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플러스 홈으로
 
  • ▒ 전체 948개의 게시글이 있습니다. ▒
번호 27984
제목 자동차 정비기사 이선애씨
등록자 서산교차로
등록일 16/03/13(일)
열람 1,026회
첨부파일 -
사용량 본문: 12.6KB, 업로드: 141KB
SNS tweet facebook

투박하지만 멋진 인생, 스물아홉 살 그녀

 

 

스물아홉. 참 좋은 나이다. 꽉 찬듯하면서도 비워져 있고, 부족한듯하면서도 정작 모자람도 없다.

뭔가를 이뤄 놓았을 성숙한 나이이기도 하고,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새파란 젊음이기도 하다. 세상을 녹록치

 않게 살아내면서도, 아직 세상의 때에는 찌들지 않고, 하나하나를 이뤄내면서도 끊임없이 더 나은 나를 위해 스스로를

담금질해대는 시간. 그리고 고속도로를 거침없이 달리다가도 울퉁불퉁 자갈길로 서슴없이 내려와 다시 또 달릴 수 있는

젊음이 있는 시간. 그래서 스물아홉은 비워져 있어 더 가치가 있고, 언제든 채울 수 있어 더 여유롭다.


스물이라는 이십대와 서른이라는 삼십대를 가르는 그 기로점에 선, 딱 그만한 나이에, 이선애씨 그녀가 있다.

 

스물아홉,

옛날 같으면 결혼도 하지 않는 나이라는 스물아홉수. 그녀의 이십대 시절 마지막은 여전히 바쁘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녀의 직업은 자동차정비기사. 네일아트를 받을 손톱에 온통 새까만 기름때를 묻히고, 꽃무늬 프린트된 원피스 대신 시커먼

 작업복을 입은 채 하로 온종일 자동차와 씨름한다. 그녀는 자동차정비기사 자격증을 6년 전에 땄다.


떠날 듯 말 듯 돌고 돌아 말뚝에 묶인 소처럼 그녀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제대로 된 자동차 정비 일을 한지는 어언 3년.

그 사이 꽃다운 젊음이 갔다. 말쑥한 직장인, 화사한 여자로서의 삶도 같이 보냈다. 그 대신 그녀가 얻은 것은 자동차정비기사라는

어엿한 타이틀. 그리고 여자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남자들만의 성역으로 굳어진 영역에 꽂은 여자 정비기사의 깃발. 그리고

직업에 대한 확고한 마음과 목표이다.


“고등학교 때 중국으로 유학을 갔었는데, 대학 간 사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생계유지  때문에 귀국해서 배달을 하다가

우연히 오토바이 이야기에 눈을 뜨게 됐어요. 그 당시 정비용어도 모르고 차종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때였는데,

이거 하면 먹고 살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정비학원에 들어가 보니 제가 유일한 여자였어요.”


그녀는 그 남다른 세월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6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를 세 곳을 뛴 적도 있고, 학교를 다니면서

정비자격증도 따냈다. 몸을 쓰는 일이라 몸도 마음도 지치고 어렵던 시절, 그 혹독한 세월을 딛고 그녀 이제 노력하는 자동차

정비기사로 대우를 받는다.

 
“자동차 정비가 너무 좋아서 미쳤던 것 같아요. 무작정 배우고 무작정 했어요. 여자로서의 우대를 바란 적도 없고, 그렇게

해주지도 않았어요. 차별이 없는게 오히려 좋았지요. 다행히 좋은 선배님들 만나 잘 배우고, 여자는 선호하지 않는 업종에서

저를 믿고 채용해주신 사장님을 만나 일하고 있어요. 요즘은 그게 행복이에요.”


씩씩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그녀가 수줍게 웃는다. 검고 굵은 뿔테 안경 너머 감춰진 얼굴이 곱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다.

여자이기 이전에 자기 자신이 진짜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찾고, 그 일을 위해 젊음도 청춘도 다 바친 그녀. 그녀가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며 다시 또 수줍게 웃는다. 누구나 가는 길 대신 쉽지 않은 그 길에 우뚝 서서 신발도 벗고 맨발로 걷는 그녀.

스물아홉 그녀가 반짝반짝 빛난다.

 

직업도, 꿈도, 자동차정비기사

 

 

그녀의 친구들은 그녀에게 묻는다. 중국에 유학도 다녀오고, 호주에도 다녀온 애가 왜 그렇게 사느냐고. 세상에 그 많은 직업을

 다 놔두고 하필이면 왜 손에 기름 묻히는 자동차 정비기사냐고. 그런 친구들에게 그녀는 말한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이라고. 그 동안의 세월 동안에 그 답을 찾은 것뿐이라고.

6개월 동안 걸레만 빨고 살았어도 그때의 그 삶이 지금의 꿈을 만드는데 소중한 거름이 되었다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정해져 있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한정되어

있기도 하다. 내 재능과는 다른 돈 버는 일에 매여 있기도 하고, 가족 부양을 위해 꿈을 포기하기도 한다.


비록 생계를 위해 시작은 했지만, 결국 그것이 그토록 하고 싶은 자신만의 직업이 되고 더 간절히 얻고 싶은 꿈이 되어 돌아온

 자동차 정비. 그녀가 처음부터 이 일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자동차 정비를 하다가도 다른 길로 들어서 네이버 지도 개편을 위한

카메라 촬영 작업을 하러 전라도 일대를 돌기도 했고, 중간에 사무일도 맡았었다.

운전도 했고, 무역회사에서 자동차 관련 일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돌고 돌아 그녀는 원점으로 왔다.

 


“다른 일을 하는 중에도 계속 미련이 남았어요. 이 나이에 초보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경력이나 기술을 쳐주는 것도 아닌데,

나를 받아주는 곳이 있을까? 계속 고민하고 맴돌다가 결국 다시 돌아온 거예요. 누구보다 나를 믿으니까 시작할 수 있었고, 지금도 이 자리에 계속 있을 수 있는 거예요.”


이선애씨는 아버지가 하던 일을 하고 나서야 아버지의 고된 인생을 알았다. 남자들의 삶이 이렇게 힘들다는 생각에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 않았으면 전혀 몰랐을 일, 해보지 않았으면 꿈도 가지지 못했을 일. 그녀는 두툼한 껍질을 깨고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여자도 아닌 인간 이선애로, 남자들과 차별받지 않으며 당당히 자동차정비기사로 섰다.


그런 그녀가 그동안의 세월동안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여자분이세요?”라는 소리. 하도 들어 이제 귀에 못이 박힌 그 말은 호기심이기도

 하고, 신선함이기도 하다. 손질한 듯 안한듯한 더벅머리, 굵고 검은 뿔테 안경, 어렸을 적 복싱으로 다져진 넓은 어깨와 남다른

 몸집은 여성과 남성의 혼란스러움 그 딱 중간에 있다. 거기에 직업까지 자동차 정비기사이니, 고객들의 놀람도 지극히 당연한 일. 

“아무렇지도 않아요. ‘좋은 기술 배우셨네요’ 하며 신기해하는 고객 분들이 더 많이 챙겨주셔서 오히려 고마워요. 저도 더 세심하고

 더 편하게 해드리려고 노력해요. 정말 제가 너무너무 하고 싶었던 일이니까 항상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여자지만 믿고 채용해주신 사장님께도 짐 대신 힘이 되어 드리고 싶고, 여자로서의 부족한 점을 자상하게 챙겨주신 선배님들

 기대에도 어긋나고 싶지 않아요.”


그토록 반대했던 그녀의 가족들은 선애씨를 이제 자랑스러워한다. 할머니는 반상회에 가서 손녀딸을 자랑하기도 하고, 정비소가

문을 닫은 휴일에 고장 난 외삼촌의 차를 고쳐 달라고 부르기도 하신다. 뚝딱 고쳐내는 손녀딸이 대단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든 할머니는 집안에 수도꼭지가 고장이 나도 선애씨를 불러대신다. 그런 할머니 할아버지를 가까이서 도와드리기 위해 일부러

서울에서 서산에 내려와 살며 직장까지 구한 선애씨는 요즘 자동차 정비 산업기사 시험을 준비 중이다.

 
“제가 욕심이 많아요. 이거저것 알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정말 많아요. 어렸을 때도 그랬고, 더 젊었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래요. 항상 몇 가지 일을 하면서 꽉 차 있는데도 늘 만족스럽지 않고, 비어있는 느낌이에요. 뭔가 끝나면 뭔가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지만, 자동차는 놓지 않고 꾸준히 하고 싶어요.”

 

자동차 기술이 갈수록 발달하면서, 자동차 정비 기술 역시 갈수록 더 어려워져 힘이 든다는 그녀는 자동차 전자제어에 대해 계속
 
 공부중이다. 나중에는 차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도 직접 만들어 보고픈 꿈도 지녔다. 너무도 먼 이야기지만 꿈을 꿀 수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엔돌핀이 퐁퐁 솟아나는 그녀가 말한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금 살아계셨다면 엄청 반대를 하셨을 거예요. 그래도 저는 아마 이 일을 하고 있겠지요. 어렸을 적
 
아버지가 기름칠 하던 모습을 보던 게 지금도 생각이 나요. 그 아버지 모습 그대로 살고 있지만, 믿어주시고 지켜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자동차 기름 냄새 속에 사는 그녀가 그런 냄새를 좋아하며 더 열심히 살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제 그 직업은 그녀의 천직이 되었다.

<서산교차로 배영금 기자>

커멘트 :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열람
876 웃음과 치유가 함께하는 강사 도전기 서산교차로 2016-04-01 686
875 미소가 아름다운 그녀, 서산을 물들이다 _ 웃음강사 이미소 원장 서산교차로 2016-04-01 885
874 친구들과 다른 길, 그러나 분명 내가 원한 길 _ 바리스타 윤다희씨 서산교차로 2016-04-01 872
873 스물 한 살의 꿈꾸는 바리스타 윤다희씨 서산교차로 2016-04-01 901
872 91세의 서각작가 김연제 옹 서산교차로 2016-03-23 941
871 윤석중 시비 제막식 서산교차로 2016-03-13 872
870 깸 중학논술 초급 서산교차로 2016-03-13 868
869 황락양봉원 서산교차로 2016-03-13 1,071
868 평화닭집 김 여사의 13년 노하우로 튀기는 시장표 치킨 서산교차로 2016-03-13 1,206
867 은혜상회 - 딸처럼 며느리처럼 손님을 섬기는 그녀, 길복씨! 서산교차로 2016-03-13 1,034
866 그릇이 예쁜집 서산교차로 2016-03-13 1,014
865 자동차 정비기사 이선애씨 서산교차로 2016-03-13 1,026


당신 자신을 믿어라. 그러면 남도 당신을 속이지 않는다.-벤자민 프랭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