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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대원씽크 홍선관사장
작성자 서산교차로
등록일 16/12/02(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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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대로만 23년, 주방을 바꿔주다

대원싱크 홍선관(62) 사장. 그의 공장은 주인만큼이나 소박했다. 기름기를 쫙 다 빼서 건조하지만, 오히려 담백한 느낌. 23년 오랜 일에 지치고 힘들어 보였지만, 눈빛만큼은 꽤 깊었다. 오랜 세월 힘들지만, 정직하게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그 깊이는 투박함을 이내 녹여 버렸다. 
죽성동 서령초등학교 앞에 있는 그의 공장은 주인만큼이나 소박했다. 간판도 없이 큰 길가 옆으로 오도카니 서 있는 작업장. 일하는 게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한 것들은 죄다 빼고, 오로지 작업에 필요한 연장과 공간만 남겨놓는 것이 을씨년스러워 보였지만, 주인의 성정을 닮았다. 

“내가 뭐 한 게 있다고 인터뷰를 한다는 건지. 할 말도 하나도 없구먼.”그러면서 슬그머니 의자를 권하고는, 자투리 목재를 때는 난롯가에 쪼그려 앉는다. “나를 인터뷰하라고 추천해줬다는 대호목공 사장하고는 친형제처럼 지내요. 그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쥬. 분명하고 반듯하구 나무랄 데가 없어요.”
초록은 동색이라고 했던가. 그 역시 뭔가를 재고 챙기는 것 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붙박이장도 하고, 싱크대도 하고, 나무로 하는 것은 죄다 해요. 여기 죽성동에 온지는 13년 됐는데, 그전에는 시장에서 싱크대 가게를 하다가 직접 만들 수도 있겠다 싶어서 시작한게 여태까지 오게 된 거쥬.”

할 수 있다는 마음 하나로 덤빈 일이다 보니 고생도 참 많이 했다는 그는 초창기에는 재단하는 게 제일 어려웠다고 전한다. 규격에 맞춰 정확히 재단해야 하는데, 단 5mm라도 어긋나면 아귀가 맞지가 않으니까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자체를 용납할 수가 없는 일이 싱크대 일이라고. 톱질을 하다 왼손 넷째 손가락 마지막 마디를 잃는 아픔도 겪었다. 살집 하나 없이 앙상한 그의 손에 남은 흔적은,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 남은 삶의 훈장이다. 
“아무리 조심해도 아차 하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열심히 안하면 일이 되간. 고생이야 누구나 다 하지요. 배운 게 이건데 이거 안하면 뭐해요.”



그렇게 한눈 안 팔고 살아온 한 길이 23년을 넘어가니, 이제 그의 솜씨는 매사 정확하고 빈틈이 없다. 거기에 신용을 우선으로 하는 거래다 보니 대부분이 단골 주문으로 이뤄진다. 
“싱크대라는 게 값이 없어요. 원하는 가격에 맞추는 거지. 50만원도 하고, 200~300만원도 하고, 내 수준에 맞게 하는 거예요. 여자들한테 집안의 싱크대라는 게 참 중요하잖아요. 저는 그냥 제가 해줄 수 있는 선 안에서 최선을 다해 잘해주고 싶어요. 기술이야 다 비슷하니까 저는 날짜도 정확하게 지키고, 값도 되도록 더 저렴하게 해드리려고 하죠.”
힘이 없으면 못하는 싱크대 일이다 보니, 앞으로 한 5년만 더 일하고 나서 쉬엄쉬엄 취미삼아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홍선관 사장. 한창 잘 나갈 때는 새벽 4~5시까지 일을 해야 할 정도로 성업을 이뤘지만, 지금은 일감이 적당히 들어오는 편이다. 

“작업하는 게 워낙 시끄럽고 먼지도 많이 나니까 여기 한적한 곳이 일하기는 딱이예요. 바쁠 때는 여기서 먹고 자기도 하고 편해요.”
그의 작업장 한 켠의 공구대. 드릴과 끌과 타카, 대패, 고무망치들이 손때 묻은 모양으로 정겹게 자리를 지킨다. 하루도 손에서 떼지 않고 수 십 년을 함께 해온 친구같은 존재들이다. 반짝반짝 윤이 나지는 않지만, 집안의 오래된 절구통처럼 투박하고 듬직한 존재들. 공구와 주인과 공장이 그렇게 닮았다. 
<배영금 기자>

▒ 대원싱크  ☎ 010-5401-8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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