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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26318
제목 갈산재
등록자 서산교차로
등록일 15/09/25(금)
열람 2,05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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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얻은 100년 고택, 그 특별한 머무름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100여년의 세월 전부터 그 자리에 만들어져 그 오랜 세월을 품어온 고택이건만,

그 이름도 유래도 기록도 찾아볼 수가 없다. ‘갈산재’라는 낯선 이름 하나 겨우 붙들고 수소문을 해서 찾아간 집.

고택의 너른 정원은 집의 나이만큼은 되어 보이는 늙은 은행나무만이 어쩌다 온 낯선 이를 맞는다. 가을 안에 푹 잠긴

나무는 지나는 바람결에 무심히 노란 은행을 툭 떨군다. 누구 하나 주워가는 이 없이 무수히 나뒹구는 은행들이

이 집의 고즈넉함을 더한다. 비어 있는 집일까. 아니다. 누군가 널어놓은 광목 이불이 가을의 진한 햇살아래 모락모락 익어간다.

이불 옆을 지나니 잘 익은 가을 냄새가 난다.


선뜻 대문을 넘지 못하는 것은 집이 가진 무게 때문이다. 무거운 것이 아닌 깊은 것. 오랜 집이 주는 느낌이다.

이 집에 들어가는 몇 번째 사람이련지 감히 헤아릴 수도 없는 세월을 품고 선 고택은 낡은 것은 적당히 다듬고 매만져진

모습으로 맞아준다. 잘 깎여진 잔디, 그 잔디위에 현대적 문명의 빛깔과 모양으로 자리한 의자와 파라솔이

빛바랜 기와의 색과 그럭저럭 어우러져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갈산재’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아니 100년 된 또 다른 고택이 우리 지역에 있다는 소리에 귀를 의심했다.

고택이란 고택은 다 찾아다닌 그 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이름이 아니던가. 유기방 가옥을 가서 주인이 두런두런

들려주는 이야기에 “이런 고택이 여기 여미리 유상묵 가옥과 유기방 가옥 말고도 원래 수당리에도 있고, 갈산리에도

있긴 있었는디.”라는 그 흐린 말꼬리에 그 흔적을 찾아 나설 생각조차 못했었다. 서산에서 관리하고 있는 문화재 명부에도

올라져 있지 않은 이름이다 보니, 더 그랬다. 그 반가움과 설렘은 찾는 발길을 조바심치게 했다.


서산 IC 가기 전 고속도로와 맞붙어 있는 갈산리의 평지와 아담한 산이 만나는 아늑한 터에 자리잡은

 ‘갈산재’는 유영호(62)씨가 깃들어 관리하고 있다.


“유승노 할아버님에게 부인이 여럿 계셨는데, 그중 셋째 할머님의 큰아들이 우리 아버지고, 그 아버지의 큰 아들이 바로 저예요.

유승노 할아버님의 아버님이 바로 여미리에 있는 그 ‘유상묵 가옥’의 그 분이신데, 여러 채 이런 집을 지어주셨지요.

그때 지은 집을 아버님이 이어받아 가구사업하면서 그 안목과 손재주로 가꿔 오셨는데, 98년에 갑자기 돌아가셔서

그 사업 10년 고통 끝에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왔어요. 그게 벌써 4~5년 된 이야기네요.”

 

주택 리모델링 업체로 유명한 ‘피-제이 플랜’의 대표를 맡아 아파트와 사무실, 오피스텔, 원룸주택 등의 갖가지 굵직한

리모델링 역사를 만들어오며 ‘조선일보’에도 관련 칼럼을 연재해왔던 그는, 디자인을 전공하고 현장에서 쌓은 감각과

안목을 바탕으로 ‘갈산재’를 손수 하나하나 다듬어냈다. 원래 있던 고택의 낡고 스러진 부분은 튀지 않게 고치고 허물어져

가는 담에는 안과 밖으로 지지담을 만들어 세웠다. 우물도 없애지 않고 그대로 놔두고, 사랑채와 행랑채에 고택의 멋은 살리되

현대적인 편리함을 덧대 한옥스테이가 가능하도록 만들어냈다. 갈산재 고택은 안채에 방이 두 개, 사랑채에 두 개, 행랑채 1개

총 다섯 개다. 그 방들을 다 한옥스테이로 내주고 있으니, 얼마든지 고택의 여유와 깊은 체취를 묵으며 느껴볼 수 있다.


삐걱거리는 툇마루에서는 주인이 오솔길에 하나둘 주워 온 상수리와 도토리, 작은 밭에서 딴 고추, 몸에 좋다는 쇠비름과

늙은 호박이 가을 햇살을 한껏 받고 있다. 작은 소반에 올려진 감들은 저마다의 색을 달리하며 익어가는 모양이 바라만 봐도

절로 좋다. 고택과 자연, 사람의 손길이 여유롭게 만나니 고택의 한적함은 시간을 달리해 느리게 흘러간다.


“우리 할머니가 아주 지독했어요. 비쩍 말라서 어찌나 무서운지 고부갈등이 말도 못하게 심했어요. 부리던 사람들이

뭐 하나라도 실수하면 온 집안이 다 울리게 쩌렁쩌렁 혼내셨어요.어렸을 적 그거 다 보며 자랐는데, 그래도 할머니는

꼭 저는 데리고 주무셨어요. 어머니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돌아가셨는데, 그대로 다 기억나요.

그때는 내가 가장 어리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내가 가장 어른이 됐으니, 세월이 참! 허허.”

 

누구는 이 오랜 집 무엇 하러 지키느냐고, 팔아서 나눠 쓰면 안되겠냐고 했다. 일부는 팔기도 했다. 집 잘 지킨다고

누가 상주는 것도 아닌 터라 그 힘든 마음이 벅차게 몰아칠 때는 그만 접고도 싶었던 그는 차마 그러지 못했다.

아버지가 이어온 것을 지킬 수 밖에 없는 운명이고 팔자라고 스스로 못 박았다. 욕심도 버리고 집을 지키는 고단함을 껴안았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가지고 있는 돈과 고생을 부어가며 집을 매만지고 다듬어 갔다. 길도 틀어서 다시 만들고

나무도 옮겨 심었다.


시멘트로 만든 오래된 돼지우리 하나는 부수고, 나머지 하나는 리모델링을 통해 현대식 건물로 만들어냈다.

엉망진창이던 돼지막사가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 것에 사람들은 놀랬다. 지명을 딴 ‘무릇티’라는 이름을 단 그 건물은

카페와 작은 사우나 공간을 담고 사람들을 맞이한다. 고택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고택의 운치를 잡아먹지 않는 모양새다.

낮은 지붕, 튀지 않는 무채색이 그렇다. 그 앞을 나란히 지키는 두 그루의 오동나무도, 무릇티 건물을 떠받치듯

기댄 단풍나무도 그 세월이 다 고택과 함께 한 시간들을 품고 있다.

 

갈산재 고택 뒤로는 작은 산책길이 이어진다. 손바닥만 한 저수지 하나, 그 앞을 차지한 작은 정자,

그 위로 100여 걸음 더 올라야 있는 또 다른 정자도 고택과 어우러진다. 나무와 짚을 더한 원두막 같은 정자라 그렇다.

이름도 ‘갈산정’이다. 집을 빙 둘러싼 반타원형의 담도 이런 풍경과 어울려 멋스럽다.

 

고택과 함께 한 낡은 화장실도 옛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킨다. 이렇게 옛 모습 그대로 온전히 남아 있는 옛 화장실을

찾아보기 어려운 지라, 그 존재만으로도 덥석 반갑다. 겉은 그대로 두고, 안의 시설은 현대의

사람들이 이용하기 편하게 수세식으로 개량했다. 안전과 편리를 고려한 결정이었다.


고택을 중심으로 빙 둘러 하나하나 만들어진 시설들은 고택을 찾는 재미와 여유를 더해준다. 아이들을 위한 수영장 시설도

그렇고, 야영객들을 위한 캠핑장도 그렇다. 거기에 맞게 탈의실과 샤워장도 갖추고, 야외에서의 식사도 가능하게

테이블과 의자도 같이 두니, 한옥의 불편함을 두루두루 보완해냈다. 편의와 즐거움은 더하되,

고택의 미는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그 조화의 묘가 돋보인다.


“갑자기 뚝딱 하고 지을 수는 없는 것이잖아요. 한옥과 주위 풍광이 맞아 떨어지게 또 다른 해석으로 만들어가는 작업들이죠.

돈 많이 들였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욕심으로 되는 것도 아니에요. 전체적인 연출미와 감각을 항상 잊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한 명 한 명 지인들의 발길이 이어지더니 알음알음 소개로 갈산재를 찾는 발길이 하나 둘 늘고 있다. 한옥 스테이를 청하는

사람도 있고, 한옥에서의 특별한 캠핑을 하고 가는 가족도 있다. 고택이 함께 하니 캠핑도, 스테이도 특별한 시간을 선물한다.


“고택 앞에 있는 은행나무는 아마 이 집하고 나이가 같을 거예요. 할아버지가 유난히 은행나무를 좋아하셔서 이 집

오르는 길에 있는 은행나무나, 집 가에 있는 거나 죄다 그 분이 심었어요. 다 늙었는데도 얼마나 은행이 잘 열리는지 몰라요.

이 은행나무들을 보고 있으면 할아버지 생각도 많이 나요.”

 

그는 말한다. 고택을 위해서라면 사람들이 갈산재의 존재를 모르는 것이 더 좋을 런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그 오랜 시간동안

굳게 닫혀온 고택의 빗장을 풀어 사람들을 두루 맞는 것은 이 집의 정취와 역사를 이제는 함께 하고픈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택 주변 산에 아로니아 나무도 5천주 심어 가꾸고 있다. 전체 2만평인 이곳을 고택의 공원으로 만들 계획도 갖고 있다.

고택이 고색창연한 고택으로 그대로 남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편히 찾는 그런 집으로 변화하는 것도

또 다른 가치를 가져가는 것이라고 믿는 그다.


“그래도 너무 많은 사람들을 받고 싶지는 않아요. 고택이 썰렁한 맛도 있고 조용하고, 쉬는 공간 같아야지요.

돈만 벌고 사람들만 불러들일 욕심으로 운영하면 올 사람도 불편해서 못오는 법이지요. 내주는 사람도 불편하구요.

방은 다섯 개여도 그 방들을 다 채워 받지는 않을 거예요. 방이 비더라도, 그 비는 한적함이 고택을 채우는 거겠지요.”


조상대대로 살아온 집을 팔아 엎지 않고 잘 지켜가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와 고마움이 된다는 집주인 유영호씨는

경제적인 시달림이나 정신적인 어려움 역시 묵묵히 갖고 가겠다고 했다.


고향을 떠나 있었지만, 나이 들어 비로소 집으로 돌아와 고택을 지키는 그는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사람처럼 묵직하다.

그 곁을 할아버지를 그립게 하는 100년 묵은 은행나무가 지킨다. 그 은행나무는 고택이 동무한다. 그 대나무같이 서슬 퍼렇던

할머니가 한 알도 흘림 없이 주우셨을 은행 알은 올해도 어김없이 풍년이다. 은행이 지고 나면 이곳은 다시 또 노란

은행잎으로 가득 덮이리라. 집은 또 노랗게 물들며 그렇게 나이를 먹으리라. 주인과 사이좋게 살며 그렇게 나이를 보태리라.


갈산재의 은행알들이 한줄기 바람에 우수수 굴러 떨어진다. 갈산재의 가을은 더 처연하고 아름답다. 

<서산교차로 배영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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