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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24076
제목 폐지주워 이웃사랑 실천하는 김연자씨
등록자 서산교차로
등록일 15/03/06(금)
열람 3,74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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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줍는 천사

 

장미 빌라 1층 베란다 난간에는 세 발 자전거 두 대가 나란히 묶여져 있다. 어린이가 아닌 어른을 위한 세발자전거는

말 그대로 바퀴가 세 개다. 자전거 앞의 짐을 실을 수 있는 바구니도 모자라 자전거 안장 뒤에는 약간의 개조를 통해

더 많은 짐을 튼튼하게 부릴 수 있는 커다란 철 바구니가 있다. 이 세 발 자전거는 어느 자전거보다 바쁘다.

주인을 따라 새벽에도 아침에도 한밤중에도 쉴 새 없이 나가 하염없이 길을 굴러다닌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쉬는 날도 없다. 비탈진 길도, 내리막길도 주저함이 없다. 구불구불한 골목을 지나 식당을 지나고 건물 뒤편을 훑어

큰길로 나오면 어느새 뒤 바구니에 가득 찬 물건들. 하나같이 고물들이다. 바구니 안에는 파쇄지가 한가득 실려 있고,

그 위로는 수십 겹으로 쌓인 종이상자와 폐지들이 작은 산을 이루고 있다. 그 사이 사이 주렁주렁 매달린 플라스틱 물통과

빈 통들. 앞 바구니에도 빈틈없이 채워져 있는 재활용 물건들. 세발자전거 주인이 골목골목을 훑어 내리며 모아온 것들이다.

세 발 자전거는 올해 69세를 맞은 주인을 태우고 뒤뚱뒤뚱 무겁게 바퀴를 굴린다. 오늘따라 더 많은 폐지 덕에 몸은 무거운데

바퀴는 가볍다. 어제보다 더 많이 폐지를 모은 주인이 더욱 신나게 페달을 밟기 때문이다.

 

낡고 오래된 자전거라 삐걱삐걱 구를 때마다 소리가 나는 데도 주인은 그 소리가 노랫소리라도 되는 듯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이 세 발 자전거의 주인은 김연자씨다. 직업은 주부, 취미는 폐지 모으기다. 폐지 모으는 일을 위해 3년 전에 일부러

자전거 두 대를 구입했다. 한 대가 바람이 빠지면 다른 한 대를 쓰기 위해서다. 남편에게 부탁해서 짐칸도 더 크게

더 튼튼하게 만들었다. 아침이면 10시에 나가 두 시간 여 폐지를 모으고, 모두가 자는 밤 2시 반에 나가

또  한 시간 여 거리를 헤맨다. 그렇게 하루 두 세 차례 모은 폐지는 고물상에 가져가 넘긴다. 그렇게 그녀가 모은 돈은

고스란히 중풍으로 몸져 누은 어느 이웃의 통장으로 수십만 원이 입금되고, 또 해외에 나가 선교를 하는 사람들

통장에도 입금이 된다. 3년 전부터 꼬박 해온 일이다.


“제가 오랫동안 몸이 많이 아팠어요. 병원에 가도 원인도 없다는 데 늘 콧잔등에 땀이 나고 기운도 없고,

불면증도 심해서 밤에 잠을 못잘 정도였어요. 관절도 아파서 계단을 오르려면 기어가다 시피 올라야 했고요.

그런데 이렇게 밤마다, 아침마다 매일 같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폐지를 모으며 살면서부터는 무릎 아픈 것도 다 낫고,

불면증도 사라졌어요. 몸이 아파 밥도 못먹고 살았는데 이제는 돌멩이를 깨물어도 쑥쑥 내려갈 것 같아요.

하루만 쉬어도 속이 더부룩하니 팔자가 왜이러냐 하다가도, 더 아픈 사람 생각하면 웃으며 일할 수 있어요.”

 

 


처음 그녀가 폐지 줍는 일을 시작한 것은 아들이 다니던 회사에서 많이 나오던 종이상자 때문이다. 그 양도 솔찮고,

폐지 쳐주는 값도 괜찮았던 시절, 그게 아까워 시작한 일이 이제는 일과가 되어 버렸다. 회전이 안 되는 세발자전거를 타다가

숱하게 넘어지기도 하고, 택시를 모는 남편의 지인들이 폐지 줍는 아내를 봤다는 소리들을 전해오며 남부끄럽다고 할 때도

멈추지 않았다. 이제 그런 남편은 그런 아내를 말없이 지켜보고 고장 난 자전거도 고쳐준다. 아프다는 소리를

달고 살던 사람이 3년여 동안 병원도 안가고 약 한번도 안 먹고 사니, 누가 뭐라 하건 건강하면 된다고 여기는 듯하다.


“며느리가 간호사로 일하는데, 한번은 아는 사람이 너희 시어머니 그러고 다니는거 안창피하니? 하더래요.

그래서 난 부끄럽지 않다고 당당하게 이야기 했대요. 폐지 주워서 좋은 일 하고 사시는데 오히려 자랑스럽다고요.

그런 며느리가 고맙지요.”


고물상에 가도 핀잔을 자주 듣는다. “넘덜이 그라는디 있이 산다는디 왜 그러고 다녀?”그러면

 “그려요, 우리 남편하고 아들 둘 삼부자요. 부자.”그러고 만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들어요. 고생을 사서 한다고요. 한밤중에 나가는 것도 무섭지 않냐고 들 하는데 처음에만

무서웠지, 이제는 무섭지 않아요. 교회 아는 사람들도 ‘넘새 부끄러워서 어찌 그러고 다니냐’고들 하는데,

저는 그냥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면 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안 부끄러운데 뭐가 문제인가요.”


무거운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보면 흘린 박스를 주워 주는 사람도 있고, 짐을 실을 때 도와주는 학생도 있어서

좋은 사람이 아직은 더 많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산다는 김연자씨.


오늘도 그녀의 세 발 자전거는 삐그덕 삐그덕 소리를 내며 골목을 달린다.

폐지줍는 천사를 태운 의기양양한 세 발 자전거다.

<서산교차로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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