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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1 인터뷰_애니데이 커피숍 바리스타 성용수씨


황혼의 바리스타

오히려 참신했다. 이십대의 알바들이나 젊은 층의 주인들이 맞아주는 커피숍하고는 전혀 달랐다. 육십은 넘어 보이는 외모의 남자 바리스타! 세상 참 둥글게 살아왔을 것 같은 선한 외모에 푸근한 웃음을 지닌 그는 깍듯하게 손님을 맞으며, 절도 있게 커피를 내렸다. 손님의 말에 귀를 귀울이고, 정다운 말투로 응답을 했다. 인생 좀 살아본 사람의 얼굴에 드리워지는 어떤 느긋함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조적인 태도는 여러 번 본 모습에서 곧잘 묻어났다. 조급함도 없어 보였고, 아쉬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삶을 즐기는 자에게서 느껴지는 어떤 넉넉함, 일을 즐기는 사람에게서 풍기는 여유로움이 커피숍 안을 특별하게 채웠다.

시청 옆 솔밭공원 맞은편에 자리한 커피숍 ‘애니데이’의 바리스타 성용수(66)씨는 요즘같이 커피숍이 흔하디흔한 세상에, 그가 내리는 그윽한 커피 향처럼 은근하게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사람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그런 힘이다. 
성용수씨의 나이는 이제 예순 여섯.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꼬박꼬박 나오는 연금을 받으며 취미생활을 해도 좋으련만, 작년 7월에 대기업에 다니던 아들과 함께 커피숍을 창업했다. 퇴직을 하고 3~4년간 부인과 같이 해외며 국내며 숱한 여행을 다니고 등산을 하던 것도 무료해지던 중에 아들이 커피숍을 즐기면서 할 수 있도록 ‘커피숍 보조’를 자처하고 나선 것.



그는 8시면 문을 열어 출근길 바쁜 와중에도 반드시 이곳에 들리는 단골들을 위해 커피를 내린다. 출근객들이 빠지고 나면 옥녀봉에 오르는 등산객들의 이곳을 거쳐 간다. 그렇게 제법 바쁜 시간을 보내다가 11시가 되면 아들에게 바통 터치를 하고, 잠홍리 근방에 있는 작은 농장에 들러 농사거리를 돌본다. 그가 그 농장에서 키우는 마와 오디는 이곳 ‘애니데이’커피숍에서 음료로 맛볼 수 있다. 
“작년 11월에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어요.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도 컸고, 나이든 사람이 이런 걸 해도 전문가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커피 한 잔을 내려도 그냥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내리고 싶은 거죠.”



그가 운영하는 ‘애니데이’ 커피숍은 가격이 착한 것이 특징. 직접 내린 아메리카노 한 잔이 1천5백 원이고, 에스프레소 한 잔도 마찬가지다. 과일 스무디는 2천5백 원, 홍차나 녹차 라떼도 3천원 수준이다. 유기농차나 허브차도 2천원, 전통차도 2천5백 원이다 보니, 이곳은 시중 커피숍의 절반 가격에 모든 차 종류를 즐길 수 있다. 
“가격이 싸다고 품질이 낮거나 맛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1500원 짜리 커피 한잔이라도 먹는 사람이 맛있게 드셔야지요. 컵도 위생을 위해 실내에서 드시는 거나 테이크아웃이나 다 1회용 컵을 사용하고 있어요. 레시피 역시 수십 가지지만 틀리면 안되요. 단 8시 오픈시점에 파는 커피는 아침이니까 좀 진하게 타고, 저녁에는 더 약하게 타고 있어요.”

그는 이곳을 찾는 손님중 생일을 맞은 사람이나 연인이 오면 특별한 아트라떼를 만들어 선사하기도 한다. 연인이 오면 두 잔의 잔에 겹친 모양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는 잔속에 몸을 담근 고양이 모습을 만들기도 한다. ‘애니데이’에서 발행하는 쿠폰을 채워 가져가도 특별한 대우를 받을 수 있어 더 좋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일을 즐기기 때문이다. 어차피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몸을 담근 일도 아니고, 무료한 삶을 값지게 채우고 싶어 시작한 일이기에 매사에 넉넉한 마음부터 앞선다. 그래서 옥녀봉에 오르는 등산객들은 이곳을 들러 커피 한잔을 내려 들고 나가며 산에 올라가서 먹을 감이나 찐 고구마를 주고 가기도 한다. 그런 단골들이 그에게는 이곳을 지킬 이유가 되어 버렸다. 그는 또 아들과 같이 일하는 시간이 좋다. 철학이나 사람 대하는 것, 준비하는 과정, 사는 방법, 대화의 기술 들을 가르쳐 주고 싶기도 하고, 젊은 아들을 통해 배우는 것도 크다고 여기는 그다. 



“경찰서에서 행정직으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을 했어요. 일을 할 때는 직장이 경찰서이다 보니, 좋아하는 그런 것을 보지를 못해요. 늘 계도해야 하고, 잘못된 것을 봐야 하는 게 일이었죠. 지금은 좋은 것만 봐서 좋아요. 지금은 펜이 많이 생겨서 그만둘 수도 없게 됐어요. 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 오면 아버지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아들이 그래요.”
그는 경찰서에서 근무한 공무원 답게 매사 반듯하고 정확하다. 26년간 배드민턴을 쳤을 정도로 건강관리도 꼼꼼히 해왔다.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곳 ‘애니데이’를 지켜갈 계획이다. 
솔밭공원을 커피숍의 정원삼아 벤치까지 배달도 기꺼이 나가면서 일도, 삶도 기꺼이 즐길수 있는 그에게서 인생의 커피맛이 난다. 숭늉처럼 구수한 아메리카노이기도 하고, 삶과 경륜이 응축된 에스프레소 이기도 하다.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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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0 김일곤씨 부부


인생의 월동기, 노래하는 삶이 되다

인생에도 계절이 있다면 여름은 어디까지고, 또 가을은 어디부터일까? 그렇다면 인생의 계절은 때가 되면 주어지는 것일까,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일까. 오십 이세의 한창인 나이에 벌써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라는 김일곤씨는 라이브 카페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를 운영하고 있는 주인장이자 가수이다. 스무 살 무렵 우연히 호텔에서 노래 부르는 필리핀 가수들의 모습을 보고 나서부터 라이브 카페의 꿈을 조그맣게 키우기 시작해, 삼십여 년 동안 그 꿈을 놓치지 않고 노래와 악기를 배워온 그. 결국 열심히 하던 생업을 접고, 호수공원이 환히 내다보이는 창문 넓은 가게를 얻어 라이브 카페를 열고 말았다. 

개업한 지 이제 세 달째, 이곳은 7080세대가 잃어버린 것을 찾아서 오는 그런 공간이 되었다. 대화를 방해하지 않는 작은 목소리의 노래, 여자와 남자, 고음과 저음, 발라드와 트로트 그 어떤 것도 가리지 않는 팔색조 목소리, 그리고 꾸미지 않은 담백한 말씨와 분위기, 라이브 카페에서는 절대 만나볼 수 없는 저렴한 술값, 친구인 듯 동지인 듯 인생을 함께하는 부인 임미자(53)씨와의 군더더기 없는 호흡은 이곳 라이브 카페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를 서산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카페로 만들어 냈다. 조용히 불어오는 바람처럼 나긋나긋 하다가도,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처연하다가도, 꽃잎처럼 가냘픈 목소리로 사랑을 노래하고, 이별을 이야기하며 인생의 소리를 전하는 이곳은 그의 목소리와 독특한 간판의 이름, 진짜 라이브 카페의 매력에 이끌려 온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음악은 첫째, 손님한테 피해를 주거나 대화에 방해가 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노래를 해도 있는 듯 없는 듯 배경으로 깔리고 싶은 거지, 주체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이 라이브 카페를 열며 가을걷이 하고 돈 벌러 온 것도 아니에요. 월동하러 온 거에요. 최저 생계비, 최저 생활비만 나오면 되요. 욕심 없이 다 내려놓고 노래를 좋아하는 분들과 조용히 즐기며 인생의 초겨울을 보내고 싶어요.”
부부가 워낙 뜻도 맞고 욕심도 없다 보니, 오히려 자주 오는 손님, 술 많이 마시는 손님의 주머니 걱정을 먼저 한다. 통키타 가수가 직접 연주하며 부르는 노래를 실컷 들으며, 술과 안주를 충분히 주문했는데도 워낙 착한 가격인지라 손님들이 오히려 주인장들 매출 걱정을 할 정도.



부부는 라이브 카페를 열기 전 세탁기 청소 사업을 했다. 초창기 5년간은 휴일도 하루 없이 명절도 다 반납하며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 무엇 하나를 배워도 남들보다는 다르고 특별하게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김일곤씨는 세탁기 청소 분야에서도 성공스토리를 만들어 내며, 서산을 본사로 전국에 20개의 체인점을 낼 정도로 사업을 크게 일으켰다. 부부가 개미처럼 일하기 10년. 결국 삼십년 동안 놓지 않고 간직해온 라이브 카페의 꿈을 이루고자 사업을 정리하고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기 시작한 것.  

이제 마음 놓고 노래할 공간이 생기고, 원하던 미사리 형태의 라이브 카페를 차렸으니 부부는 이제 더 큰 욕심이 없다. 저녁이면 반짝 반짝 네온사인을 켜고 카페를 열고 늦은 밤이 되기 전 문을 닫는다. 틈이 날 때면 부부는 각자의 오토바이를 몰고 같이 드라이브에 나선다. 텐트와 코펠, 초고추장을 싣고 안면도 어디쯤, 태안의 바다 어디쯤 아무 곳이나 원하는 곳으로 달려가 해루질도 하고 낚시도 한다. 낚시와 바이크, 부부의 취미가 같고 바라보는 방향이 같으니, 같이 있는 시간은 늘 인생의 여행이 되고, 바닷가 저녁놀처럼 가슴 묵직하게 행복하다. 

“여기 이 가게를 30년 동안 임대한다고 진심 90%, 농담 10%를 담아 건물주에게 이야기 했어요. 5년 전부터 이 자리를 눈독 들여 봐놨거든요. 가게 이름은 10년 전부터 지어놨던 거구요. 가게세 내면서 부부가 먹고 살 수 있으면 더 큰 욕심 없어요. 이곳에서 먹는 술에는 제 노래 값이 한 푼도 안 들어가 있어요. 그냥 제 노래를 들어 주시는 게 고마운 거죠.”
부부는 꿈을 꾼다. 노래와 서로를 벗 삼아 여생을 사는 꿈! 노래를 재료 삼아 마음을 더 보태 불우이웃돕기 일일호프집 같은 봉사활동도 하는 꿈! 빠듯해도 내 것 덜어 남 주고 내 것 줄여 사는 꿈, 그러다가 더 늙으면 인생의 마지막 겨울은 배한 척 사서 고기 잡으며 생을 마감하는 꿈. 
오늘 저녁도 해가 지면 창문 너머 어렴풋이 그 카페가 생각이 난다. 인생의 겨울을 스스로 불러들여 저토록 행복하다 해맑게 웃는 부부가 생각난다.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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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9 2016년 만난사람들


“브라보! 유어 라이프” 
“브라보! 마이 라이프!”

참 많이도 만났습니다.
작업실을 겸한 햇볕좋은 인지의 아파트에서, 백 년 전 그대로 세월이 멈춘 듯 낡고 허름한 한 전자제품 수선집에서, 그리고 아줌마들이 모여 노래를 연습하는 지하의 연습실에서 우리의 이웃들을 만나고 또 만났습니다. 성연의 정기택씨는 돼지감자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자동차정비공 이선애씨는 여자의 몸으로 억척스럽게 일구어 가는 삶을 수줍게 들려주었습니다. 91세의 나이에도 붓을 놓지 않은 김연제 할아버지는 자식들의 손에 이끌려 전시회 준비를 하는 바쁜 와중에 그 평생의 글씨 세상을 보여주었고, 송와원의 이용삼 대표는 소나무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친 삶 속에서 피어올린 먹는 꽃 이야기를 향기롭게 피워 올려 주었습니다.

낡고 오래된 물건이면 전국의 어디건 쫓아가 기어이 품고 돌아와 인지면의 길가에 작은 박물관을 차린 조성훈씨는 지금은 볼 수 없는 네모난 성냥갑, 낡은 곤로를 보여주며 까만 교복차림으로 포즈를 취해 줬습니다. 새벽에는 신문을 배포하고 낮에는 피아노 조율을 열심히 하며 틈틈이 공부를 한 피아노뱅크의 김낙국씨는 삶의 열정이 어떻게 결실을 맺는지를 몸소 보여주었고, 다섯 남자가 모여 도원결의를 하듯 봉사의 삶을 살아가기로 한 ‘아름다운 동행’ 멤버들은 이 세상은 아직도 참 따뜻하게 살아갈 만 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줬습니다. 

“나같이 평범한 사람을 무슨 인터뷰를 한다고 그래요.”, “내가 훌륭한 사람도 아니고, 높은 사람도 아닌데, 할 이야기가 뭐 있다고...”많은 분들이 그렇게 손사래를 치며 인터뷰를 사양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곁에서 평범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이웃들이 바로 이 사회의 주인공이라는 말씀에, 외로 꼰 머리를 슬며시 돌려 주셨고,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주듯,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에게 지난 고생의 한을 풀 듯 기나긴 삶 힘들게 살아온 삶의 실타래들을 조금조근 풀어주셨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교차로 신문을 1년 365일동안 가득 채워줬습니다. 그 이웃들의 이야기는 졸졸 흐르는 맑은 시냇물이 되고, 저녁 하늘에 솟아오르는 밥짓는 연기마냥 가장 친근하고 정겨운 소리와 모습이 되어 2016년을 빛나게 해주었습니다.

여기 이렇게 2016년 이렇게 많은 이웃들의 모습을 다시한번 담아봅니다. 사진 속 얼굴들이 쑥스럽게 웃으며,“여전히 들끓고 힘든 한 해였지만, 열심히 살아왔노라고”고 말해주시는듯 합니다. 고맙습니다. 교차로 플러스를 이렇게 한가득 귀한 모습으로 채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주름진 어르신의 옆얼굴에서 산같이 거룩한 모습을 느끼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길을 가다가 문득 멈춰서 지나는 이웃의 얼굴을 살며시 바라봅니다. 당신이 있어 2016년이 꽉 찰 수 있었노라고 머리를 숙여 인사를 드려 봅니다. 2016년 한 해는 이렇게 저물고 가겠지만, 이렇게 지면에 남은 우리 이웃들의 모습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브라보! 유어 라이프” “브라보! 마이 라이프!”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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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8 이안아파트 여성 기타동아리 울림


여섯 줄로 울리는 기쁨과 사랑의 따뜻한 연주

6개의 줄로 감미로운 화음과 연주를 그려낸다. 곧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속도를 맞춰 하나의 곡을 완벽하게 완성해 나간다. 기타와 만난 지 6개월 남짓. 그러나 그녀들은 큰 공연 무대만 2번째인 베테랑이다. 바로 성연면 서산테크노밸리 이안아파트 여성 기타동아리 ‘울림’. 환상의 팀워크를 자랑하며 기타의 매력에 푹 빠진 13명의 멋진 그녀들의 연주를 들어보자.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좋은 건 없을 걸~♪ 사랑받는 그 순간보다 흐뭇한 건 없을 걸~♬”
“울림 기타동아리는 연습량이 대단하답니다. 공연을 앞둔 3주 전부터는 주말도 반납하고 매일 2시간씩 저녁 연습을 강행하거든요. 불우 이웃을 돕는 ‘사랑 나누기-작은 콘서트’를 위해 한 달밖에 안된 신입생 4명은 밤낮 연습하여 칼립소 주법을 완벽히 외워 3곡을 연주하였어요. 다른 팀 분들이 무척이나 놀래셨죠. 온종일 기타와 꼭 붙어 있었던 것이 숨은 비법입니다 .”
‘울림’ 회장 문혁은씨는 저녁 연습마다 간식을 지원하며 지치지 않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특히 신입생 김창애씨는 직장에서도 틈틈이 기타 코드를 잡으며 놀라운 실력발전으로 가족 모두가 적극적으로 응원한다며 기쁨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배운 곡을 흥얼거리게 되니 매일 일상이 즐거워요. 50세가 넘은 나이에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 두려웠지만 좋은 팀원들과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연습을 하다 어느새 실력이 눈에 띌 만큼 좋아졌습니다.”
맏언니인 이영숙씨는 늘 팀원을 다독이며 수업마다 직접 원두를 갈아 향긋한 커피를 챙겨온다. 손재주가 좋은 최미영씨는 공연마다 직접 만든 무대용 머플러로 팀원들을 변신시킨다. 
“10월에 있었던 ‘이안가족음악회’에서 울림 팀 연주를 보고 가슴이 콩닥거렸어요. 다 같은 엄마지만 무대에 있던 울림 팀이 너무 멋져 보였거든요. 그래서 저도 용기를 내어 꿈을 꾸게 되었어요.” (이현영 신입생)

“이번 사랑 나누기-작은 콘서트를 통한 재능기부로 당장 먹을 쌀이 없는 어려운 7명의 아이에게 사랑을 전했어요. 우리의 기타연주로 도움을 받은 가족이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두 마음이 찡했습니다. 앞으로 실력도 더 쌓고, 연주를 통해 더 많은 이웃에게 베풀고 싶어요.” (정경희 부회장)



울림 팀의 모든 가족은 매 공연마다 참석하여 자리를 빛낸다. 그리고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이름보다 더 빛나는 그녀들을 큰 함성소리로 응원하며 용기를 북돋아 준다.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묵묵히 자녀들을 보살펴주는 남편은 울림 팀의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조력자다. 서로를 믿고 응원하는 사랑과 배려로 어느 팀도 따라 올 수 없는 한층 더 풍성한 기타소리를 만들어 낸다. 기쁨을 전하고 사랑을 나누는 따뜻한 연주로 꽁꽁 얼어붙은 우리네 마음이 오래도록 훈훈하고 따뜻해지길 울림 팀 모두는 꿈꿔본다.
<이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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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7 동방포차 김동주씨


우정과 추억 사이의 포장마차

아늑한 몽골텐트 안, 꼬마전구 불이 일제히 켜지면 서산의 저녁이 시작된다. 손님 맞을 준비를 말끔히 마친 포장마차 안 하나 둘 자리가 채워지고, 타닥타닥 석화가 익어간다. 한 잔 술에 시름이 비워지고, 김이 모락모락 잘 익은 석화에 위로도 한 점 들이킨다. 목소리가 커지고, 왁자한 웃음이 터지고, 울분도 터뜨려지고, 토닥토닥 어깨도 두드려 주는 사이 포장마차의 밤은 깊어간다. 두툼한 껍질 속 저 멀리 바다의 그윽한 향을 가득 담은 석굴이 익어 가면, 술잔을 채운 사람들의 이야기도 익어가고, 마음시린 겨울도 한껏 익어간다. 

“옛날에 하우스 쳐 놓고 번개탄 피워서 굴을 구워먹던 추억이 있어요. 바닷가에 살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추억이죠. 겨울에 실내포장마차 말고, 이런 야외의 포장마차에서 굴도 구워먹고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차리게 됐는데, 손님들이 엄청 좋아들 하세요. 식당이나 실내 포장마차에서는 이렇게 굴을 구워서 먹기가 어렵거든요.”
호수공원 맞은 편 기업은행 건물 주차장 한 쪽에서 포장마차를 운영 중인 김동주(55)씨는 오후 두시가 되면 어김없이 포장마차로 출근을 한다. 야채를 다듬고, 테이블을 닦고, 쓰레기를 버리다 보면 시간은 늦은 오후로 치닫는다. 땔나무를 넣어 난로를 지피고 고구마도 몇 개 화덕에 집어넣는다. 부릉부릉 큰 화물차가 도착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저 멀리 여수나 통영에서 실려 온 석화를 받아 세 시간여를 꼼짝하지 못하고 굴 손질만 해댄다. 큰 석화는 먹기 좋게 쪼개고, 불순물들은 빼내고, 뻘이나 갯지렁이 들은 고압기로 세척하다 보면 어느새 이른 술손님들이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이곳의 손님들은 열 명 중 예닐곱 명은 단골들이다. 대부분은 포장마차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1주일에 한두 번 이상은 굴 구이를 꼭 먹어야 하는 석굴 마니아들도 많다. 날씨가 슬슬 추워지기 시작하면 찾는 사람이 많은 석굴은 잘만 구우면 찜보다 구이가 더 맛있다고들 한다. 가끔 껍질이 탁탁 튀기도 하고 흰 가루도 날리지만, 매캐한 불 맛을 입은 굴 맛은 한겨울에 먹을 수 있는 최고의 별미나 같다. 
“제가 안해본 일이 거의 없어요. 식당도 하고, 노래방도 하고, 다방과 게임방도 하고, 그러다가 다 잘 안됐어요. 작년에는 전어 양식도 했었는데, 출하를 얼마 앞두고 8월에 수온 상승으로 죽어 뜬 전어를 10톤 정도 건져냈어요. 돈하고는 거리가 먼지, 하는 일마다 잘 안 되고 하니 사람이 무력해지고 참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그것을 안타깝게 여긴 친구가 다른 거 생각하지 말고 여기서 이거나 착실히 하라고 해준 건데, 그 고마움을 말로도 다 못하지요. 그 마음을 아니까 대충대충 할 수가 없어요.”

20년 가까이 바다생활도 해보고, 안해본 일이 없이 해본 동주씨는 낮 두시부터 밤 두시까지 12시간 동안을 술손님과 굴을 상대하며 보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고 한다. 석굴을 여수나 완도 등에서 가져오는 이유에 대해 손님들과 입씨름을 벌이는 일이 힘겹고, 담배를 피우고  싶어하는 손님들을 말리는 것도 가끔 힘에 부치지만, 이제는 어느덧 자리가 잡혀 그의 마음을 알아주는 손님들이 늘어 힘든 마음을 다스리며 견뎌내고 있다고 한다. 
“저를 릴레이 인터뷰 소개해준 홍선관 그 분도 그렇게 오래 이웃하고 살아도 이제껏 말싸움 한번 한 적이 없어요. 사람이 원래 너무 순하고 착해서 공사하고 못 받은 돈도 많고, 그런 이야기 들으면 화나죠. 여기서 장사하라고 자리 내준 내 친구도 50년 다 되어가는 친구인데,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정말 귀한 것을 저에게 주고 있어요. 한때는 제가 쌈박질도 하고 말썽도 피운 적 있는데, 이제 열심히 사는 모습 보여주니까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많이들 도와주고 있어요. 사업도 한 열 번은 들어먹었는데, 사람이 돈을 따라가면 안되더라고요. 돈에 욕심 내지 않고 성실하게 살다보면 언젠가는 좋은 날도 올 거라고 믿어요.”



손이 시리게 아주 추운 겨울날, 따뜻한 굴구이와 한 잔의 술이 생각나면 동방포차에 갈 것 같다. 울퉁불퉁 자갈길 인생을 지나 사람좋은 웃음을 하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동주씨가 손 다쳐가며 하나씩 쪼개고 다듬은 굴 구이를 맛보는 것도 좋지만, 친구 때문이라도 더 열심히 살고 있다는 그를 보며, 내 주변의 소중한 인연들을 다시금 꺼내 두 손으로 꼭 감싸 안아볼 수 있을 테니까.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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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6 대원씽크 홍선관사장


싱크대로만 23년, 주방을 바꿔주다

대원싱크 홍선관(62) 사장. 그의 공장은 주인만큼이나 소박했다. 기름기를 쫙 다 빼서 건조하지만, 오히려 담백한 느낌. 23년 오랜 일에 지치고 힘들어 보였지만, 눈빛만큼은 꽤 깊었다. 오랜 세월 힘들지만, 정직하게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그 깊이는 투박함을 이내 녹여 버렸다. 
죽성동 서령초등학교 앞에 있는 그의 공장은 주인만큼이나 소박했다. 간판도 없이 큰 길가 옆으로 오도카니 서 있는 작업장. 일하는 게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한 것들은 죄다 빼고, 오로지 작업에 필요한 연장과 공간만 남겨놓는 것이 을씨년스러워 보였지만, 주인의 성정을 닮았다. 

“내가 뭐 한 게 있다고 인터뷰를 한다는 건지. 할 말도 하나도 없구먼.”그러면서 슬그머니 의자를 권하고는, 자투리 목재를 때는 난롯가에 쪼그려 앉는다. “나를 인터뷰하라고 추천해줬다는 대호목공 사장하고는 친형제처럼 지내요. 그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쥬. 분명하고 반듯하구 나무랄 데가 없어요.”
초록은 동색이라고 했던가. 그 역시 뭔가를 재고 챙기는 것 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붙박이장도 하고, 싱크대도 하고, 나무로 하는 것은 죄다 해요. 여기 죽성동에 온지는 13년 됐는데, 그전에는 시장에서 싱크대 가게를 하다가 직접 만들 수도 있겠다 싶어서 시작한게 여태까지 오게 된 거쥬.”

할 수 있다는 마음 하나로 덤빈 일이다 보니 고생도 참 많이 했다는 그는 초창기에는 재단하는 게 제일 어려웠다고 전한다. 규격에 맞춰 정확히 재단해야 하는데, 단 5mm라도 어긋나면 아귀가 맞지가 않으니까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자체를 용납할 수가 없는 일이 싱크대 일이라고. 톱질을 하다 왼손 넷째 손가락 마지막 마디를 잃는 아픔도 겪었다. 살집 하나 없이 앙상한 그의 손에 남은 흔적은,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 남은 삶의 훈장이다. 
“아무리 조심해도 아차 하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열심히 안하면 일이 되간. 고생이야 누구나 다 하지요. 배운 게 이건데 이거 안하면 뭐해요.”



그렇게 한눈 안 팔고 살아온 한 길이 23년을 넘어가니, 이제 그의 솜씨는 매사 정확하고 빈틈이 없다. 거기에 신용을 우선으로 하는 거래다 보니 대부분이 단골 주문으로 이뤄진다. 
“싱크대라는 게 값이 없어요. 원하는 가격에 맞추는 거지. 50만원도 하고, 200~300만원도 하고, 내 수준에 맞게 하는 거예요. 여자들한테 집안의 싱크대라는 게 참 중요하잖아요. 저는 그냥 제가 해줄 수 있는 선 안에서 최선을 다해 잘해주고 싶어요. 기술이야 다 비슷하니까 저는 날짜도 정확하게 지키고, 값도 되도록 더 저렴하게 해드리려고 하죠.”
힘이 없으면 못하는 싱크대 일이다 보니, 앞으로 한 5년만 더 일하고 나서 쉬엄쉬엄 취미삼아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홍선관 사장. 한창 잘 나갈 때는 새벽 4~5시까지 일을 해야 할 정도로 성업을 이뤘지만, 지금은 일감이 적당히 들어오는 편이다. 

“작업하는 게 워낙 시끄럽고 먼지도 많이 나니까 여기 한적한 곳이 일하기는 딱이예요. 바쁠 때는 여기서 먹고 자기도 하고 편해요.”
그의 작업장 한 켠의 공구대. 드릴과 끌과 타카, 대패, 고무망치들이 손때 묻은 모양으로 정겹게 자리를 지킨다. 하루도 손에서 떼지 않고 수 십 년을 함께 해온 친구같은 존재들이다. 반짝반짝 윤이 나지는 않지만, 집안의 오래된 절구통처럼 투박하고 듬직한 존재들. 공구와 주인과 공장이 그렇게 닮았다. 
<배영금 기자>

▒ 대원싱크  ☎ 010-5401-8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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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5 서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유부곤 센터장


다문화가정의 ‘대모’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 얼굴을 하고 있는 유부곤 센터장은 서산시에 거주하는 다문화가정의 대모와 같다. 정든 집과 고국을 떠나 낯선 나라인 한국에 와 가정을 이룬 다문화여성들의 일상을 누구보다 가깝게 들여다보며 그들의 삶을 따뜻하게 이끌어준다. 그녀가 이렇게 다문화가정에 애정을 갖는 것은 우리 서산지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의 숫자도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데다가, 그들이 꾸린 가정이 건강해야 서산의 가정이 건강해진다는 믿음에서다. 
“현재 서산에는 2015년 12월 기준 1046명의 이주여성들이 거주하고 있어요. 그중에서 우리 서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등록된 사람만도 950명이나 됩니다. 그들 하나하나가 가정을 이뤘다고 본다면 천여 가정이 있는 셈이에요. 아일랜드나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에서 온 분들도 있지만, 아시아에서는 14개국에서 많은 여성분들이 와서 살고 있기 때문에 3년 전부터 이들 가정의 자녀성장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추진하고 있답니다.”

그녀는 다문화가정이 건강하게 자리 잡으려면 이주여성의 삶도 중요하지만, 그들에게서 나온 자녀들의 성장에 더 큰 관심과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 2012년부터 그 당시의 삼성토탈(현 한화토탈)로 부터 1년에 3천만 원씩의 금액을 지원받아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의 다양한 체험활동과 학습 등을 진행해오고 있다. 이번 문을 연 ‘아시안 쿡’ 역시 다문화가정의 건강한 자리매김을 위한 것이라고. 
“다문화가정의 여성들이 2교대, 3교대의 생산직 현장에서 많이들 일하다 보면 시간적으로 집안이나 자녀문제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에 보다 안정적인 취업이나 창업이 늘 숙원사업이었어요. 그래서 시작한 것이 동부시장의 쌈지공원에서 어울림장터를 여는 것이었어요”

서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는 온 직원들이 팔 걷어부치고 나서 어울림장터를 정착시켜냈다. 아침부터 나가서 시장 안팎을 청소하며 시장 상인들과 교류를 트며 여러 도움을 받아냈다.
“이주여성들이 잘하는 음식을 만들어서 처음에는 그냥 드셔보시라 하고, 조금 자신감을 얻어 1천원씩 받고 팔기 시작했어요. 그게 기반이 돼서 오늘날의 아시안 쿡 요리전문점을 만들게 됐어요. 장사에 장자도 모르는 다문화 여성이고, 마찬가지로 장사 경험이 전혀 없는 센터 복지사와 통번역사들이 내 일처럼 문을 열고 손님을 맞고 있답니다.”
그녀는 아시안 요리 전문점을 준비하며 보낸 세월이 1년이라고 전했다. 레시피를 개발하고, 비좁은 탕비실에서 요리를 연습하다가 그것도 부족해 복지재단과 요리학원의 도움을 받기도 하며 요리 10가지를 엄선해 준비한 것. 

“직원들이 너무 많이 고생했어요. 대상포진에 걸린 직원도 있었는데 견뎌가며 도왔고, 매일 같이 늦으니 남편이 현관 열쇠를 바꿔버린다는 소리까지 들으며 그 힘든 시간들을 버텨냈어요. 아무 불평 없이 따라준 직원들이 너무 고맙고 듬직합니다. 우리 직원들은 충남 최고 장기근속자들이 대부분이고, 7~8시 이전에는 퇴근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예요. 그게 다문화가정의 튼튼한 힘이 된다고 봅니다.”
아시안쿡이 문을 열던 첫날도, 그 이튿날도 만사 제치고 나와 요리를 거들고 주문을 받고, 음식을 서빙하느라 바쁜 유부곤 센터장과 직원들은 한마음으로 바란다. 이곳이 다문화 가정이 서산시에 자연스럽게 뿌리내릴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 되기를. 다문화 여성과 가족들이 제 집처럼 찾아 함께 어우러지기기를. 그녀들이 정성껏 준비한 아시안 요리들을 서산시민들이 맛보며 더 따뜻한 마음으로 품을 수 있기를. 그런 마음들이 깊게 깊게 우려진 베트남 쌀국수를 맛보기 위한 발길들이 오늘도, 내일도 계속 이어진다.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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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4 연탄봉사에 나선 서령고등학교 3학년 9반 학생들


수능 끝! 나는 고3이다

이제  또 다른 인생의 길에 선 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 매섭게 파고드는 추위를 온 몸으로 맞으며 어느 집의 온기 없는 안방에 따뜻함을 옮긴다.
하필이면 칼바람이 몰아치는 매서운 날이다. 아무리 여미고 여며도 옷 깃 사이로 송곳처럼 파고드는 바람에 여드름 꽃 핀 얼굴이 새파랗게 얼었다. 오늘은 3학년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날! 수능도 마치고 기말고사도 끝났으니 잠깐만의 해방감을 누려도 좋으련만, 서령고등학교 3학년 9반 아이들은 연탄봉사를 위해 모였다. 다음날 대입 면접을 봐야 하는 몇 명을 뺀 27명의 아이들이다. 
오늘의 봉사미션은 동문동 ‘서산연탄은행’ 현장에서 음암면 상홍리 말목길 언덕배기까지 300장의 연탄을 나르는 일. 세 대의 리어카에 차곡차곡 연탄을 실은 아이들이 겁도 없이 길을 나선다. 차가 마주 오면 오도 가도 못 하는 외길을 지나 차도를 통과한다. 학교로, 집으로, 학원으로 다니던 학교 앞 길을, 오늘은 까만 연탄을 가득 싣고 지난다. 아이들 입시지도에, 자기소개서 작성에 한창 바쁘던 담임선생님은 오늘 책 대신 경광봉 두 개를 양손에 잡았다. 아이들의 연탄 행렬 맨 뒤에서 달리고 막고 소리 지르며 제자들의 안전을 철통같이 지킨다. 



친구들과 함께 밀고 끌며 인도도 가끔 끊기고, 차들이 복잡한 교차로도 통과한다.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고 나니 한창 공사 중인 길이 끝도 보이지 않게 펼쳐진다. 차들이 오면 한 쪽으로 비켜서고, 차들이 지나면 다시 걷고, 오르막에는 밀고 내리막길은 같이 버티며 그렇게 길을 걷는다. 
손가락이 굽도록 추우면, 힘든 시간들을 버티는 또 다른 이웃의 마음이 되어본다. 가파른 길을 안간힘을 다해 오르며 인생의 가파름을 실감해보고, 미끌어져 내려가는 비탈길 리어카를 움켜잡으며 버텨 참아야 할 시간들을 견뎌본다. 꼭 이렇게 추운 날, 꼭 이렇게 먼 길을 그 고생을 하며 가는 뜻은 오늘의 생고생이 기억에 살아있는 기록으로 오래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11월 들어 가장 추운 날, 한 해 동안의 고생을 수능과 기말 고사로 마무리한 후 아이들은 후련하고도 서운한 마음에 까만 연탄을 가득 싣고 구불구불 시골길을 다시 걷는다. 언덕배기 길을 지나 어미 개와 새끼 강아지 짖어대는 집에 연탄을 차곡차곡 내려놓는다. 어느새 하얀 장갑이 까맣게 변하고, 공부에 지친 하얀 얼굴에 까만 연탄재가 묻었다. 몸이 불편한 집주인의 연탄창고는 가득 차고, 세 대의 리어카는 텅 비어 버렸다. 뭔가 모르게 뿌듯한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잠바까지 벗어던진 몸에서 기분 좋은 땀 내음이 난다. 나와 내 친구가 나른 연탄 한 장이 채워줄 10시간의 따뜻함에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2016년 11월 23일 혹독한 시간 속에서의 고된 나눔과 힘든 봉사는 평생 꺼지지 않을 따뜻한 불씨로 남았다. 나는 고3이다.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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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3 대호목공소 여기석 대표


천직으로 살아온 40년 목공 인생

한 번도 들여다 본 적이 없을 것 같은 낡은 거울과 달력, 난로 하나 덜렁 있는 작업장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얼마나 오래 썼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닳고 닳아 패이기까지 한 작업대, 그리고 벽마다 세워진 원목과 집성목들, 손때 묻은 톱과 끌. 번듯한 여타 공방들하고는 달라도 너무 다른 풍경이다. 앉을 의자 하나 없어 내내 서서 한 인터뷰 내내 작업장이나 사람이나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꾸미지 않은 투박함, 내세우지 않은 겸손함. 거칠지만 숨길 수 없는 순수함. 톱밥 가득한 바닥에 털썩 앉아 이야기하고 싶을 만큼 편했고,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인양 친근했다. 입 꼬리에 걸리는 정직한 웃음이, 낮은 그의 어깨가. 다친 자욱이 많은 두툼한 그의 손과 나무 냄새가. 
날마다 7시 반이면 이곳 작업장에 나와 주문받은 책장을 짜기도 하고, 인부를 꾸려 인테리어 목공 작업을 하러 나가기도 하는 여기석씨의 일상은 시계추마냥 정확하고 부지런하다.

허니문예식장 길 건너에서 대호목공소를 운영 중인 여기석(57) 대표는 16살 때부터 나무를 만졌다. 남들 책 볼 때 나무를 자르고, 남들 공부할 때 톱밥을 쓸었다. 아이스크림 10원 하던 시절에 30원 짜리 쇠고기라면만 먹어가며 일을 배우고, 일 못한다고 망치와 드라이버를 던져도 참아가며 견뎠다. 그렇게 시작해 나무 밥 먹기 시작한지 어언 40여년. 목공은 그의 밥줄이 되었고, 평생의 직업이 되었다. 



“목공만 하고 살았어요. 다른 것은 할 줄도 모르고요. 평생을 했어도 나무는 질리지 않아요. 사람과 나무는 교감이 맞아야 하는데, 산에 안가고도 이렇게 나무를 가까이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그렇게 평생 만진 나무라도 늘 조심해서 다뤄야 해요. 자칫 딴 생각을 하다가는 매끈해 보이는 결에서도 가시가 일어나 맨 손에 박혀 버리고 말아요. 딴 생각을 하면 안돼요. 온통 집중해야지요. 그렇게 했어도 크고 작게 손을 다친 적이 참 많아요.”
그는 식탁을 만들면 저녁이면 둘러 앉아 따뜻한 밥을 먹는 가족의 모습이 그려진다. 침대를 만들면 그 안에서 행복하게 뒹구는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의자하나를 만들어도, 선반 하나를 만들어도 앉을 누군가를, 걸릴 물건을 생각하며 나무를 자른다. 한번 해가면 망가지지 않은 이상 평생을 쓰는 가구이고, 물건이기 때문에 대충 할 수도 없다는 그다. 자신이 스스로 만족해야, 믿고 맡긴 고객도 흡족할 수 있다고 믿기에 다 만든 것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 없이 부셔버린다. 

“신기하게도 그동안 만든 것들이 다 기억에 남아요. 만들어주면서도 ‘잘 써야 할 텐데’ 그 마음으로 만들어요. 잘 쓰고 있다는 인사를 들으면 그런 것이 또 고마워요. 돈을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약간 손해 보듯 사는 거예요. 지고 살아야 아무 근심 걱정이 없어요. ‘남한테 이기지 말고 지고 살자’가 제 신조랍니다.”
만들어준 물건을 보고 좋아서 웃는 고객을 보면 그의 입도 귀에 걸린다. 그런 입소문이 퍼지고 퍼져 그의 목공소는 단골들 위주로 운영된다. 원하는 가구의 사진을 들고 와 그대로 만들어 달라고 하기도 하고, 도면을 그려와 그대로 나무만 재단해 달라고도 한다. 그는 이문을 따지기 이전에 믿고 온 마음을 먼저 생각한다. IMF로 어려움을 겪던 시절, 말없이 다가와 책받침에 있는 그림 속 가구를 주문한 후, 숱한 입소문을 내주고 가구책자를 사다주며 주저앉을 뻔 했던 그를 일으켜 세워준 귀한 인연을 늘 떠올린다. 
“저는 나무를 만질 때가 좋아요. 아무 잡생각 없이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아요. 40년 이상 해왔으니 이게 천직이죠. 그냥 이렇게 살고 싶어요.”
고객과의 믿음을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아가는 그에게서 아름드리 소나무 향이 난다.
꼭 맺고 싶은 인연이다.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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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2 7년간 잠홍저수지 환경정화 앞장선 김동균씨


“내 이름은 잠홍저수지 환경지킴이”

음암면 부산리에 사는 김동균(54)씨는 올해로 7년 째 잠홍저수지의 환경지킴으로 살아가고 있다. 틈만 나면 잠홍저수지 둔치를 따라 걸으며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을 줍는다. 풀숲에 숨겨진 플라스틱 빈 병을 줍고, 돌 틈에 끼어놓은 비닐봉지를 수거한다. 한번 나설 때마다 그가 모으는 쓰레기들은 수십 포대를 넘고, 주말이라도 끼면 트럭 한가득 찰 정도다. 기회가 되면 작은 보트를 타고 저수지 밑바닥에 버려진 폐그물과 어구들도 수거한다. 

20여 년 전 버려진 채 저수지 환경파괴의 주범이 되고 있는 그물은 한 개 길이만 해도 40~50미터. 사람 혼자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것을 보트의 힘을 빌리기도 하고, 배에서 내릴 때는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렇게 수년간 그가 수거해 버린 폐그물만 50여개 정도. 그렇게 힘을 들였어도 아직 3분의 1정도 건진 정도밖에 안된다고 한숨부터 쉬는 그는 요즘 어엿한 ‘서산시 잠홍저수지 환경지킴이’로  활동 중이다. 
번듯하게 새단장된 잠홍저수지 둘레길 환경정화에 더 부지런히 앞장서고 있는 중. 수변 주차장 가까운 곳에 쉼터를 운영하며, 틈틈이 주차장의 담배꽁초를 일일이 주워 버리고, 시민들이 사용하고 간 음수대와 공중화장실의 청소까지 도맡게 되어 더 바쁜 사람이 되었다. 

그가 잠홍저수지 환경정화에 앞장서게 된 계기는 이곳에 이사 와서 저수지에 붙어 있는 논에 농사를 지으면서부터이다. 벼이삭이 필 무렵 크게 내린 비로 불어난 저수지물은 쓰레기 더미를 한가득 밀고와 그의 농사를 망쳐버리게 했다. ‘나 하나라도 쓰레기를 줍다보면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겠지’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환경봉사는 결국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어떤 때는 이동식 화장실이 둥둥 떠밀려 온 적도 있고, 잠홍저수지에서 1년 동안 수거되는 쓰레기들이 800포대도 넘어요.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고 가는 일부 몰지각한 낚시꾼들과 간혹 시비가 붙을 때면 그만두고 싶은 적도 있지만, 몸살을 앓는 잠홍저수지가 조금이라도 깨끗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린 속을 달래곤 합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이제까지 쭉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잠홍저수지와 함께 동고동락할 김동균씨가 함께 하는 잠홍저수지. 사람과 자연의 그 중간, 문명과 자연의 그 중간을 그가 지킨다.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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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1 난농원 이인경 홍석흥 부부


기다림으로 피워내는 난꽃들, 삶의 향기가 되어

꽃이 웃으니, 내가 웃고, 내가 웃으니 꽃이 웃는다. 꽃은 그래서 좋다. 피기 전에 설레고, 피어서 황홀하고, 지고 말아 못내 애잔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다림. 그런 꽃들에 둘러싸인 삶은 꽃길일까? 
화원 밖, 비닐하우스 밖, 밖에서만 보는 꽃의 인생은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다. 바라만 봐도 좋고, 받기만 해도 좋은 꽃을 숨결처럼 늘 붙들고 산다는 것은 분명 멋지고 행복한 일. 그러나 그 안으로 한발만 더 들어가 가만히 그 삶을 들여다보면, 꽃을 붙들고 사는 인생은 꽃이 피고지고 따라 기쁘고도 애타는 삶이다. 그런 삶이 자그마치 20여년이 넘었으니 이제 덤덤해도 좋으련만, 여전히 꽃의 숨결에 희로애락도 같이 한다. 천생 꽃과 함께 할 팔자다. 서산에서 난 배양실과 난농장을 운영 중인 이인경(43)씨 부부다. 



남편 홍석흥(49)씨는 서산 농고를 나와 생명산업분야와 웰빙 분야별 전문가를 양성하는 연암대학교를 졸업한 후 그 꿈을 그대로 좇아 음암면에 난 배양실을 차렸다. 그 삶이 21년. 오직 한길만을 걸으며 셀 수 없는 새로운 시도 속에서 그가 새로 배양해낸 난들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과정에서 겪은 실망과 보람, 기다림과 기쁨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삶을 결혼과 함께 온전히 껴안으며 남편이 배양해낸 난을 동문동의 난농원에서 키우는 이인경씨. 남편이 배양해낸 난들을 가꾸고 보듬으며 남편의 곁을 참 듬직하고도 묵묵하게 지켜낸다. 일이 많고 고된데다가 가끔은 앞날이 캄캄한 날도 많아 힘들지만, 아이 셋 키우며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하며 사는 그녀다. 

“육종의 신기함이 그것이에요. 특이한 것이 정말 많고, 무슨 꽃이 나올지 그 끝이 없다는 거죠. 한 꽃을 만들어 내기까지 10년이 걸린 것도 있어요. 정말 쉽지 않은 일이고 오래오래 기다려야 하는 일이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결코 놓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해요.”
인경씨는 음암의 난 배양실에서 일하는 남편과 따로 떨어져 동문동 난농원에서 일하지만, 남편의 속내는 그 누구보다 잘 안다. 가뜩이나 하향세인 난 농업이 얼마 전 발효된 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직격탄을 맞으며 맥을 못 추니 그 속이야 어떨까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게다가 난은 온도관리나 물 관리에 너무도 예민한 식물이고, 자꾸 자재도 바뀌기 때문에 안정적인 정착은 어려운 일. 20년 이상 난 농사를 지었다고 해서 잘할 것 같아도, 계속 시행착오를 겪어갈 수 밖에 없는 농사가 바로 난 농사라는 설명이다. 



“가진 것 없이 작은 하우스에서 시작해서 지금까지왔지만 지금 다시 그렇게 살라고 하면 못 살 정도로 너무 힘든 세월이었어요. 서로 믿고 의지한 힘으로 버텨온 것 같아요. 아무리 힘들고 앞날이 고되어도 내 집에 하나 놓고 싶은 마음으로 꽃을 키우고 싶어요. 꽃을 주면 받는 사람도 좋지만, 주는 사람도 기쁘잖아요. 그런 적당한 설렘이 난을 통해 삶의 활력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수수한 듯 선하고 정직한 웃음을 가진 그녀가 웃는다. 난이 웃는다. 난의 뿌리처럼 다부진 남편이 따라 웃는다. 부부의 삶, 부부가 함께 해서 참 아름다운 꽃길이 되었다.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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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0 태안여중 연극부 연두빛 뜨락



연극으로 단단하게 영글어가는 연둣빛 그녀들

“하나요. 둘이요. 셋이요. 넷이요!” 쩌렁쩌렁, 교실 안이 들썩인다. 어여쁜 소녀들이 온 힘을 모아 교실을 들었다 놨다하는 이곳은 태안여중(교장 신재완) 연극부 ‘연두빛 뜨락’. 싱그러운 연두 빛 소녀들이 햇살가득 눈부신 꿈을 가슴 깊이 끌어안는다. 그리고 씩씩하면서도 수줍게, 투박하면서도 어여쁘게, 한 장 한 장 정성스레 그 꿈을 펼쳐 푸르른 ‘뜨락’ 위에 싹을 틔웠다. ‘연두빛 뜨락’, 눈부시게 생동감 넘치는 그녀들이 아름답다!

“9살 때부터 연기하는 게 꿈이었어요. 연극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들어왔어요.”“초등학교 시절, 동화책을 연극으로 바꿔 공연하는 언니들을 봤어요.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중학교에 오니 연극부가 있더라고요. 너무 좋았죠” “유리가면이라는 만화를 인상 깊게 읽었어요. 연극에 관심이 많았는데 ‘연두빛 뜨락’ 포스터를 보고 바로 이거다 하는 마음이 들었죠.” “아는 언니가 연극부에 있어서 따라왔어요. 첨에는 몰랐는데 하다 보니 재밌었죠. 연극부와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워요. 지금 1학년인데 3학년 때 까지 쭉 연극부와 함께 할 거예요.” 각자의 시작은 달랐다. 어떤 이는 연기가 좋아서, 어떤 이는 감명 깊게 읽은 책의 감흥으로, 어떤 이는 친한 언니의 권유에 연극부에 들어왔다. 천천히 그리고 차분하게 발성을 배우고 소리 내는 법을 익혔다. 울고 웃고 떠들고 연습하고, 그렇게 한 마음이 되어 성적전쟁에 삭막할 법한 학창시절을 따뜻하고 포근한 꿈의 뜨락으로 바꿨다. 



난생처음 무대에 올라 온 몸이 짜릿한 기쁨을 느끼기도 했고,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 연기에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연습을 반복하기도 했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스물 네 명, 색깔도 모양도 각기 다른 스물 네 개의 별이 모여 지금은 하나가 되었다.  
“16년의 역사를 지닌 연극부예요. 선배들의 명성을 이어 좋은 연극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지난 ‘제 18회 충남학생연극제’에서 영예의 대상을 수상한 ‘연두빛 뜨락’은 그간 은상, 금상에 이어 2년 연속 대상(2015년 ‘동행’, 2016년 ‘미인도’)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탄탄한 극본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으며, 무엇보다 연기를 하는 그녀들 자신 스스로가 캐릭터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친구를 돌아보는 값진 경험을 통해 알알이 단단하게 영글어가고 있다. 연극이 있어서 행복한 그녀들, 오늘도 무대 위에서 당당히 꿈을 꾸는 ‘연두빛 뜨락’. 아름다운 그녀들의 내일이 기대된다!
<김경아 기자>

- 태안여중 연극부‘연두빛 뜨락 (이고은 외 23명)’
- 지도교사 : 김남임,김수란,김용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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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빛은 촛불을 끈 뒤에 더욱 환해 보인다.-벤자민 프랭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