서 개근상을 받았다. 2년 개근에 빛나는 상은 할아버지가 얼마나 학교를 열심히 다녔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평상시 아프던 몸도 학교에 다니고 부터는 멀쩡했다는 할아버지는 학교 오가는 길이 그저 신나기만 했다고 말씀하신다. 
“처음에 이종렬 교장선생님이 입학 허가를 해주면서 용기를 주고 배움의 길을 열어 주신 게 너무 고마워요. 나한테 교복도 사주시면서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셔서 더 열심히 다닐 수 있었어요. 지금의 오경수 교장 선생님도 아침 등교 때마다 마중하시며 하루하루 학교생활에 불편이 없는지 늘 살펴주셔서 그 은혜도 잊을 수 없어요. 내가 수학시간마다 배우는 게 서툴고 힘들었을 텐데 잘 가르쳐주신 선생님도 고맙고, 교실 이동할 때나 공부할 때나 친할아버지처럼 꼭 챙겨 데리고가준 학생들도 참 착하고 그래요.”

김복환 할아버지는 학교를 다니면서부터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떳떳함이 생겼다고 한다. 사람들 앞에 나서도 이제 떨리지 않는 자신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는 할아버지는, 못 배운 한을 푼 것이 두고두고 잘한 일 같다고 흐뭇해하신다. 공부를 한 덕분에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저 멀리 여행을 갔을 때도 멀리서 알아보고 달려와 반갑다며 덥석 안는 사람들도 있었다며 자랑도 하신다. 
“나중에 느닷없이 학교에 오고 싶을 텐데 그럴 수도 없어서 큰일 났어요. 원래는 중학교 졸업하면 고등학교도 가고 그러려고 했는데, 아침마다 밥해주며 학교에 배웅해주던 사람도 저세상 가고 없으니 이제 더 기약은 못하겠네요.”

마지막으로 학교에 온 졸업식 날, 할아버지는 누구보다 더 많이 축하도 받고, 꽃다발도 받았다. 개근상도 받고, 졸업장도 받았다. 그리고 고마운 두 교장선생님에게 손수 쓴 편지도 드렸다. 더는 여한도 없으련만, 교문을 나서는 할아버지 고개가 자꾸 뒤로 돌려진다. 못 배운 한 풀고 싶었던 86세 김복환 할아버지의 졸업식이다.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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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6 244문화예술촌


화개천하춘(花開天下春)! 꽃이 피니 천하가 봄이로구나

아침 이슬이 실컷 훑고 간 물기 머금은 ‘곤포사일리지’위, 검은 물감을 가득 머금은 페인트 붓 하나가 무심하게 지나간다. 원을 그리는 가 싶더니, 가지를 치고, 굵고 거친 직선이 날아드는 가 싶더니, 점이 찍히고 갈퀴가 그려진다. 무엇일까? 알 수 없는 사이 다른 붓이 움적움적 붉은 빛깔을 드러내다가 쏜살같이 달려 나간다. 거침이 없는 호흡 하나다. 단 몇 초! 눈치 채기 전에 이미 끝나버렸다. 부릅뜨고 지켜봤건만, 붓의 끝만 좇는 사이, 전체의 그림이 남몰래 완성된다. 아! 닭의 볏이다. 닭의 붉은 볏이 뾰족뾰족 튀어나와서야 뒤늦은 탄성이 새어 나온다. “닭의 상징은 하트여!” 노란 하트모양의 심장이 그려지니, 벌떡벌떡 닭의 심장이 살아 움직인다. 정유년 닭띠해의 노란 심장이 창작 예술촌 위에 살아난다. 

봄의 시작을 알리던 입춘 날, 지곡면 중왕리 창작예술촌 작은 운동장에 놓인 둥근 원통 모양의 커다란 비닐 덩어리들. 추수가 끝 난 후 논에 있는 볏단을 일정한 모양으로 압축한 후 묶어서 비닐로 밀봉시킨 가축용 숙성사료인 ‘곤포 사일리지’가 오늘의 화폭이다. 자연과 인간의 기술이 만나 만든 거대한 화선지에 회원마다의 영감이 녹아드니, 예술촌 마당도, 봄도 알록달록 물들여진다. 누군가는 무의식 상태에서 붓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붓을 놀리고, 누군가는 빨갛고 노란 하트만 가득 그려댄다. 옥빛의 소먹이 사료가 정열적인 사랑으로만 꽉 차고 말았다. 파란 물감이 주르륵 흘러내리며 노란빛과 만나니, 대지를 적시는 짙은 초록빛 봄비가 되었다. 

오늘의 주제는 ‘대지미술로 새해소망을 말하다’. 대지미술에 대한 선구자인 황석봉 작가와 그의 제자들인 ‘244문화예술촌’(회장 박종서 회원 황석봉, 김종일, 조성훈, 조성호, 송영옥, 김광호, 정덕채, 안종미, 조선임) 회원들이 봄맞이 퍼포먼스를 펼친다. 붓이 가면 가는 대로 아름답고, 여백 또한 편안하다. 때마침 2월의 찬바람은 자장가처럼 잦아들고, 대지는 느리고 깊은 호흡으로 봄의 기운을 폐 깊숙이 머금는다. 
정치도 시끄럽고, 나라도 어수선하다. 민심은 얼어붙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시절이다. 그 메마른 대지에 창작예술촌 황석봉 촌장의 붓이 다시 달려 나간다. 화개천하춘(花開天下春)! 꽃 한송이 피니 천하가 봄이다. 노란 나비까지 한 마리 그림으로 날아드니, 그 꽃 한송이, 여기서 먼저 피었다.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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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5 현대익스프레스 최경숙 대표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갈 길 ‘이삿짐 천직 인생’

“저는 이삿짐 일이 참 좋아요. 이사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짐이 다른 곳으로 공간 이동을 하는 그 이상의 의미잖아요. 무엇인가 시작되고, 끝나는 지점을 함께 하다 보니, 이사 하나하나가 다 특별해요. 그 사람의 삶 안에서 함께 하는 그런 기분이라고 할까? 그래서 한 집 한 집 최선을 다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벌써 15년이다. 누군가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누군가의 삶이 재정비되는 이사의 한가운데에서 그렇게 오랜 세월을 보냈다. 남자들이나 하는 이사일, 겁도 없이 덤벼 15년을 버텼다. 처음에는 남편도 없이 억척스레 5년을, 그 다음 10년은 남편과 함께 든든하게 일을 했다. 그 안에서 보람도 찾고, 사명도 찾았다. 언젠가 부터는 천직의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참 귀했다. 서산에서 현대익스프레스 이삿짐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최경숙(53)대표. 15년 전 동생이 정리하려고 내놓은 이삿짐센터를 덜컥 인수해, 지금은 탑차 2대, 사다리차 2대, 화물차 2대, 직원 13명을 거느린 탄탄한 업체로 만든 장본인이다. 

지금이야 개인 집과 사무실 이사는 기본으로, 의료기관, 학교, 대기업, 공기업들의 대규모 이사까지 맡아 하고 있는 굵직한 이삿짐 업체로 인정받고 있지만, 시작할 당시는 어려움도 많았다. 여자라는 한계도 컸고, 부딪쳐야 할 것도 많았다. 
“여자가 이삿짐센터를 운영하는 일이 굉장히 생소하던 때였어요. 처음에는 남편 없이 저 혼자 5년을 했었는데, 일하는 분들을 데리고 제가 주방 일을 맡아 했었어요. 그 당시 우리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냉장고 청소 서비스를 해드렸는데, 고객들에게는 칭찬도 많이 들었지만, 힘든 일도 많았어요. 또 일요일에 이사를 하지 않는 것도 저희뿐이었어요. 그러다가 망한다는 소리도 듣고, 남편하고 싸운 적도 많지만, 이제는 정착이 돼서 이제 현대익스프레스 하면 일요일에 이사안하는 집으로 아예 통하고 있어요.”

그녀의 전화기에 저장된 고객만도 3천여 명. 모두가 이사를 하며 엮어진 인연들이다. 몇 년 전 안동으로 이사를 간 어느 부부의사는 그 많은 의학서적을 밴딩기계로 말끔하게 묶어 옮겨준 것을 잊지 못해 지금도 연락을 하고 있고, 또 어느 주부는 전근이 잦은 남편 때문에 이사를 할 적마다 그녀에게 전화를 한다. 그렇게 모아진 인연들이 많다보니, 그녀의 전화기는 늘 견적의뢰와 이사 문의로 쉴 틈이 없다. 낮에 운동을 하는 일도, 친구를 만나는 일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유다. 

“처음에 탑 차를 세대 운영할 때는 그 차들을 다 돌리려니 일정도 무리하게 잡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과감하게 한 대를 줄였어요. 두 대만 가지고 열심히 살고, 열심히 베풀자는 마음으로 살았어요. 할 수 있는 한도가 정해져 있으니까 욕심이 자연스레 비워지고, 일하기도 더 수월해졌어요. 항상 열심히 일해 주는 직원들에게도 늘 고마운 마음이죠. 일을 배워 나가 사업을 시작한 직원들도 있지만, 저희는 좋은 경쟁관계라고 생각해요.”

견적을 내고, 일정을 잡고, 이사를 하는 일이 쉬운 일이 없고 복잡하지만, 그녀는 늘 이사하는 틈틈이 나누는 삶을 실천한다. 이사 가는 집에서 필요 없어진 가구나 가전제품 들을, 시골의 교회나, 살림이 어렵거나 필요한 집, 비영리 단체 등에 연결해 실어다 주고 있다. 얼마 전에도 김치냉장고, 온풍기, 냉장고, 에어컨 등 가전제품 총 6대를 서울의 노숙자쉼터 사무실에 주고 왔다. 이삿짐 일을 하기 때문에 펼칠 수 있는 특별한 봉사의 길이 너무 좋다는 그녀는 이 일을 평생의 사명으로 여기고 있는 중이다. 

그녀가 많은 것을 가진 지금에도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은 IMF로 인해 무일푼이 되었을 때, 사람 하나 보고 큰 도움을 준 인연을 잊지 않기 때문이다. 이삿짐센터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1억 원의 예탁금이 필요했는데, 10원 하나 없는 그녀에게 아파트 청소 일을 하시던 분이 1억 원의 돈을 선뜻 빌려줬다고. 그 큰돈을 갖고 그냥 도망갈 수도 있는 일인데, 자신을 믿어준 사람을 봐서라도 더 이를 악물었던 그녀는 결국 성공의 결과를 얻고야 말았다.

고마운 인연을 늘 가슴에 담고 살며, 고객과의 새로운 인연 역시 늘 기억에 저장하는 것이 습관이 된 그녀. 최경숙 대표는 그렇게 일을 즐기다보니, 결국 일에 감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사하는 일은 누구나 인생의 큰 변화가 시작되는 순간이잖아요. 사업이 기울어 집을 줄여 이사를 갈 수도 있고, 어렵게 살다가 살림이 펴서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갈 수도 있잖아요. 그런 순간의 시작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이삿짐 일의 의미가 참 큰 거 같아요. 다시 하라고 해도 제가 이삿짐 일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예요. 이삿짐 일은 제 천직이랍니다.”
이사 인생에 보람도 실리고, 기쁨도 실리니, 삐그덕 삐그덕 탑차가 가득 찼다. 그녀가 꾸려가는 이삿짐 인생이다.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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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4 독거노인, 우리의 미래이자 사회의 자화상


‘혼자’의 그 쓸쓸한 삶, 그 무거움에 대하여

원래부터 혼자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큰 아들이 큰 도시에 있는 학교에 다닌다고 나가 결혼까지 하더니 연락이 뜸해지고, 작은 아들은 외국으로 이민을 갔다. 세 딸은 결혼하고 나서는 1년에 하루 생일에만 본다. 영감하고 둘! 서로 그림자처럼 붙어살았다. 열아홉 살에 시집와 여든 일곱이 되도록 칠십여 년을 같이 산 영감은 십년도 더 전에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고, 아무도 없는 이 집을 망부석처럼 지켰다. 그렇게 할머니는 혼자 사는 사람이 됐다. 세상에서 불리워지는 그 이름 ‘독거노인’. 

혼자 한 끼 먹자고 챙기는 것도 귀찮고 힘들어 굶는 일이 많아도, 전기세 아까워 불 끄고 지내는 밤이 많아도 견딜 만 했다. 날짜 가는 것도 까먹은 채 해가 바뀌는 것도 덤덤해지고, 나이를 헤아리는 것조차 부질없는 일이 됐다. 문득문득 외로움이 뼛속까지 사무치면, 울리지 않는 전화기만 들었다 놨다 했다. 질기디 질긴 목숨 이렇게도 길까! 이번 설에도, 오지 않는 자식들. 평생을 헌신하며 키웠더니, 헌신짝 신세가 된 걸까. 한숨도, 눈물도 바짝 말라버렸다. 이렇게 혼자 쪼그라져 아무도 모르게 스러져 버리면 어쩌나. 기왕 한번 죽는 거 곱게 곱게 가야 할 텐데. 이렇게 혼자 남아, 혼자 죽어도 세상사람 아무도 모를 일이 가장 겁나는 일이 되어 버렸다. 덜커덩 소리에 누가 왔을 새라 삐그덕 문을 열어보지만, 야속한 겨울바람만이 대문을 흔드는 밤, 할머니의 겨울밤이 실타래처럼 길다.

2016년 1월 기준 6,683명이던 서산지역 독거노인의 수가 같은 해 6월에는 6,816명, 12월에는 6,930명으로 늘어 1년 안에 250여명이나 증가했다. 사회구조와 가족관계의 변화로 이같은 수치는 앞으로도 더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독거노인과 같은 1인 세대는 단절과 소외로 이어져, 요즘 한창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고독사’와 ‘노인자살’의 어두운 그림자가 되고 있다. 우리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2015년 12월 29일에는 77세의 노인이 12월의 엄동설한에 마당에서 쓰러진 채 홀로 쓸쓸히 숨진 사건이 발생,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한편 지난해 11월 충남도의회 문화복지위원회의 ‘제292회 정례회 충남도청 보건복지국 소관 행정사무감사’자료에 따르면, 충남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노인들의 자살률이 전국 1위를 기록했다. 최근 2년간 지역 노인의 자살 건수는 2014년 246명, 2015년 265명 등 511명으로 집계됐으며, 지역별(2014년 기준)로는 천안시 37명, 아산시 22명, 보령시 21명, 서산시 20명 등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모두 늙는다. 1인 가구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생애주기이다. 독거노인 역시 사회구조와 가족관계의 변화 앞에서 피해갈 수 없는 앞으로의 현실이다. 고독사와 자살은 불운한 남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이자 내 문제이다. 사회적 단절과 소외로 인한 고독, 가정 내 빈곤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건강악화, 공동체 붕괴로 인한 독거노인들의 아픔은 이 사회가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숙제이다. 
온 가족이 한데 모였다가 흩어지는 명절의 뒷자락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혼자’의 그 쓸쓸한 삶과 대안을 더듬어 본다.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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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3 음암면 상성리 독거노인 생활공동제 노년의 꽃 만발


동거동락 생활공동제, 고령화 시대의 대안이 되다

음암면 상성리에 마을 노인들 누구나 와서 편히 쉬고 지낼 수 있는 공동의 집이 생겼다. 지난 10월 문을 연 이곳은 ‘독거노인 공동 생활제’. 이 마을에 사는 독거노인 뿐 아니라 농촌 고령자들이 한데 모여 동거동락하며 지낼 수 있는 이곳은 원래 작은 경로당이 서 있던 자리의 터를 땅주인인 허상단, 김정근씨가 마을에 기부해 시비 1억 5천여 만 원의 예산이 투입되어 지어졌다. 대지 263㎡, 건물 71.84㎡의 공간에 30여명이 앉을 수 있는 큰 거실과 취사가 가능한 주방, 방, 화장실이 겸비된 이곳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을 노인들의 발길이 머물며 서로 안부와 건강을 챙기고 밥을 지어 함께 먹으며 생활을 한다. 
오늘은 요가와 노래교실이 열리는 수요일. 아침부터 이곳을 찾은 마을 어르신들은 담소를 나누며 오후 3시가 되기를 기다린다. 

“요가가 얼매나 재밌는지 몰러. 수요일만 기다려요. 강사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려고 해도 안 되니까 완전 나무토막이지. 틀리는 재미로 해요. 그렇게 웃는 재미로 살아요. 1주일 후에 하면 다 까먹고 생각도 안 나지만, 안 잊어먹고 잘하면 아무나 선생님 하게? 오늘도 연지 찍고 짝짝! 곤지 찍고 짝짝! 열심히 해야쥬.”
올해 여든 한 살이 된 신영재 어르신은 아침 10시나 10시 반이 되면 마을의 공동생활제에 와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저녁도 같이 해먹고 천천히 집에 가서 다음날 아침이면 또 이곳을 찾는다. 이곳 공동생활제에서 걸어서 20분이나 가야하는 곳에 사는 일흔 일곱 살의 박성예 어르신은 아프거나 큰 일이 있을 때를 빼고는 매일같이 이곳에 ‘출퇴근’한다. “집에 있으면 심심하지만, 같이 있으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외롭지도 않아서 좋지. 여기가 없었으면 큰일날 뻔 했지. 이 노인네들이 다 어디서 살어. 다들 멍하게 살고들 있겠지. 시에서 이런 좋은 시설을 지어줘서 참 감사하지요.”

‘독거노인 공동생활제’를 맡아 운영하는 책임자는 상성리의 이장인 김정세씨. 서산시에서 독거노인이나 고령인구를 위한 공동생활시설을 짓겠다고 나섰을 때 가장 먼저 반기고 나섰을 정도로 그 필요성을 늘 절감하고 살았다고. 
“예전에도 경로당이 있긴 했는데, 쬐그만한 움막 수준이었어요. 겨울에 춥고, 여름에는 너무 덥고 자체적으로 돈 걷어서 먹고 놀고 하는 게 다였는데,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생활쉼터가 이렇게 만들어지니 너무 좋습니다. 요즘 농촌마을마다 1인 세대가 늘고, 독거노인의 수가 늘고 있는데, 이렇게 모여서 같이 의지하고 즐기며 여생을 보낼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아프면 서로 챙기고, 의논하고 살다보면 혼자 쓸쓸히 힘든 일을 겪게 되는 일도 없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이곳 공동생활제는 마을의 김정세 이장과 구본학 총무가 관리와 살림을 맡아 어르신들을 살뜰하게 챙긴다. 음식재료가 떨어지면 장을 봐다주고, 시설이 고장나면 달려와 고쳐준다. 마을 어르신들 모두가 태어나면서 수십여 년 보고 자란 어른들이기 때문에 내 부모같고, 가족 같다는 것. 
여든 다섯 살의 윤열구 어르신은 하루라도 안오면 이상할 정도로 이곳에서의 생활이 몸에 익었다. “자식들이 자꾸 가라고 해요. 갔다왔다고 하면 잘했다고 좋아해요. 집에 우두커니 혼자 있는 것보다 이렇게 나와서 따뜻한 곳에서 따뜻한 밥 먹으며 두런거리고 말벗할 수 있으니 좋아 보이나 봐요. 아픈 날 며칠 못 오면 여기 오고 싶어서 이제는 좀이 쑤셔요.”

올해 나이 일흔살이 된 이기순 어르신은 이곳 공동생활제에서는 막내 뻘. 함께 생활하는 시간들이 많다보니 동기간보다 더 가까운 게 마을 어르신들이라고. “애들이 와도 얼른 갔으면 좋겠어요. 여기 오고 싶어 그러지. 아파도 서로 의지하고, 약도 대신 사다주고, 잠들면 이불도 덮어주고,  자식들 흉도 같이 보고 그렇게 의지하며 사는 거죠. 요즘 고독사니 뭐니 해도 이렇게 서로 챙겨주고 같이 지내다 보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고 봐요. 응급상황이  와도 혼자 있는 것 보다는 이렇게 같이 있으면 병원에도 더 빨리 갈 수 있으니 노인들도 서로 안심이고, 멀리 사는 자식들도 안심이지요.”

서산에서도 한참 구불구불 산길을 가야만 나오는 운산면 상성리는 오지에 속할 정도로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제법 큰 마을이다. 한때는 140여 가구가 살았을 정도지만, 지금은 64가구가 이웃해 살고 있다. 이중 혼자 살고 있는 독거노인의 수는 14세대. 혼자 사는 어르신 뿐 아니라 이 마을의 고령 노인층들이 다함께 지내다보니, 어르신간에 화합과 소통은 물론이고, 마을에 활기가 넘친다. 
“설날이라고 굴전도 부치고, 식혜도 하고 했는데, 자식들한테 다 싸갖고 가지 말고 남기라고 했어요. 경로당 노인들 드려야 한다고요. 서로 속사정 다 알고 지내니까 마음이 그렇게 먼저 가요.”

평상시에도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여든 살의 김정열 어르신은 설날이 지나자마자, 식혜와 갖은 전들을 공동생활제로 가져와 마을의 노인들과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마을 어르신들 자식들도 운영기금을 내놓으며 어르신들 생활을 멀리서나마 돌본다. 자식의 빈자리를 같이 채워주는 마을의 어르신들이 고마운 것은 모두 다 한가지. 
“발이 효자여! 여기 오면 새참도 먹지, 밥도 먹지, 이야기도 하지, 뜨끈한 데서 잠도 자고 쉬기도 하지. 그러니 저녁 되면 집에 가기 싫지. 이렇게 죽을 때까지 오순도순 사는 거지 뭐.”
쿵작 쿵작 음악이 울리고 어르신들 노랫소리가 벽을 넘으니 마을 안에 들썩들썩 흥겨운 기운이 넘친다. 이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사회적인 가족망, 지역공동체가 그렇게 촘촘히 엮어진다.
<배영금 기자>

서산시 독거노인 공동생활제 시설 현황

• 해미면 홍천2리(해미면 홍천은튼길 86-68) 2010년 설치 (총 이용인원 30명/ 독거노인 이용인원 15명)
• 부석면 창리(부석면 창리 2길 29) 2013년 기존주택 리모델링 (총 인원 20명/독거노인 이용인원 8명)
• 성연면 해성리(성연면 해성길 231) 2014년 신축 (총 인원 28명/독거노인 이용인원 6명)
• 지곡면 산성2리(지곡면 산성서골길 43-57) 2016년 신축(총 인원 15명/ 독거노인 이용인원 6명)
• 부석면 봉락2리(부석면 봉락노라포1길 212) 2016년 신축(총 인원 20명/독거노인 이용인원 12명)
• 운산면 상성리(운산면 상성길 54) 2016년 신축(총 인원 20명/독거노인 이용인원 1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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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2 독거노인, 사회적 가족망이 절실히 필요하다


혼자 사는 늙은이 굶은들 알겠어? 병들어 죽은들 알겠어? 

지난해 5월 서산의료원에서 참 가슴 따뜻하면서도 먹먹한 장례식이 열렸다. 조문객이 넘쳐나고 곡소리가 구슬픈 장례식은 아니었지만, 남과 남이 만나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장례식. 이 특별한 장례식의 주인공은 88세의 나이에 암으로 돌아가신 김모 할아버지였다. 한 명의 자식도, 가족도 없는 무연고의 노인이었지만, 이 장례식은 3일장으로 치러졌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들이, 검은 상복을 입고 상주 역할까지 하며 빈소를 지켰다. 그들은 노인과 짧지 않게 같이 보낸 그간의 세월을 추모하고, 결코 가볍지 않은 인연을 소중하게 엮어냈다.

23일 발인을 하고 홍성화장터에 모셔 평생 외로웠을 김모 노인의 마지막 가는 길 만큼은 결코 쓸쓸하지 않게 했다. 생업과 가정생활에 바쁜 와중에도 불구하고 두 팔 걷어 부치고 이 장례식을 준비하고 진행하며 기꺼이 상주노릇을 한 사람들은 바로 ‘서산 서푸른실천연대(회장 최관호)’ 회원들. 평소 자원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오면서도, 독거노인을 향한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갖고 있던 중에 요양보호사로부터 연고하나 없이 쓸쓸하게 혼자 살아가고 있는 6.25 참전용사이자, 국가유공자인 김모 할아버지를 소개받아 인연을 맺게 됐다. 회원들은 난방환경을 고치고, 수도를 설치했으며 도배도 하고,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크고 작은 집수리를 도맡아 했다. 그렇게 무연고 할아버지와 회원들의 인연이 차곡차곡 쌓이던 중, 할아버지의 건강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 지난해 5월 21일 결국 88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시게 된 것. 수년간 할아버지를 뒷바라지 하며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온 회원들은 결국 상주를 자처하며 3일장을 치러드렸고, 김모 노인의 마지막까지 동행하며 그 쓸쓸한 삶을 지켜줬다.

‘독거노인’. 사전상으로는 가족 없이 혼자 살아가는 노인을 말하며, ‘홀로노인’, ‘홀로 사는 노인’, ‘홀몸노인’이라고도 부른다. 사회학적으로 ‘독거노인’은 배우자 및 친족 등의 사망으로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있더라 하더라도 그중 누구와 함께 거주하지 않는 단독세대 또는 그 상태에 있는 노인들로서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상태에 놓여져 있는 만 65세 이상의 노인을 의미한다. 독거노인은 노년인구의 증가와 핵가족화, 가족의 기능 변화, 산업화와 도시화 등의 원인으로 인해 갈수록 증가추세에 있다. 



서산시에 등록된 독거노인은 2016년 12월 31일 기준 총 6,930명이다. 해미면이 621명으로 가장 많고, 수석동이 568명으로 그 다음이다. 인지면에는 422명, 부석면에는 517명, 팔봉면 352명, 지곡면 350명, 성연면 237명, 음암면 535명, 운산면 521명, 고북면에 443명이 살고 있다. 또한 부춘동에 488명, 동문1동에 454명, 동문2동에 405명, 석남동에 505명이 분포되어 있으며, 대산읍에는 총 512명의 독거노인이 등록되어 있는 중. 1년 동안 30명 이상의 독거노인이 늘어난 곳은 30명의 인지면, 31명의 해미면, 36명의 부춘동이 있다. 대산읍은 1년 사이 2명이 늘었다가 다시 원상태가 되었으며, 고북면은 1년여 사이 14명이나 줄어들었다. 

이렇듯 우리 지역 역시 고령화 사회와 독거노인 증가에 따른 사회적 현상은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여러 사회적 취약계층 중 기관이나 사회봉사단체로부터 그나마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워낙 그 수가 많아 정말 도움이 꼭 필요한 대상자들 위주로 혜택이 주어지고 있는 중이다. 또한 주민등록 상의 1인가구 기준, 실제 부양하지 않는 부양자의 존재 등으로 복지의 사각 지대에 놓인 세대도 많은 것이 현실. 
서산시에서는 독거노인을 위한 여러 복지사업을 폭넓게 진행 중에 있다. 가장 기본이자 바탕이 되는 것은 독거노인 노인돌봄 기본 서비스 사업이다. 홀로 사는 노인의 안전을 살피고 필요한 서비스를 연결하며, 안전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제도이다. 소득 수준이나 부양자 유무 상관없이 실제로 홀로 사는 노인을 대상으로 한다. 따로 서비스 신청을 하지 않아도 독거노인 생활지도사가 정기적으로 가정을 방문하거나 전화를 통하여 안전을 확인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연계시켜준다. 현재 노인돌봄 기본 서비스를 수혜받고 있는 독거노인은 총 756명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안전지킴이 사업이 있다. 독거노인의 집에 동년배의 건강한 노인 인력을 파견하여 가사지원, 식사수발, 심부름, 말벗, 병원 동행 등을 지원함은 물론 독거노인의 돌발상황에 미리 대처하는 신변안전서비스까지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매년 2월에 신청을 받아 3월부터 9월까지 7개월 동안 운영한다. 독거노인들의 사회적 안전망을 대폭 확충하기 위한 ‘독거노인 응급안전 알림 서비스’ 역시 1600가구에 적용중이다. 
또한 서산시에서는 각 마을 단위별로 ‘독거노인 공동생활제’를 마련, 노인들이 공동으로 생활하며 서로를 보살피고 고독사를 예방함과 동시에 응급상황에 긴급 대처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서산시에서 문을 연 ‘독거노인 공동생활제’는 해미면 홍천 2리(이장 박용덕), 부석면 창리(이장 김교환), 성연면 해성리(이장 조승희), 지곡면 산성2리(이장 박상호), 부석면 봉락2리(이장 지영흠), 운산면 상성리(이장 김정세) 총 6곳이다.

2010년에 가장 먼저 설치된 해미면 홍천2리의 공동생활제는 열 다섯명의 독거노인들이 이용하며 동거동락하고 있다. 부석면 창리는 8명, 성연면 해성리는 6명, 지곡면 산성2리는 6명, 부석면 봉락2리는 12명, 운산면 상성리는 총 14명의 독거노인들이 이곳을 찾아 동네 노인들과 한데 어우러지며 같이 생활하고 있다. 공동생활을 희망하는 독거노인들은 개인의 생활근거지는 집에 두고 이곳에서 취사 및 편의시설을 자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운영은 마을 이장이 맡아 한다. 공동생활제 사업의 시행으로 인해 마을이 한결 달라지고 있는 추세다. 독거노인 뿐 아니라 다른 마을 노인들의 공동 생활을 통해 안부를 수시로 확인할 수 있으며, 동절기 난방비 부담도 대폭 줄어들뿐더러 노년기 겪는 외로움이나 고독한 마음도 느낄 사이 없이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어서 좋다.



2010년도부터 운영을 시작한 이 사업은 서산 외에도 천안, 공주, 금산 등 도내 12개 시군에 59개소가 운영 중이다. 이중 시나 군 자체에서 운영 중인 곳은 28개소에 달한다. 고령화 사회와 독거노인이 낳을 수 있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안으로 평가되며, 다른 자치단체에서 벤치마킹을 해 시행하고 있는 중. 
대산복지교회의 진명호 목사는 벌써 수년 째 독거노인 도시락 배달봉사를 맡고 있다. 몇 년간은 여러 도움의 손길이 있어 비교적 수월하게 봉사 일을 해 나갈 수 있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못한 형편이다. 그래도 한 집이라도 할 수 있다면 멈출 수 없다는 마음으로 부인과 함께 둘이 묵묵히 도시락 봉사 활동을 매주 수요일에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밥 한 끼 제대로 드시지도 못하는 노인 분들이 자식 놔두고 혼자 사시는 사연이 어떤 건지 알아서 무엇 하겠어요. 지금 당장 한 끼라도 제대로 드실 반찬이 필요하다는 게 가장 중요하지요.”

진명호 목사를 멈출 수 없게 하는 것은 몇 년 전이나 오늘이나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맙다”는 말.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이다. 배고픔도 견디기 힘든 것이지만, 외로움은 더 무섭고도 슬픈 것을 아는 이들 사이에서 가장 따뜻한 온기가 그렇게 지펴진다. 어느 쓸쓸한 노인의 장례식장에서, 또는 교회의 주방에서, 마을 사람이 기꺼이 터를 기증해 만들어진 공동생활제에서.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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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1 인터뷰_애니데이 커피숍 바리스타 성용수씨


황혼의 바리스타

오히려 참신했다. 이십대의 알바들이나 젊은 층의 주인들이 맞아주는 커피숍하고는 전혀 달랐다. 육십은 넘어 보이는 외모의 남자 바리스타! 세상 참 둥글게 살아왔을 것 같은 선한 외모에 푸근한 웃음을 지닌 그는 깍듯하게 손님을 맞으며, 절도 있게 커피를 내렸다. 손님의 말에 귀를 귀울이고, 정다운 말투로 응답을 했다. 인생 좀 살아본 사람의 얼굴에 드리워지는 어떤 느긋함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조적인 태도는 여러 번 본 모습에서 곧잘 묻어났다. 조급함도 없어 보였고, 아쉬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삶을 즐기는 자에게서 느껴지는 어떤 넉넉함, 일을 즐기는 사람에게서 풍기는 여유로움이 커피숍 안을 특별하게 채웠다.

시청 옆 솔밭공원 맞은편에 자리한 커피숍 ‘애니데이’의 바리스타 성용수(66)씨는 요즘같이 커피숍이 흔하디흔한 세상에, 그가 내리는 그윽한 커피 향처럼 은근하게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사람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그런 힘이다. 
성용수씨의 나이는 이제 예순 여섯.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꼬박꼬박 나오는 연금을 받으며 취미생활을 해도 좋으련만, 작년 7월에 대기업에 다니던 아들과 함께 커피숍을 창업했다. 퇴직을 하고 3~4년간 부인과 같이 해외며 국내며 숱한 여행을 다니고 등산을 하던 것도 무료해지던 중에 아들이 커피숍을 즐기면서 할 수 있도록 ‘커피숍 보조’를 자처하고 나선 것.



그는 8시면 문을 열어 출근길 바쁜 와중에도 반드시 이곳에 들리는 단골들을 위해 커피를 내린다. 출근객들이 빠지고 나면 옥녀봉에 오르는 등산객들의 이곳을 거쳐 간다. 그렇게 제법 바쁜 시간을 보내다가 11시가 되면 아들에게 바통 터치를 하고, 잠홍리 근방에 있는 작은 농장에 들러 농사거리를 돌본다. 그가 그 농장에서 키우는 마와 오디는 이곳 ‘애니데이’커피숍에서 음료로 맛볼 수 있다. 
“작년 11월에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어요.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도 컸고, 나이든 사람이 이런 걸 해도 전문가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커피 한 잔을 내려도 그냥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내리고 싶은 거죠.”



그가 운영하는 ‘애니데이’ 커피숍은 가격이 착한 것이 특징. 직접 내린 아메리카노 한 잔이 1천5백 원이고, 에스프레소 한 잔도 마찬가지다. 과일 스무디는 2천5백 원, 홍차나 녹차 라떼도 3천원 수준이다. 유기농차나 허브차도 2천원, 전통차도 2천5백 원이다 보니, 이곳은 시중 커피숍의 절반 가격에 모든 차 종류를 즐길 수 있다. 
“가격이 싸다고 품질이 낮거나 맛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1500원 짜리 커피 한잔이라도 먹는 사람이 맛있게 드셔야지요. 컵도 위생을 위해 실내에서 드시는 거나 테이크아웃이나 다 1회용 컵을 사용하고 있어요. 레시피 역시 수십 가지지만 틀리면 안되요. 단 8시 오픈시점에 파는 커피는 아침이니까 좀 진하게 타고, 저녁에는 더 약하게 타고 있어요.”

그는 이곳을 찾는 손님중 생일을 맞은 사람이나 연인이 오면 특별한 아트라떼를 만들어 선사하기도 한다. 연인이 오면 두 잔의 잔에 겹친 모양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는 잔속에 몸을 담근 고양이 모습을 만들기도 한다. ‘애니데이’에서 발행하는 쿠폰을 채워 가져가도 특별한 대우를 받을 수 있어 더 좋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일을 즐기기 때문이다. 어차피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몸을 담근 일도 아니고, 무료한 삶을 값지게 채우고 싶어 시작한 일이기에 매사에 넉넉한 마음부터 앞선다. 그래서 옥녀봉에 오르는 등산객들은 이곳을 들러 커피 한잔을 내려 들고 나가며 산에 올라가서 먹을 감이나 찐 고구마를 주고 가기도 한다. 그런 단골들이 그에게는 이곳을 지킬 이유가 되어 버렸다. 그는 또 아들과 같이 일하는 시간이 좋다. 철학이나 사람 대하는 것, 준비하는 과정, 사는 방법, 대화의 기술 들을 가르쳐 주고 싶기도 하고, 젊은 아들을 통해 배우는 것도 크다고 여기는 그다. 



“경찰서에서 행정직으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을 했어요. 일을 할 때는 직장이 경찰서이다 보니, 좋아하는 그런 것을 보지를 못해요. 늘 계도해야 하고, 잘못된 것을 봐야 하는 게 일이었죠. 지금은 좋은 것만 봐서 좋아요. 지금은 펜이 많이 생겨서 그만둘 수도 없게 됐어요. 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 오면 아버지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아들이 그래요.”
그는 경찰서에서 근무한 공무원 답게 매사 반듯하고 정확하다. 26년간 배드민턴을 쳤을 정도로 건강관리도 꼼꼼히 해왔다.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곳 ‘애니데이’를 지켜갈 계획이다. 
솔밭공원을 커피숍의 정원삼아 벤치까지 배달도 기꺼이 나가면서 일도, 삶도 기꺼이 즐길수 있는 그에게서 인생의 커피맛이 난다. 숭늉처럼 구수한 아메리카노이기도 하고, 삶과 경륜이 응축된 에스프레소 이기도 하다.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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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0 김일곤씨 부부


인생의 월동기, 노래하는 삶이 되다

인생에도 계절이 있다면 여름은 어디까지고, 또 가을은 어디부터일까? 그렇다면 인생의 계절은 때가 되면 주어지는 것일까,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일까. 오십 이세의 한창인 나이에 벌써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라는 김일곤씨는 라이브 카페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를 운영하고 있는 주인장이자 가수이다. 스무 살 무렵 우연히 호텔에서 노래 부르는 필리핀 가수들의 모습을 보고 나서부터 라이브 카페의 꿈을 조그맣게 키우기 시작해, 삼십여 년 동안 그 꿈을 놓치지 않고 노래와 악기를 배워온 그. 결국 열심히 하던 생업을 접고, 호수공원이 환히 내다보이는 창문 넓은 가게를 얻어 라이브 카페를 열고 말았다. 

개업한 지 이제 세 달째, 이곳은 7080세대가 잃어버린 것을 찾아서 오는 그런 공간이 되었다. 대화를 방해하지 않는 작은 목소리의 노래, 여자와 남자, 고음과 저음, 발라드와 트로트 그 어떤 것도 가리지 않는 팔색조 목소리, 그리고 꾸미지 않은 담백한 말씨와 분위기, 라이브 카페에서는 절대 만나볼 수 없는 저렴한 술값, 친구인 듯 동지인 듯 인생을 함께하는 부인 임미자(53)씨와의 군더더기 없는 호흡은 이곳 라이브 카페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를 서산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카페로 만들어 냈다. 조용히 불어오는 바람처럼 나긋나긋 하다가도,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처연하다가도, 꽃잎처럼 가냘픈 목소리로 사랑을 노래하고, 이별을 이야기하며 인생의 소리를 전하는 이곳은 그의 목소리와 독특한 간판의 이름, 진짜 라이브 카페의 매력에 이끌려 온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음악은 첫째, 손님한테 피해를 주거나 대화에 방해가 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노래를 해도 있는 듯 없는 듯 배경으로 깔리고 싶은 거지, 주체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이 라이브 카페를 열며 가을걷이 하고 돈 벌러 온 것도 아니에요. 월동하러 온 거에요. 최저 생계비, 최저 생활비만 나오면 되요. 욕심 없이 다 내려놓고 노래를 좋아하는 분들과 조용히 즐기며 인생의 초겨울을 보내고 싶어요.”
부부가 워낙 뜻도 맞고 욕심도 없다 보니, 오히려 자주 오는 손님, 술 많이 마시는 손님의 주머니 걱정을 먼저 한다. 통키타 가수가 직접 연주하며 부르는 노래를 실컷 들으며, 술과 안주를 충분히 주문했는데도 워낙 착한 가격인지라 손님들이 오히려 주인장들 매출 걱정을 할 정도.



부부는 라이브 카페를 열기 전 세탁기 청소 사업을 했다. 초창기 5년간은 휴일도 하루 없이 명절도 다 반납하며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 무엇 하나를 배워도 남들보다는 다르고 특별하게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김일곤씨는 세탁기 청소 분야에서도 성공스토리를 만들어 내며, 서산을 본사로 전국에 20개의 체인점을 낼 정도로 사업을 크게 일으켰다. 부부가 개미처럼 일하기 10년. 결국 삼십년 동안 놓지 않고 간직해온 라이브 카페의 꿈을 이루고자 사업을 정리하고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기 시작한 것.  

이제 마음 놓고 노래할 공간이 생기고, 원하던 미사리 형태의 라이브 카페를 차렸으니 부부는 이제 더 큰 욕심이 없다. 저녁이면 반짝 반짝 네온사인을 켜고 카페를 열고 늦은 밤이 되기 전 문을 닫는다. 틈이 날 때면 부부는 각자의 오토바이를 몰고 같이 드라이브에 나선다. 텐트와 코펠, 초고추장을 싣고 안면도 어디쯤, 태안의 바다 어디쯤 아무 곳이나 원하는 곳으로 달려가 해루질도 하고 낚시도 한다. 낚시와 바이크, 부부의 취미가 같고 바라보는 방향이 같으니, 같이 있는 시간은 늘 인생의 여행이 되고, 바닷가 저녁놀처럼 가슴 묵직하게 행복하다. 

“여기 이 가게를 30년 동안 임대한다고 진심 90%, 농담 10%를 담아 건물주에게 이야기 했어요. 5년 전부터 이 자리를 눈독 들여 봐놨거든요. 가게 이름은 10년 전부터 지어놨던 거구요. 가게세 내면서 부부가 먹고 살 수 있으면 더 큰 욕심 없어요. 이곳에서 먹는 술에는 제 노래 값이 한 푼도 안 들어가 있어요. 그냥 제 노래를 들어 주시는 게 고마운 거죠.”
부부는 꿈을 꾼다. 노래와 서로를 벗 삼아 여생을 사는 꿈! 노래를 재료 삼아 마음을 더 보태 불우이웃돕기 일일호프집 같은 봉사활동도 하는 꿈! 빠듯해도 내 것 덜어 남 주고 내 것 줄여 사는 꿈, 그러다가 더 늙으면 인생의 마지막 겨울은 배한 척 사서 고기 잡으며 생을 마감하는 꿈. 
오늘 저녁도 해가 지면 창문 너머 어렴풋이 그 카페가 생각이 난다. 인생의 겨울을 스스로 불러들여 저토록 행복하다 해맑게 웃는 부부가 생각난다.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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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9 2016년 만난사람들


“브라보! 유어 라이프” 
“브라보! 마이 라이프!”

참 많이도 만났습니다.
작업실을 겸한 햇볕좋은 인지의 아파트에서, 백 년 전 그대로 세월이 멈춘 듯 낡고 허름한 한 전자제품 수선집에서, 그리고 아줌마들이 모여 노래를 연습하는 지하의 연습실에서 우리의 이웃들을 만나고 또 만났습니다. 성연의 정기택씨는 돼지감자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자동차정비공 이선애씨는 여자의 몸으로 억척스럽게 일구어 가는 삶을 수줍게 들려주었습니다. 91세의 나이에도 붓을 놓지 않은 김연제 할아버지는 자식들의 손에 이끌려 전시회 준비를 하는 바쁜 와중에 그 평생의 글씨 세상을 보여주었고, 송와원의 이용삼 대표는 소나무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친 삶 속에서 피어올린 먹는 꽃 이야기를 향기롭게 피워 올려 주었습니다.

낡고 오래된 물건이면 전국의 어디건 쫓아가 기어이 품고 돌아와 인지면의 길가에 작은 박물관을 차린 조성훈씨는 지금은 볼 수 없는 네모난 성냥갑, 낡은 곤로를 보여주며 까만 교복차림으로 포즈를 취해 줬습니다. 새벽에는 신문을 배포하고 낮에는 피아노 조율을 열심히 하며 틈틈이 공부를 한 피아노뱅크의 김낙국씨는 삶의 열정이 어떻게 결실을 맺는지를 몸소 보여주었고, 다섯 남자가 모여 도원결의를 하듯 봉사의 삶을 살아가기로 한 ‘아름다운 동행’ 멤버들은 이 세상은 아직도 참 따뜻하게 살아갈 만 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줬습니다. 

“나같이 평범한 사람을 무슨 인터뷰를 한다고 그래요.”, “내가 훌륭한 사람도 아니고, 높은 사람도 아닌데, 할 이야기가 뭐 있다고...”많은 분들이 그렇게 손사래를 치며 인터뷰를 사양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곁에서 평범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이웃들이 바로 이 사회의 주인공이라는 말씀에, 외로 꼰 머리를 슬며시 돌려 주셨고,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주듯,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에게 지난 고생의 한을 풀 듯 기나긴 삶 힘들게 살아온 삶의 실타래들을 조금조근 풀어주셨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교차로 신문을 1년 365일동안 가득 채워줬습니다. 그 이웃들의 이야기는 졸졸 흐르는 맑은 시냇물이 되고, 저녁 하늘에 솟아오르는 밥짓는 연기마냥 가장 친근하고 정겨운 소리와 모습이 되어 2016년을 빛나게 해주었습니다.

여기 이렇게 2016년 이렇게 많은 이웃들의 모습을 다시한번 담아봅니다. 사진 속 얼굴들이 쑥스럽게 웃으며,“여전히 들끓고 힘든 한 해였지만, 열심히 살아왔노라고”고 말해주시는듯 합니다. 고맙습니다. 교차로 플러스를 이렇게 한가득 귀한 모습으로 채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주름진 어르신의 옆얼굴에서 산같이 거룩한 모습을 느끼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길을 가다가 문득 멈춰서 지나는 이웃의 얼굴을 살며시 바라봅니다. 당신이 있어 2016년이 꽉 찰 수 있었노라고 머리를 숙여 인사를 드려 봅니다. 2016년 한 해는 이렇게 저물고 가겠지만, 이렇게 지면에 남은 우리 이웃들의 모습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브라보! 유어 라이프” “브라보! 마이 라이프!”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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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남에게 어떻게 보이건, 진실하게 살라.-벤자민 프랭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